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필요하요?"
"없어서 못 먹지요!"
상추 좋아하는 줄 뻔히 알면서 무슨 전화냐 싶었다. 해뜨기 전에 일해야 한다며 일찍 나선 남편과의 뚱딴지같은 전화 통화였다.
"상추 아니고 배추라네요!"
"무슨 배추요?"
"포기배추니까. 김치도 담고, 쌈도 싸 먹지요."
"좋아요. 몇 포기나 되는데요?"
"백 포기쯤 된다네요."
어어진 전화 내용으로 너무 크지 않은 배추 백 포기가 생긴 것이다. 배추 구경하기 어려운 이 시기에 배추 백 포기라니 금추를 어떻게 할까 궁리가 시작되었다.
추정컨데, 로컬에 나온 배추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 제값에 팔기 어려워 싼값에 가져오기로 한 것 같았다.
마침, 병원에 다녀오시는 엄마를 여동생이 농장까지 모셔오기로 했다. 오후에는 내가 엄마를 모시고 시장에 들러 집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배추 백 포기는 엄마께 절반쯤 드리면, 저온 저장고에 보관해 놓고 생김치를 좋아하시는 아빠의 겉절이가 될 터였고, 여동생도 시아버님 진짓상에 올릴 것이었다. 고기보다 야채를 더 좋아하는 형님댁에도 갖다 드리면 좋아하실 거였다.
나름 철두철미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난, 남편이 구해 온 귀한 배추로 겉절이를 만들 요량으로 냉동실을 뒤졌다. 작년 김장 때, 엄마가 주신 김장 양념 덩어리를 겨우 찾아서 녹으라고 냉장실로 옮겨 놓았다. 배추를 나눠 드리려고 장 볼 때 쓰는 튼튼한 마트장바구니도 있는 대로 챙겼다.
농장에 도착해서도 남편차 가까이에 내차를 주차했다. 무거운 배추를 옮겨야 해서 철저하게 계산된 완벽한 주차였다.
쉼터 안 수돗가에 손을 씻으려고 갔는데......
손가락만 한 배추 모종이 촘촘하게 박힌 배추모가 한 판 있었다.
이 상황이 뭔가 싶어 모종들을 노려 보았다. 귀부터 뜨거워지더니 "오~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남편님아! 배추 모종이라고 말을 해야지!!!"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모종이 아니라 포기배추가 맞는지 확인 안 한 나를 원망할 수밖에.
남편은 꼭 필요한 말이 아닌 것은 모두 소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말을 하는 것도 최소한, 듣는 것도 최소한이 미덕인 사람. 음악도 클래식을 좋아한다. 노래도 나는 가사가 더 중요한데 남편은 가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종종 불통사건을 만들며 투닥투닥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그마저도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게 대부분이다. 기시미 이치로의 책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맞다. 이 대목에서 떠올리는 게 적절한 책은 아닌 것도 같지만, 제목만큼은 이 상황과 딱이다.
텃밭에 뭐라도 심어보려고 만들어 놓은 곳에 배추 모종을 심고 보니 백 포기도 아닌, 칠십 포기였다.
남편이 농협 자재센터에 필요한 공구를 사려고 갔더니, 어떤 어르신께서 백 포기인 모종 한 판을 두고 실랑이 중이었다. 모종에서 딱! 30 포기만 필요하다고 하시는 곤란한 현장을 보고, 나머지를 남편이 사겠다고 해서 70 포기를 가져왔다고 한다.
우리 텃밭에 배추 70 포기를 심을 땅이 도대체 어디 있다고...... 엄마와 동생과 형님께는 배추를 길러서 드리기로 협상했다.
준비된 밭이 넓지 않아 바짝 붙여서 심었다가 적당히 자라면 솎아서 겉절이를 만들어 먹으면 되겠다고 심어 놓았더니, 며칠새에 벌레들이 허락도 안 받고 갉아먹었다. 키워서 나눠줄 곳이 줄 서 있는 사연 많은 배추인줄은 아는지 모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