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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지뉴 Apr 10. 2021

"잘 될거에요" 한 마디의 무게

운수 좋은 날


나는 습관적으로 의뢰인에게 '좋은 결과'보다는 '나쁜 결과'에 대해 얘기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집행유예도, 실형도 선고될  있는 사건인데 '집행유예도 선고될  있고요, 실형도 1년까지는 가능합니다'라고 얘기한  실형이 선고되면 다짜고짜 "변호사님이 집행유예 나온다고 호언장담 했잖아요!"라는 호통을 들어야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 때문이다. 나는 한번도 집행유예가 선고될 거라고 장담한 적이 없는데도 나는 종종 이런 억지에 시달렸었다.


그러다보니  '집행유예도 선고될 수 있고, 실형도 1년까지는 가능한 사안'에서는 보통 나는 '실형 1년부터 생각하시면 되고, 집행유예를 목표로 할게요'라고 말한다. 그런지 꽤 오래 됐다.


나는 최악을 말해주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최선의 결과를 마치 예견된 결과처럼 말하는 것은 장삿속이라고 생각했다. 연차가 오래된 변호사님들이 '당연히 집행유예 나와요, 걱정마세요'라고 말하며 사건을 수임하는 것을 나는 사기라고 생각했었다.



어제는 운이 나빴다.


지방에서 재판은 오후에 시작되는데, 구치소에 수감된 의뢰인은 접견을 와달라며 조금 과장해서 하루에 한 통씩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구구절절했다. 제발 좀 와주세요, 너무 답답해요,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겠어요. 내용만 답답한게 아니라 정말 나에게 그 구구절절하고 답답한 마음을 보여주려는 듯 글씨까지 울고 있었다.  


지금껏 사건 진행을 위해 필요한 접견은  진행해 왔는데도 제발 접견을 와달라고 막무가내였던 지라, 이번 재판을 앞두고 접견을 해야겠다 싶어서 기차표 시간을 보니, 오후 재판  접견을 하려면 새벽같이 기차를 타야만 했다. 아득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야 하루   시간  일찍 일어나면 되는 일이지만 의뢰인은 구치소에 갇혀 있으니 의뢰인 부탁을 들어주는게 맞겠다 싶어 아침 일찍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날 따라 아침에 택시가 잘 잡히지 않더니, 10분 전에 출발했다고 하던 택시기사님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예약했던 택시를 취소하고 다시 택시를 타니, 도무지 기차 시간까지 수서역에 갈 수 없었다. 결국 택시를 돌려 서울역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접견을 예약했었는데 기차 역 도착시간이 11시 10분이었다. 두개골이 찌릿했다. 아무리 빨리 달려 구치소에 도착한다고 해봐야 11시 30분이 넘을테고, 이래 저래 접견 절차를 밟으면 11시 40분일 게 분명했다. 구치소의 오전 접견은 대개 11시 50분에 끝난다. 나는 10분 접견을 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눈썹이 휘날리게 달린게 되어버렸다.


내 몸이 힘든 것도 힘든거지만 의뢰인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등에 식은땀이 났다.   씩이나 궁금한게 많다며 제발 접견을 와달라고  번이나  사정인  짜증을 내던 의뢰인인데, 10 밖에 접견을 못한다고 하면 나를 때리는  아닐까, 별의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에 내려서 택시를 기다려서  여유도 없었다. 내리자 마자 제일 앞에  있던 모범택시를 탔다. 속이 타들어갔다.


결국 11시 40분에 의뢰인 앞에 앉았다.

택시에 내려 구치소 문 앞부터 접견실까지 나는 쉼 없이 뛰고 죄송합니다를 열 다섯 번 쯤은 한 것 같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준비해 온 접견 내용을 다다다다 쏟아내는 나에게 의뢰인은 "변호사님 괜찮아요. 숨 좀 돌리고 말씀하세요."라고 했다. 주책맞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마음과 의뢰인에게 미안했다. 의뢰인은 내가 10분도 제대로 접견을 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11시부터 40분을 넘게 대기실에서 나를 기다렸는데도 화를 내거나 짜증내는 기색 없이 나에게 괜찮다고 했다. 궁금했던 내용들은 서신으로 다 알려주셔서 지금은 궁금한 게 많지 않다고. 화상으로 접견하게 될 줄 알았는데 재판을 앞두고 너무 불안했던 차에 이렇게 찾아와 얼굴을 보고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그냥 선고기일이 언제 잡힐지,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할지, 다른 사람들은 다 집행유예가 선고됐는데, 자기만 안되면 어쩌나 너무나 불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너무 고마운 마음에 "괜찮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어쩌면 변호사는 의사와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별 것 아닌 병이라도 해도 인체는 너무나 신비해서 어떤 병이 생겼을 때 실제로 완치가 될 수 있는지를 장담할 수는 없을거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괜찮을 거에요."라고 말하면 환자는 그래도 조금은 안도하게 된다.


어떤 혐의에 대한 판결례가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긴하지만,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우리는 선고일까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내 의뢰인보다는 훨씬 많이 이 사건을 맡아서 변호해 온 내가 "괜찮을 거에요."라고  말하면 아직 한달이나 남은 선고기일까지 의뢰인이 조금은 덜 불안해하며 하루 하루를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 "괜찮을 거에요."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나는 지금껏 내가 판사가 아닌만큼, 결과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부터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사건을 맡을 때, 매번 이것보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죽어라고 일하는데, 적어도 그만큼은,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한 만큼은 "괜찮을 거에요."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그만큼은 내 의뢰인도 괜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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