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성장을 두려워하는 너에게

그림책 <벗지 말걸 그랬어>, <오줌이 찔끔>

by 몽아무르

다경아 안녕. 잘 지내고 있지? 네 따뜻하고 귀여운 편지에 겨울 같은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아 버렸어.


그거 알아? 2022년의 내 인생의 인물을 뽑아야 한다면 아마도 네가 될 것 같다는 거. 마침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거든. 타지에서 혼자 육아하면서 많이 외롭고 힘들었는데 그 마음을 인스타그램 일기에 열심히 적었던 것 같아. 그러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자책감을 내려놓고 그랬는데, 거기서 나랑 같은 마음인 엄마들을 엄청 많이 만나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어. 그분들이 내 일기를 읽으며 조언도, 위로도, 응원도 해주셨고, 내 글이 좋다고 궁둥이 팡팡도 해주셨지. 나는 그 힘으로 독박 육아를 견딘 것 같아. 그리고 그 긴 터널을 지나 내 자리를 찾을 시점이 되었지.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인스타그램의 일기로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으니 엄마들과 소통하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글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 와중에 네가 그림책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자고 한 거야! 집구석 아줌마는 신나 버리고 말았어. 네 덕에 2022년은 왠지 즐거운 한 해가 될 것 같아.


성장에 대한 너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성장이라는 것이 나이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배울 것 투성이던 어린 시절에는 배움과 성취를 통해서 성장했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나를 알고 받아들이는 (그게 싫은 부분이든 좋은 부분이든) 자연스럽고 온화한 성장, 그러니까 네가 말한 대로 아래로 깊이 내려가는 성장을 하는 것 같아.


준호는 우주와는 다르게 성장에 대한 욕심이 없어. 늘 7살에서 자라는 것을 멈추고 싶다고 하는 아이야. (7살인 이유는 마리오 게임을 7살에 할 수 있다고 했거든. 하하!)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이 겁나고, 지금처럼 많이 놀 수 도 없어서 싫대. 심지어 준호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해. 이미 백수가 꿈인 아이지! 직업을 가지면 부모와 떨어져 혼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더라고. 아마 성인이 되어서 직업을 가지고, 부모와 떨어져 살며, 언제나 바빠서 ‘이따가, 나중에’를 반복하는 나와 남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거야. 언젠가는 준호가 사람이 자랄수록 기쁜 감정도 같이 커진다는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물었지. ‘그럼 넌 빨리 자라고 싶어?’라고 물었더니, ‘아니. 기쁜 감정도 커지는데 슬픈 감정, 화나는 감정도 같이 커져서 싫어.’라고 대답하더라. 준호는 혼자서 해내는 것에 대한 욕심도 없어. 그래서 혼자서 옷 입기, 씻기 같은 생활 규칙을 가르치는데 무던히 애를 먹었지. 지금도 자기가 하는 것보다 내가 해주는 것을 더 좋아해. 둘째 리아는 내가 손만 대도 혼자 할 거라고 울음을 터뜨리는데 정말 신기하지?


준호는 왜 성장을 두려워할까 생각해보면, 아이가 불안이 높고 외부 자극에 예민해서 그런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했어. 성장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누군가의 가르침과 시행착오라는 자극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 아마도 자기에게 편한 자극이 아니었겠지. 그런 준호가 좋아하는 성장에 관한 책이 두 권 있어. 하나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벗지 말걸 그랬어>,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같은 작가의 <오줌이 찔끔>이야. 둘 다 성장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시행착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귀엽고 유머가 넘쳐서 나도 좋아하는 책 들이야. 준호는 이 책들을 보면서 실패에 대해 안도하고 위안을 얻는 것 같아.


<벗지 말걸 그랬어>는 ‘어린이 도서 분야의 노벨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은 책이야. 엄마 도움 없이 혼자서 옷을 벗겠다고 했다가 옷이 머리에 걸려서 고생하는 아이의 이야기인데, 자존심을 내세우며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고 도움 따위 필요 없다 외치지만 결국 도움을 받게 되지. 배움에는 약간의 도움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대변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가. 내가 좋아하는 부분 조금만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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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뒤에 아이가 어떻게 위기를 모면할지 궁금하지! 게다가 마지막엔 반전도 있다고!



