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서른살 생일을 맞은 사람.

by 몽아무르

프랑스 사람들은 무엇이 되었든, 십년 단위는 성대하게 축하하는 경향이 있다.

님과 내가 만난 첫해, 그 해에 님은 서른살 생일을 맞이 했다. 그때까지는 프랑스에 이런 문화가 있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가 맞이하는 서른살이 얼마나 큰 행사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님이,


"내일 내 생일파티하러 가기 전에 조지 이모 집에서 8시 반에 아침 먹기로 했어. 괜찮지?"


라고 말했을 때, 좀 과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일파티 때 같이 점심 먹을건데 왜?


어쨌든 생일인 사람이 왕이니까 그의 일정을 따라주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단정히 목욕재계를 하고 이모집에 갔는데 거기서 또 서로 다른 문화를 발견했다. 남자친구 가족을 만난다고 단정히 목욕재계를 한 나와는 다르게 조지 이모의 딸, 그러니까 님의 사촌인 파니는 우리가 누른 초인종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님은 눈도 못 뜬채로 나온 잠옷 차림의 파니에게 말그대로 덤벼들었다. 파니를 격하게 껴안고 소파로 무너지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방황했다.


프랑스 가정에서 먹는 첫 아침식사였다. 아파트 테라스에 자리잡은 넓은 식탁 위에 각종 쨈이며, 꿀, 버터, 그리고 빵이 놓여있었고 커피와 주스가 준비되어있었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래, 칼로 빵을 자르고 아 그 다음엔 반으로 가른다음에 아아 버터를 바르고.. 오 그 위에 꿀을 발라먹네?


님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나는 안중에도 없었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경제니 은행이니 하는 이야기는 다 이해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눈치껏 열심히 먹고 불편해했다.


님의 어머니가 준비한 깜짝 생일 파티에 갈 시간이 되었다. 장소가 비밀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님의 어머니 집으로 가서 차를 얻어타고 출발하기로 했다. 님의 차를 타고 어머니의 집으로 가는데 님이 물었다.


"괜찮아?"

"응."


아마 내 표정이 좋지 않았나보다. 사실 그렇게 유쾌한 기분이 드는건 아니었다. 뭐든 모르고 어색한 상황도 싫었고 가족들 사이에 껴서 혼자 묵묵히 먹기만 하는 섬이 된 것도 싫었다. 더 싫었던건 내가 섬이 되지 않도록 지켜주어야했던 님이 가족들과 신나게 대화하느라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안중에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어머니 집에 도착해서 조카 마일리스 그리고 에믈리스와 함께 생일파티 장소로 갔다. 마일리스가 내 귀에 속삭였다.


"민, 깜짝 생일파티가 뭔지 알아?"

"아니."

"삼촌에게는 비밀이야."

"알았어."

"할머니가 삼촌을 위해서 커다란 식당을 빌렸대. 거기서 아기 돼지를 볼 수 있대! 그리고 삼촌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모금함을 만들어 놓을거래."


