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지뉴 Jun 29. 2021

직업에서 나이로 평가받을 때의 기분이란

나이는 어려도 연차도 꽤 되었답니다.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다. 


4월말쯤부터인 것 같은데, 정말 꼬박 두 달은 너무 바빠서 일 말고는 따로 시간을 낼 여유도 전혀 없었다. 다행히 두 달을 죽어라 고생시키던 사건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이번주 부터는 사건 기록만 열심히 보면 되는 상황이 됐다. 


사건을 진행하면서 피고인이 14명이 넘는 사건에서 8명을 한꺼번에 추가 수임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물론 수임은 대표변호사의 담당이지만, 이미 진행하고 있는 사건의 다른 공동피고인에게 전화를 해 일일이 사건을 설명하고 착수금 지급을 안내하는 사소한 일은 담당 어쏘 변호사가 알아서 하라는 대표 변호사님 때문에 8명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었을 때 억울하다든가, 이것 저것 물어보는 게 많은 사람들은 그나마 참을만 하다. 나에게 이 사건이 얼마나 중한지를 떠나서, 자신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사소송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집으로 날아오는 우편물 하나가 얼마나 무섭고, 자신들의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고 걱정되겠나. 다 참을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무례함이다. 



 수임이고 뭐고 다 떠나서 제 나이 알아서 어쩌시려고요? 라고 묻고 싶었던 순간. 


마지막 의뢰인은 일주일 전에 전화를 걸었고, 몇 번이나 문자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무 연락이 없던 사람이었다. 


전화가 울렸고, 받아서 사건을 설명했다. 이러 저러하게 사건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꺼번에 수임하시는 거라 수임료가 정해져 있으니, 알려드리는 계좌로 돈을 입금하시면 된다. 사건 진행 계획은 기록을 검토하는 대로 회의를 통해 안내해드리겠다, 라고 말하는데 상대방이 영 떨떠름하다. 


대뜸 상대방은 이렇게 물었다. 


"이 사건 담당변호사라고요? 몇 살이야? 30대 밖에 안된거 같은데, 아닌가? 20대인가?" 


반말이라는 형식도 그렇지만, 컨텐츠도 가관이었다. 나이가 어린 변호사가 이러 저러한 설명을 하는 것이 영 못미더울 수는 있다. 못미덥다면 사실 자신의 변호인으로 선임을 하지 않으면 된다.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나, 법률적으로 부족함이 느껴져서라면, 그렇게 이유를 말하면 되고, 그나마도 말하지 않아도 된다.  


단순히 목소리만 들어도 20대나 30대에 불과한 니가 내 사건을 처리한다고? 라는 불신이 가득가득 느껴지는 저 질문을 듣고, 나도 이 사건 안하고 말지, 싶었다. 


담당 변호사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거의 없다. 보통 나이가 어려 보이는 경우 의뢰인들은 돌려서 기수를 물어본다. 연차가 몇 년 정도 되는지 궁금할 수는 있으니, 보통은 기수를 말씀드린다. 이 바닥에서 구를만큼 굴렀고 내 연차 정도면 개업하는 동기들도 늘어나고 있는 이 마당에, 기수고 뭐고 너같이 어린애 뭘 믿냐는 말투에 정말 맥이 탁 풀렸다. 




내가 사건을 잘 진행하지 못해서, 내 실력이 못미더워서라면 충분히 상황도 설명할 수 있고, 물론 더 열심히, 더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다. 목소리가 어리다는 이유로, 다른 변호사들과 달리 대접 받을 이유는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굳이 변호사에게까지 거짓말할 필요가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