<오줌이 찔끔>은 오줌을 싸기 전이나 후에 팬티가 쪼금 젖는 아이의 이야기야. 어른에게는 그저 사소하고 고쳐야 하는 실수일 뿐이지만 아이에게는 인생을 논할 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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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이 책들을 보면서 ‘나만 실패하는 것은 아니구나.’하고 안도하기도 하고, 무려 어른도 실수를 하는구나 생각하며 당당해지기도 하고, 도움을 받는 주인공을 보면서 배움을 동반하는 성장에는 실패와 도움이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


나는 준호가 배움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실패를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준호는 조금만 실패해도 자기가 엄청난 무능력자인 것처럼 스스로를 원망하고 불 같이 화를 내. 노력과 반복이 성공을 가져다 줄 거라고, 처음엔 모두가 어려운 거라고, 심지어 아이가 처음엔 잘 못했는데 지금은 잘하는 것들을 이야기해주면서 노력과 반복의 가치를 이야기해줘도 당장 실패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더라. 얼마 전에는 뒤늦게 두 발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는데 연습 시간의 8할을 울고, 나무를 발로 차고 소리 지르는데 썼어. 배움이 어려운 아이인 걸 알아서, 아이가 먼저 두 발 자전거 타고 싶다고 할 때까지 기다린 건 데도 그러는 준호를 보면서 나는 소리쳤지. “준호야! 이럴 시간에 자전거를 한번 더 타!”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른인 나도 같은 이유로 못난 모습을 할 때가 있는 것 같아. 아이는 눈앞에 보이는 실패에 울고불고 화를 내는 방식으로 못난 모습을 보이지만 나는 어른이니까, 화를 내는 대신 도망을 가는 것 같아. 내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공간에 숨어서 도전하지 않고 밖으로 나아가지 않는 거지. 실패는 아프니까. 그 실패 하나가 마치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 특히 전업 주부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까 이삼십 대에 했던 수많은 실패와 방황을 다시 할 자신이 없더라. 집이라는 우물에서 나가고 싶어 하면서도 우물 밖을 두려워하는 개구리가 되어 버렸어. 아이들 키우며 석사 과정을 마무리했을 때, 담당교수님이 함께 박사 과정을 해보자고 권하셨어. 너무 좋은 기회였지만 나는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못 했어. 아이, 집안일, 공부를 동시에 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거든. 아이들이 크면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고 핑계를 대며 도망가서는 몇 년을 주부로 지냈지. 드디어 아이들이 기관에 갈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박사과정을 위해 연구과제를 고민하고 벌벌 떨면서 교수님께 연구 과제 한번 봐 달라고 부탁하는 메일을 보내지 않았어. 이미 아이들을 핑계로 제안을 유예할 때 두려워서 피해 가는 실패자라고 자신을 낙인찍었는데, 아이들만 키우고 전문 분야에서 멀어지니까 그나마 조금 있던 자신감마저도 사라지더라. 아무리 두려워도 해보려고 했던 마음마저 사라져 버리고 패배감만 남은 거야. 안전한 곳에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음은 상대적으로 편하겠지만 그럴수록 나는 배우거나 성장할 수 없겠지. 준호가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윗도리 앞, 뒤 구분해서 입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나도 엄마, 아내 말고도 독립적인 강민영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배우고 나아갈 때라는 생각이 들어. 누가 그러더라고. 실패는 없다고. 성공하거나 계속 걷는 일만 있을 뿐이라고.


1월의 편지가 이렇게 진취적 이라니! 잘 어울리지!


날씨가 많이 춥다. 건강 조심하고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 많이 보내길.


2022.01.11

조금씩 자라는 너의 뿌리를 응원하며,

민영.






글. 그림 : 요시타케 신스케

옮김 : 유문조

위즈덤하우스 | 2016년


#벗지말걸그랬어 #포복절도 #실패 #도움 #성장












글. 그림 : 요시타케 신스케

옮김 : 유문조

위즈덤하우스 | 2021년


#오줌이찔끔 #실수 #실패 #엉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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