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기로 결정을 했어도,
실질적으로 들어갈 날짜를 정하고, 들어오는 사람의 짐을 정리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는 구체적인 일은
왠지 내겐 어색했다.
그는 나의 이사를 기점으로 인테리어를 조금 바꾸고 싶었나보다.
어느날 거실의 빈 벽을 보면서,
'저기에 액자를 달까?' 라고 내게 묻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적지 않은 수의 액자를 사왔다.
브리꼴라쥬 Bricolage, 즉 집안 수리 및 망치질에 능한 그의 새아빠가 액자를 달아주러 오셨다.
나는 그냥 망치로 꽝꽝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줄자로 재고 계산하고,
거대한 드릴을 들고 웅웅 구멍을 내는 새아빠.
그의 새아빠는 액자의 위치를 물으며, '내 집 아니니 민과 상의해서 결정해.' 하셨다.
하지만 내 집도 아닌걸.
이제 곧 같이 살게 될 거라는 이유로 자꾸 내게 의견을 묻는 것이 영 어색했다.
결국 몇개의 액자는 환불 하기로 했다.
환불하러가서는 옷장에 내 옷을 넣을 수 있게 선반을 더 달겠다며
재료를 사온 그.
나랑 같이 살겠다고 옷장에 공간도 만들고, 책상을 어디에 놓을지 궁리하면서,
뚝딱뚝딱 뭔가 만들어가는 그를 보니 알수없는 무게감을 느꼈다.
나는 그의 공간을 변화시키지 않고 그냥 살짝만 들어가 살 생각이었다.
나로 인해 그의 생활 공간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지 않길 바랬다.
가볍게 서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같이 살아보는 걸로 생각했더랬다.
나는 이곳에서의 2년 반 동안 4번 집을 옮겼다.
짐이 많으면 이사도 어려웠기 때문에
몇 년동안 가진 짐이라곤 항상 캐리어 두 개 였다.
난 그의 집에서도 그냥 캐리어 두 개를 가지고 여행지 숙소에 장기 투숙하듯이
그렇게 살 생각이었다.
2년 반의 외국 생활이 나를 여행자처럼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 나의 입주는 달랐다.
혼자 살던 공간을 두 사람이 살 공간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킹사이즈 침대를 밀고 손수 책상과 선반을 만들어 주었고
붙박이 옷장에는 추가로 선반을 달아주었다.
방은 좁은데 침대는 커서 책상이 들어가면 다림질이며 다른일을 할 공간이 매우 작아졌다.
그에게 불편을 주면서까지 들어간다는게 불편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왠지 같이 사는 것도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을 가졌더랬다.
그냥, 데이트하다가 매번 서로 집에 머무는 것보다는 같이 사는게 합리적이라 그러는 거겠지.
워낙 동거하는 커플이 많으니 그에게도 별로 큰 일은 아니겠지 싶었지만,
나를 맞이하기 위해 드릴을 들고 먼지 뒤집어 써가며 애쓰는 그를 보며, 그것 보단 큰 일인가 싶었다.
나는 그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나의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부해야해서 데이트 못한다고 했는데 퇴근하자마자 연락을 보내는 그.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할 요량으로 내가 물었다.
'이제 뭐할거야?'
'너를 납치해서는 바닷가에서 포옹하며 해지는 걸 볼거야.'
나는 농담으로,
'그럼 어서 납치해주세요.' 했다.
'정말로? 그럼 나랑 오늘 카일 볼래?'
카일은 그가 좋아하는 미드다.
'음. 그럼 너는 선택을 해야해. 오늘 카일을 보는 것과 내일 북경 익스프레스를 보는 것 중에.'
북경 익스프레스는 그가 즐겨보는 티비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이 하는 날은 늘 함께 였다.
'음... 그렇다면 북경 익스프레스가 낫겠다. 하지만 내게 아이디어가 있어. 오늘 저녁에 오되, 컴퓨터 가져와서 내일 our place 우리집 에서 공부하는거야.
나 : our place 우리집 ? t'es mignon 너 귀엽다. ok 알았어.
난 아직 입주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벌써 our place 우리집 이라는 표현을 썼다는게 귀여웠다.
그는 어떻게든 그의 작은 아파트를 내집처럼 느끼게 해주고 싶었나보다.
아직은 우리집이란 말이 어색하지만,
어쨌거나 너와 내가 함께 사는 집이니,
'우리집'이지 뭐.
우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