프랑스 사람들은 생일이나 결혼 같은 커다란 행사를 할 때 파티 장소 구석에 모금함을 마련해둔다. 거기에 초대된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원하는 금액을 넣는 것이다. 따로 돈을 받아서 정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현금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수표를 내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누가 얼마나 넣었는지 모른다. 나는 이것이 무척 합리적이고 세속적이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축의금을 낼 때 친한 정도에 따라 대충의 금액이 정해져있고 누가 얼마를 내는지도 기록을 해둔다. 다음에 똑같이 혹은 그 이상을 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부담스러운 예의 때문이다. 하지만 금액으로 사람 사이의 마음을 정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인 것 같다. 각자의 경제 사정에 따라 할 수 있는 금액이 다른것인데, 마음은 크더라도 금액은 작을 수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거기서 몇 퍼센트의 금액에 일조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무튼, 모금함 문화를 몰랐던 나는 혼자서 선물을 준비해갔더랬다. 뻘줌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걸 언제주지 혼자서 잠시 고민을 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익숙해져야하는 문화들이 있는데 그 중 한국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건 아마 기다리는 문화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사람들을 초대하면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뭐든 미리 준비가 되어있어야하고 순서가 착착착 진행되지 않으면 주최자는 불안해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어디를 가든 느긋하게 기다릴 준비를 해야한다. 이 생일 파티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사람들은 식당 밖에서 둘셋씩 모여 수다를 떨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착한 시간은 이미 약속 시간을 한참 지나있었다. 그러고도 모두들 식당에 들어가 달라는 말에 재깍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그러거나 말거나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야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참말로 말하는 걸 좋아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장소에 나는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님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무척 바빴다. 다행이 아이들이 내게 관심을 보여주었다. 난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같이 산책도하고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식당에 들어갔다. 드디어...! 전식, 본식, 후식. 다른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만 내게는 생소한 음식들이 쏟아져나왔다. 다행이 내 옆에 앉은 조지 이모가 음식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내 앞에는 님의 할머니가 앉아계셨는데 참 외로워보이셨다. 다른 가족들이 서로 먹고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을때, 혼자서 멍하니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시는 모습을 보니 동변상련을 느꼈다. 내가 프랑스어만 잘 하면 옆에서 말동무 해드릴텐데 참 아쉬웠다.


식사가 끝나니 슬슬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식탁 옆의 텅빈 공간이 뭐에 쓰이는 공간인가 싶었는데 바로 식사 후에 춤을 추기위한 공간이었다. 음악은 주로 컨트리나 왈츠같은 것들이 나왔다. 가족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서로 짝을 이루어 춤을 추었다. 잘추든 못추든 상관없이 그 시간과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이들도 그런 문화에 익숙한지 부끄러워하는 모습없이 당연하게 어른들과 짝을 이루어 귀여운 춤을 추었다. 님은 이모랑도 엄마랑도 누나들이랑도 신이 나서 춤을 추었다. 둘이서 추는 춤은 한번도 추어본 적이 없는 나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사람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구경했다. 이래서 옛날에는 사교계에 나가기 위해 춤을 배운 것인가.


한참 춤을 추고 소화가 되었을 즈음 생일 케이크가 나왔다. 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거대한 게이크의 촛불을 껐다. 케이크를 먹고나서 남자 어른들은 페땅끄라는 쇠공놀이를 하고 아이들은 식당 앞 큰 정원에서 놀고 여자 어른들은 식당 안밖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같이 수다 떨 사람도 없고 해서 아이들이 노는 정원에 나가보았다.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 14살 테오가 보였다. 어린애들이랑은 같이 놀기 싫었는지 사춘기답게 혼자서 이어폰을 끼고 비비탄 총으로 나무 막대기를 겨냥해 쏘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붙일까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나도 한번 쏴봐도 돼?"


테오는 선뜻 총을 내주었다. 비비탄 아까우니까 한 두번 쏘고는 음악에 대해 물었다. 테오는 신이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십대니까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들을거라는 내 편견은 완전히 틀렸더랬다. 테오는 AC/DC, 메탈리가, 마이클 잭슨등의 노래를 내게 들려주며 말을 쉬지 않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보여주는것이 즐거워 보였다.


님은 이제 슬슬 집에 갈 시간이라며 내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스무명이 넘는 이 사람들하고 일일이 비주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두루두루 손인사를 하고 가는 것인가. 나는 무척 궁금했다. 안그래도 신체적 접촉에 민감하게 태어난 나인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서슴없이 볼을 맞대야 한다거나 심지어 내 볼에 뽀뽀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건 조금 힘든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문화고 서로 정을 나누는 방식이니까 꾹 참고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볼인사를 하고 나왔다.


프랑스 사람들의 가족 잔치를 본 건 이 날이 처음이었던것 같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 섞여서 춤을 추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날 이 곳에 모두 함께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했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조금 쓸쓸했고 이렇게 화목한 가족들을 보면서 나의 가족이 더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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