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하는 새 친구가 생겼어.'
그는 일터에서 이런 문자를 보내면서
디즈니랜드에서 내게 사준 열쇠고리 중 한 짝. 미키 사진을 보냈다.
나도 미니 사진을 찍어 보내며,
'이런 우연이 ! 나돈데.'
수요일.
북경 익스프레스라는 티비 프로그램이 하는 날이었다.
그는 나와 만날 핑계를 항상 티비 프로그램에서 찾았다.
오늘은 톱셰프 같이 봐야되고
내일은 북경 익스프레스 같이 봐야되고.
이런 식.
연애 낯설은 그는
첫 데이트에서 나를 어르신들이 많이 가시는
유럽식 다방에 데려가는 센스를 보였더랬다.
나는 어르신들에 둘러 싸여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남자 내가 마음에 안들어서 아무데나 막 데려온건가.'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는 데이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데이트 코스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영화 보고, 밥 먹고, 차마시는 데이트에 익숙하고
시내에 나가는걸 좋아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나로서는
이따금 답답한 마음도 들었더랬지만,
둘이서 함께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 하나정도 만드는 건 꽤 괜찮은 거 같다.
왜냐하면 그것이 어느순간 둘 만의 습관이 되어 일상에서 없으면 안되는 의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건 꼭 그 사람과 보아야하는, 네가 없으면 완성이 안되는 그런 취미 말이다.
우리에겐 그게 프로 요리사들의 경연대회, 톱셰프 인데
일주일에 하루 그 날을, 둘이서 손모아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번쯤은 밥을 잘하는 식당에서 밥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그는 맛집 검색이라는 행위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매번 가는 밥집은 프렌차이즈.
혹은 카페테리아.
아니면 패스트푸드.
한국에서는 맛집 찾아댕기는거 그렇게 좋아하던 나였는데,
그 재미를 모르는 남자랑 데이트 하려니 조금 심심하긴 하다.
함께 하는 문화생활도 너무 그립다.
문화생활 하고 서로 조잘거리며 의견도 나누고
내가 맞다고 목소리도 높이고나면
뭔가 내가 싸아 채워지는 느낌이라 좋았는데
그와는 그런 재미는 없다.
그래도 나도 참 이리구르고 저리구르며 많이 성장했구나 생각한 것은,
예전같으면 입 삐쭉 내밀고 투덜거렸을텐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혼자 이 욕구를 해결하려 용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 행복한 관계는 상대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된 양보와 이해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 날 우리는 티비 앞에 주전부리를 깔아놓고
북경 익스프레스를 보았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을 무일푼으로 오지에 보내놓고
어떻게든 목적지까지 오게해 일등에게 상금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같이 티비 보자고 한 사람은 그 였는데
프로그램 시작도 하기전에 잠들어버린다.
나는 혼자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그 프로그램을 보다
지루하니 자는 그의 사진도 찍고
그러며 시간을 보냈다.
채널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은건, 그냥 그와의 습관을 무의식의 세계에 빠진 그와라도 이어가고 싶었고,
딱히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없기도 해서였다.
잠에서 깬 그는
그는 스틱 과자에 치즈를 묻혀 먹으면서 내게도 먹을거냐고 물었다.
'응'
먹여준다면서 내 코에 치즈를 묻히는 그.
나도 가만 있지 않고 그의 얼굴에 많이도 묻혔다.
냄새가...
지독했다.
Saint agur (쌍따귀흐) 라는 치즈인데,
솔직히 냄새 참 구리하다.
청국장 냄새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는 다음에는 초콜렛이나 꿀 같이 향 좋은 걸로 하자고는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못견디겠다며 샤워를 하러 갔다.
다음날 아침 그는 출근하면서 나를 내 아파트에 내려주었다.
'Travaille bien mon coeur. 공부 열심히 해. 자기야.'
아직 애칭이 어색하던 그때라 (사실 나는 지금도 어색하지만.)
mon coeur (몽 꿰흐) 하고 불러주면
왠지 모르게 좋았더랬다.
그래도 서로 소심해서
아직도 남들 앞에서는 이름을 부르고 그런다.
논문을 쓰는데 문자가 왔다.
'오늘은 너를 안을만한 좋은 핑계가 없네.
그러니까 공부하게 놔둬줄께. 그렇지만 보고싶다.
그리고 너를 안고 싶어.'
암. 포옹만큼 좋은게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