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물 흐르듯 어쩌다 보니

by 몽아무르



일요일.

우리는 그의 엄마 집에 갔다.

형과 그의 딸 레오넬도 있었더랬다.


아페로 (식전주)와 점심을 하고 레오넬과 놀아주다 보니 점점 피곤해졌다.

그도 '이제 슬슬 가야지.' 하면서도 귀찮은지 내 무릎에 누워 일어날 줄을 몰랐다.


갑자기 그의 엄마, 재닌이 남편인 제라드에게 물었다.


"우리도 같이 한국에 갈까?"

"다음에. 좀 더 천천히. 먼저 둘이 즐기게 두고. 나중에."


그의 엄마는 알겠다고 수긍했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들었어?'


"응."

"어떻게 생각해?"

"안될거 뭐 있어. 언제나 환영이야."


언제나 진지한 제라드가 끼어들었다.


"그럼 너무 공식적이 되잖아. 천천히 해도 돼."



정말 피곤했던 나는 집에 가고 싶었지만

내 속도 몰라주는 야속한 그 덕에 결국 저녁 까지 먹고가게 되었다.

대화의 주제는 세금, 집 사는 문제.

그는 나와 팍스를 하면 세금을 더 적게 낼 수 있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 돈을 모아 바닷가 근처에 단독 주택을 사는거지.' 하면서 나를 보는데,

나는 순간 어리둥절 했다.


우리가 같이 살기로 결정한 걸 그의 부모님은 벌써 아는 건가?

나한테는 상의 해보았다는 말 없었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 물었다.


"부모님하고 나랑 같이 사는 문제에 대해 상의해봤어?"

"그 말은 허락을 말하는거야 아니면 통보를 말하는거야?"

"허락은 아니지만 그냥... 말하는거?"

"있지. 제라드는 거의 매일 내게 전화를 걸어와. 그러다보니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게 되지.

그래서 이야기 했어. 제라드는 내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지는 않아. 그냥 들어주지."

"그럼 엄마는?"

"엄마한테는 아마 제라드가 말했을거야. 제라드한테 말하면 무조건이야. 누나한테 말해도 그렇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러냐고 답했다.


"왜 ? 마음에 걸려?"


사실 그랬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문제를 부모님과 대화 혹은 상의 없이 결정한다는 것.

그냥 본인의 일상을 전하듯 그렇게 전했다는데서 약간의 놀라움을 느꼈다.

나는 부모님이 하지말라면 하지 말 태세였지만

그는 하지말래도 당연히 할 태세였다.

한국 사람들에 비해 일찍 독립하는 것이 보통인 이들에게는 '부모님의 허락' 이라는 문화가 흔치 않았다.

본인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본인일 뿐이며 부모는 그것을 지켜볼 뿐이다.

물론 부모의 의견을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지는 않는다.


언젠가 서양과 동양의 공부 목적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왜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학업에 더 많은 압박을 느끼고 더 열심히 공부하는가하면,

동양인은 '내'가 아닌 '부모' 나 '가족'을 위해 공부하는 반면,

서양인은 오로지 '나'를 위해 공부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내'가 즐겁지 않으면 쉽게 학업을 그만둘 수도 있고 그런거란다.


하긴 나만해도 공부할때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이

결과가 좋지 않으면 부모님께 죄송스러우니까. 이다.



부모님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려고 저렇게 아무 거리낌없이 동거를 결정하고 팍스 (동거를 국가에 등록하는 제도. 혼인신고와 비슷하게 동거를 신고하는 것)를 결정하는 걸까.

한국에서처럼 싫어할 이유를 대자면 많기도 할 텐데. 외국인이고, 학생이고, 나이도 많고.

하지만 그는 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는데 왜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었다.


나 : 아니. 그냥 물어봤어. 엄마랑 상의 안해봐도 돼?

그 : 괜찮아.



나 자신이 프랑스에 정착해 살지도 모르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레 외국에 정착해서 사는 이야기를 했다.

한때 그는 호주에 정착해서 살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프랑스에 남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자신이 호주에 머물고 싶었던 것은 그 시간이 일년으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단다.

만약 호주의 일년이 더 길게 연장되어 삶이 되었다면 또 똑같은 걱정들과 일상들로 프랑스에서의 삶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 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달라졌겠지. 어떻게 생각해?"


나는 그것이 나를 염두해둔 질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왜?"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머무니까 너무 좋지만 또 한편으로는... 포기해야하는게 많아지잖아.

커리어, 가족, 친구. 그리고 외롭겠지."


그는 프랑스는 외국인이 정착하기에 아주 쉬운곳이라며 나를 위로하려고 했지만

이미 3년을 살아온 내게 그 감언이설은 통하지 않았다.



집앞에 도착했다.

그는 차 시동을 끄고 '어둡고 깜깜한데 우리...' 하면서 내 좌석을 뒤로 밀어버렸다.

나는 갑작스레 뒤로 쓰윽 젖혀지며 '야 !' 비명을 질렀다.

그의 농담이 시작되었다.


"우리 좀 더 색다른 곳에서 해봐야해."

"..."

"어디가 좋을까?"

"..."


정말 많은 장소를 떠올려봤지만 신박하게 이 농담을 받아칠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야하지 않게 재밌게 넘어가고 싶었는데.

정말 재치있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의 농담이 어색하게 끝나버릴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눈앞에 보이는 집 앞 운동장을 가리켰다.


"오 ! 그래 ? 좋다. 지금?"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특유의 약올리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농담이 수줍은 나를 놀리기 위함이란 걸 알았다.

그는 나의 어깨를 감싸며 그는 내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나는 가만히 서있는데 모든 상황이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나는 그와 점점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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