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마음집에 놀러 갑니다> #0 프롤로그
두꺼운 커튼 밖으로 빛이 조금 새어 들어오는 것을 보면 낮인 것 같다고 추측을 할 뿐이었다.
이 집은 늘 어두컴컴했고,
나는 점점 시간의 감각을 잃어갔다.
몇 시에 잠들었는지도 알 리가 없었다.
뭘 봤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또 유튜브로 쓸데없는 것을 보다가,
눈과 머리가 조금씩 아파왔지만
잠은 오지 않는 상태로 몇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지쳐 쓰러져 잠든 것이
동이 튼 이후였던 것 같긴 한데,
사실 시간이 몇 시였든 크게 의미가 있나 싶다.
이 어둡고 먼지가 가득 찬 집 안만이
내가 사는 공간이니까.
나는 여기서 절대 벗어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이 집에는 어느 순간부터 질척거리는 진액이
바닥에 깔리기 시작했다.
그 짙고 눅진한 보랏빛의 액체는
어쩔 때는 내 몸 전체를 덮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이 슬라임같은 물체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져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안에서 신기하게도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숨이 막힐듯해
이러다 질식을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어느 한 번은
정말 숨이 끊기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갔었는데,
그때 나는 이 아이가 ‘우울’이라고 불리는 존재임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배운 적 없어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었다.
이 방에서 쾌쾌한 냄새가 나고,
전등이 전부 고장이 나버리고,
답답한 공기가 가득 차도,
나는 그저 누워서 핸드폰만 볼 뿐이었다.
왜냐하면 나에겐
소파에서 일어날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힘이 나면 고작해야 진득거리는 우울을 밟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마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몸을 일으켜세우고 여섯발자국만 가면
화장실에 갈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럴 힘이 없어
그냥 누워서 두 시간을 울기만 했다.
잠시 울음이 잦아들었을 때,
거미줄이 쳐진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살고 싶다.’
그러자 눈물이 더욱 줄줄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스스로 떠올리고도 놀라운 생각이었다.
나는 내가 누구보다
살고싶지 않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누구보다 간절히 살고 싶었던걸까?
나는 소파의 등받이 부분을 오른손으로 잡고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앉아서 눈물을 닦고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 여기서 조금이라도 달라지려면
새로운 무언가를 하긴 해야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 방들에 대해서 하나도 알지 못했다.
내 집이면서도 꾸미기는 커녕
전혀 청소를 할 생각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떤 방에서는 서글픈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계속 났고,
어떤 방은 조용하다가도
가끔씩 불이 뿜어져나오기도 했다.
어쩌면 그 방들마다
다른 감정이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직감을 했다.
이 방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어쩌면 나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 집을 돌보다 보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날은 항상 나의 시야에 들어오던,
가장 커져있어서 마치
이 집의 중력과 무게중심이 쏠려있는 것 같은,
나를 잡아먹을 듯하던,
1층의 복도 왼편에 위치한 제일 앞의 방.
바로 이 집을 뒤덮은 썩은 보랏빛의 진액이 흘러나오는
‘우울의 방’에 방문해보기로 했다.
누구나 감정이 놀러오는 마음집이 있습니다.
<오늘도 마음집에 놀러 갑니다>는
우울, 불안, 예민함 같은 감정들을 손님처럼 초대해
그 감정이 머무는 방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는
감정 탐험 에세이입니다.
1년 넘게 침대에 누워 지낸
지독한 무기력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만성우울증 치료 5년 차,
감정과 함께 살아보려 애쓰다 보니
어느새 ‘자기돌봄’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여정의 느낀 점과 배움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