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전문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를 모르면 간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풀꽃은 유명한 시다. 풀도 사랑의 마음으로 오래 들여다보면 꽃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내가 만난 꽃이야기를 해 보련다.
올봄에 시력이 좋아진다는 금송화를 심겠다고 은행나무 아래를 정리했다. 몇 년째 손대지 않았던 은행나무 아랫길을 하루 동안 치우고 또 치웠다. 페트병, 유리 음료수 병, 물티슈 등의 쓰레기들을 땀 흘리며 치우려니 화가 났다.
"도대체 누가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이런 곳이니까, 버리기 좋았겠지!"
"이렇게 예쁜 곳에 왜 쓰레기를 버리냐고요!"
"버리기 좋지, 아무도 안 보니까!"
"꽃밭을 만들어 놓으면 쓰레기 버릴 생각 안 들겠죠?"
"나야, 모르지..."
남편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겨우 열린 입을 닫고 다시 치우기에 열중했다.
50여 그루가 심어져 있는 은행나무 아래를 청소해 주고 나니 부드러운 부엽토가 드러나서 무엇을 심어도 잘 될 것 같았다. 은행나무에 벌레가 오지 않는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꽃도 잘 자랄 것 같았다.
금송화는 장성에서 큰 화원을 하시는 꽃차 전문가께서 씨앗을 나눠 주셔서 감사히 받아 왔다. 전문가가 알려 준 대로 사방 30Cm 간격으로 호미로 땅을 파서 심었다. 부엽토가 쌓였으면서도 질긴 띠풀 같은 것들이 많았다. 띠풀을 깨내고 심어야 하나 걱정이 돼서 사진을 찍어 보내드리고 상담했더니 그냥 심어도 되겠다고 알려 주셨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간격을 맞춰가며 심었다. 꽃씨를 심으면서 아니, 심기 전부터 이미 은행나무 아래에는 금송화가 노랑과 주황색으로 어우러져 등불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결 따라 파도응원처럼 우르르 한 방향으로 쏠리며 한들한들 춤추는 금송화를 생각만 해도 미소가 피어났다. 좋은 향을 따라 벌들이 잉잉거렸다. 뱀을 쫓아준다고 해서 밭가에 심는다는 금송화가 마냥 사랑스럽고 좋았다.
꽃차 전문가는 금송화를 채취해 덖어서 차를 만드는 방법도 알려 주셨고, 나는 금송화를 말려서 차를 먹곤 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올 가을엔 내가 기른 금송화를 채취하고 좋은 햇살에 잘 말려서 노랗게 우려내 차를 나눠 마셔보리라 야무진 꿈을 꾸었다. 꽃 좋아하는 우리 엄마께 꽃밭도 보여 드리고, 꽃차도 만들어 드리리라 혼자서 마음이 부풀었다.
일할 때에 진심인 스타일인 우리는 한 시간씩 매달려 열심히 일했다. 꽃씨를 심어야 할 곳에서 돌이 나오면 치워주었고, 질긴 풀이 나오면 뽑아 주었고, 오로지 금송화만이 발아해서 꽃송이를 피워주기를 바랐다. 나는 아픈 무릎과 허리의 통증도 참고 견뎌내며 정성을 다했다. 씨앗을 심을 때 사랑도 함께 심었다는 동시를 쓴 적이 있는 나는, 그런 마음으로 꽃씨를 심었다.
때마침 봄비가 충분히 내렸고, 큰 이변이 없다면 꽃씨는 발아하여 초록색 잎들이 올라와야 맞았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금송화의 초록색 잎을 볼 수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독해서 벌레가 살지 않는다는 은행나무의 부엽토에서 꽃씨가 발아하기 어려웠거나, 촘촘히 짜인 띠풀의 뿌리들 때문에 꽃씨가 살아내기 힘들었다고도 생각된다.
은행나무 아래를 치우면서 내가 백합이라고 바득바득 우겼던 줄기에서 참나리가 피었다. 백합이었다면 여려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참나리는 산과 들에서 잘 자라고 관상용으로 재배하기도 한다는데, 우리 농장 은행나무 아래에는 참나리가 드문 드문 소리 소문 없이 피었다.
차로 마실 욕심으로 심었던 금송화는 살아나지 못했고,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던 참나리가 은행나무 아래서 멋스러운 자태로 피었다. 참나리는 한방에서 비늘줄기를 약재로 쓰는데, 진해강장효과가 있고, 백혈구감소증에 효과가 있으며, 진정작용, 항알레르기 작용 등 소용되는 곳이 많다고 한다.
뿌리내리기를 잘하기를 바랐던 금송화는 살아나지 못했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참나리는 싱싱하게 잘 자라났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과 줄기 사이에 있는 주아(살눈)가 땅에 떨어져 발아한다는 참나리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아났다.
블루베리 화분에 심었던 묘목들도 살아내지 못하고 죽는 것들이 있다. 스스로 살려는 의지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꽃과 나무도 우리 가족도 흙 속에 뿌리내리기 위한 의지를 다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