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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三)물. 동행

낙지 장인(奘人) 썰물에 뒤따르다

2019.11.27. 압해도. 장인은 한 번의 물질을 위해 하루를 준비한다,



글 쓸 일이 생겼다. 사진도 찍어서 문장 중간중간에 넣어야 했다. 원고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 다급하게 이웃 마을 어른을 섭외했다. 오랫동안 가래 낙지잡이만 고집해온 그분의 뒤를 따랐다. 낙지 구멍을 찾아 갯벌을 파서 포획하는 한반도의 전통어법인 가래 낙지는 몸을 쓰는 고강도의 노동이다. 자연의 생태환경을 잘 알아야 하고  들물과 썰물 시간, 날씨 등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해서 까다롭다. 전날부터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등 *장인(奘人)은 늘 한 번의 물질을 위해 온전히 하루를 썼다고 했다.  



2019.11.27. 압해도. 구멍을 발견하고 집을 찾아 갯벌을 파내며 반복되는 작업은 쉼이 없다.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크다는 사리 물때였다. 끝을 알 수 없이 써 내려간 바닷물은 마치 육지와 섬은 하나로 이어진 땅이라는 사실을 새삼 전하였다. 짠물이 갈라놓은 뭍과 섬의 경계. 서해안의 자연은 '신비의 바닷길'처럼, '모세의 기적'처럼 물길을 열었다 닫기를 하루에 두 번씩 반복하였다. 그 틈에 어부는 *갯살림을 위해 전날 흘려보낸 하루를 되찾는 생업에 매진해왔다.



2019.11.27. 압해도. 질척이는 갯땅을 파다 보면 제 몸도 잠길 만큼 깊은 구덩이를 만든다는 어부는 다시 땅에 올랐다. 



장인은 진흙 구덩이를 파 들어가서 낙지 한 마리를 잡더니 숨이 가쁜지 연신 헉헉대며 말을 이었다. "한숨 쉬고 들이마시다가, 눈 한 번 깜빡이다가는 쫓던 낙지를 놓치고 말아요. 생김은 순한데 어찌나 힘이 세고 눈치가 빠른지 몰라." 가래질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낙지가 모습을 드러내도록까지 오로지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말이 필요 없는 갯벌이지만 어부는 말을 해버려서 깊게 들이마신 숨을 길게 내뱉었다. 타인과 동행하더라도 말을 아끼는 이곳. "말할 기운이 있으면 땅 한 번 더 살피고 가래질에 신경 써야지."라며 어른은 소리 내어 웃었다.     



2019.11.27. 압해도. 물이 들기 시작했다. 바다는 이제 땅으로 올라갈 테니 조심하라 이른다. 



정신없이 낙지를 잡는 어부와 사진 찍는 어부가 한데 뒤섞여 목적을 이루고 있을 즈음 물이 올라왔다. 깊게 파인 *개웅이나 *갯골에 서서히 짠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바다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먼 곳을 보며 아직 멀었다고 여유를 부리지만 오산이다. 가장 낮은 지점을 골고루 살펴봐야 한다.  썰물 때의 바다는 늘 우리 발아래 있지만 제시간에 이르면 거침없이 갯가로 달려든다. 특히 사리 때는 말이다. 


"걸어 나온 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니 자타가 인정하는 어부라도 고립되기 십상이야. 한낮이라도 도움의 손길을 구하기가 쉽지 않지. 넓디넓은 그 바다에서 인간은 하나의 점에도 못 미치니까. 요행과 운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제 몸을 지킬 수 있는 이는 너 자신뿐이야." 어른은 비교적 갯벌에 익숙한 청년에게 충고를 남기고 홀연히 뭍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밤바다에 나서는 길에 늘 몸조심하라며 걱정하는 한편 응원을 아끼지 않던 부모님의 말씀과 닮았다. 귀에 딱지가 입도록 들었지만 결코 지겹다 생각할 수 없음이다. 바다는 움직인다.   



2019.11.27. 압해도. 들물의 기억. 경험은 곧 밑천이다.



언젠가 청년은 횃불 낙지잡이를 하다가 '쫄쫄'거리는 개울물 소리를 듣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어두운 밤에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횃불 낙지 잡이에 나섰는데 그 날이 마침 사리였다. 정신없이 갯벌을 두리번거리며 낙지를 잡다가 작은 소리를 듣고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멈춰 섰다. 늘 그랬다. 이윽고 먼바다에서 '쏴아아'하는 우렁찬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넓은 만주 벌판을 수천, 수만 명의 기마 군대 가 적군을 향해 달려갈 때 나는 말발굽 소리처럼 말이다. 심장을 뛰게 하는 건 비단 쿵작 이는 트로트 음악의 비트만은 아니리라. 거침없이 묻히라는 목적지를 향하는 거대한 움직임은 청년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신호를 알리는 바다가 야속했다. 물에서 멀어지려고 갖은 수를 썼다. 


하필이면 배터리가 수명을 다해 손전등도 죽었다. 컴컴한 그곳에서 방향을 알 길이 없으니 마을의 가로등 불을 향해 서둘러 올라왔다. 진이 다 빠졌다. 숨을 헐떡이며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훔칠 새 없이 뛰다시피 했다. 급작스런 뜀박질로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근육이 뭉치었다. 전율하는 신경의 세포가 전신을 휘감으며 뇌에 이르렀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살고 싶었다. 귀가 있었지만 소리가 죽었고 코가 있었지만 매운 숨 냄새에 마비되었다. 하얀 촛불처럼 쌩쌩하게 떠 있는 등불에 몰입하며 좀비처럼 다가갔다. 질척이는 갯벌과 다른 땅을 밟았다. 장홧발이 미끄러졌다.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모래땅이었다. '아아! 드디어 이르렀구나.'  고른 숨을 쉬지 못하고 여전히 격하게 뛰는 심장을 방치한 채 드러누웠다.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에 젖어 펑펑 울었다. 괴성에 놀란 마을 워리들이 컹컹 짖어댔지만 마음껏 기뻐했다. 


바다는 바람을 일으켜 몰고 왔다. 고요하던 갯땅에 추위가 엄습해왔다. 옷깃을 여미고 챙겨온 털모자를 썼다. 뭍에 이르는 길이 멀어  청년은 어른이 했던 충고를 꺼내어 되새김질했다. 들어도 들어도 지겹다 할 수 없는 건 바다에 내 숨이 붙어있는 탓이다. 언제 숨을 앗아가더라도 할 말이 없는 이 바다 말이다. 걸음에 무게가 실려와 속도를 줄이고 주위를 한 바퀴 둘러봤다. 멀찍이 떨어진 뒤에선 걸음을 멈추고 조락에 담은 낙지를 들춰보며 "이만하면 오늘 하루 잘 먹었다."라는 말과 함께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던 어른이 서 있었다. 얼마나 잡았길래 그렇게 좋아요? -"다섯마리." 입술을 씰룩이던 어른에게 청년은 더 말을 붙이지 않고 따라 웃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길을 재촉하는 바다가 말을 붙였다.

"다섯마리면 많이 잡았네. 내일 또 놀러와."      


*장인(奘人): 일반적으로 '장인'은 기술자를 뜻하는 장인 장(匠)을 쓰지만 본 글에서는 어부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씩씩하다', '튼튼하다'는 뜻의 클 장(奘)을 썼다.  

*갯살림: 섬 연안의 갯가를 뜻하는 말로 갯벌에서 생업을 잇는 살림을 뜻함.

*개웅: 물웅덩이나 고랑을 뜻함.

*갯골: 갯벌에서 골짜기로 난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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