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 보낸 심부름꾼

- 김행숙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문학과 지성사, 2021)

by 민휴

설익은 풋과일의 독기를 넘어 완숙미라고 하면 좋을까. 쥐락펴락하는 노련미에 끌려다니다 나온 것 같다. 변주를 위한 변주로 국내외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끌려 나왔다. ‘내가 더 잘 쓸 수 있다’고 당당하게 외치는듯 하다. 특히, 프란츠 카프카는 아주 여러 번 등장 한다.




“꼭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놓치면 영영 잃어버리는 것”(「1월1일」)부터 바짝! 긴장되었다. 길거리의 가난한 사람들, 노점상, 취객까지 “우리는 저마다 기다란 불꽃 같을 거예요”라고 위로하는 말들로 추운 겨울날에 추운 것들의 손을 잡아 주고 싶어 하는 선한 시인을 만났다.


“나를 상상하는 너를 상상하면 나는 네 주위를 하염없이 맴돌 수 있을까. 너를 상상하는 나를 상상하면 너는 내 품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을까.”(「의식의 흐름을 따르며」) 시를 생각하고 시를 찾아 헤매며 시가 찾아오길 바라는 오직, 시 쓰기만 생각하는 시인이다.




「밤의 층계」에서 “가장 깊은 밤이란, 달의 인력이 파도처럼 계단을 공중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계단에 빠진 사람은 삶의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고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는 것이다.”라고 썼다. 차이구어치앙이 고향 바다 밤하늘에 쌓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떠올랐다. 그 계단을 타고 다른 세상으로 훌쩍,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삶의 바닥이 깊은 사람에게 밤에는 잠깐, 너그로운 공상이 허용되는 시간이기도 한 것 같다.


「담배와 콩트」는 밝고 환하고 즐거운 분위기도 아닌데, 슬프게 읽히는데도 좋아서 되풀이해 읽었다. “허공에 그려진 물음표”, “순간아! 너는 반딧불이처럼 아직 꺼지지 않는 담뱃불이 허공에서 깜박이는 것” 김행숙! 시인은 순간의 빛처럼 영원히 빛나는 시인이기를!




두 사람, 두 명, 두 자매, 너와 나, 커피와 우산, 우산과 담배, 두 장의 커튼, 두 개의 날개, 검은 천 두 장, 굴뚝청소부 두 명 등 시인은 외로움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은 아닐까. 사물도 사람도 친구를 만들어 주려는 것 같다. 시인은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아우르는 생각을 갖고 있는 품이 넓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의 모든 상상이 비껴가는 곳에서

나는 나를 재촉했습니다.

한 명의 내가 채찍을 들고

한 명의 내가 등을 구부리고

-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를 읽고 나서, 시인도 나도 ‘신이 보낸 심부름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심부름을 왔는지는 스스로 기억해야 하는 것 같다. 존재론적 물음과 그 사명을 찾아야 했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하며 스스로 채찍을 들고 채찍을 맞으며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길이었는데” 뚜렷한 해결책을 모르고 살아가는 현실에서 나는 신의 심부름을 무사히 완수할 수 있을까 걱정 되었다.




책의 끝까지 읽고 나서 나는, 신의 심부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외롭지 않게 하라는 사명을 눈치채고 말았다. 그 아름다운 심부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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