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와 상징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며, 탄탄한 문장의 힘이 매력인 소설가 김성중 작가의 단편 「허공의 아이들」은 첫 문장부터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펼쳐진다. 공간적 배경과 상황적 배경에 집중하며 읽어야 하는 「허공의 아이들」은 재난이 일어난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그 상황을 무작정 수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아이들의 아이러니로 시작한다. 너무 큰 공포 앞에서 인간은 나약해져서 운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집이 떠오르고,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소녀는 포치에 앉아 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듯 허공에 두 발을 엇갈려 젓고 있다. 진지하고 골똘한 얼굴로, 다섯 살부터 쭉 지어온 표정 그대로 멍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중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아 있지 않은 빈집에서 소멸을 기다리고 있는 소녀는 서서히 땅이 무너지면서 집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발아래의 땅은 구덩이가 많았다. 타운하우스 12채가 1m쯤 허공으로 떠올려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도 사라져 가고 세상도 무너져 가고 있는 곳에서 소녀는 소멸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땅에서 살고 있는 소년이 있다. 야구부원이었던 소년은 매일 7km 로드워크를 하고 폐타이어에 배트를 휘둘렀다. 운동을 거스르면 몸이 무겁기도 했지만, 달리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었다.
“소년은 단순하게 생활했고, 해결되지 않을 문제에 되도록 의문을 갖지 않으려 했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집이 비어 있고, 점점 허공으로 떠오르며 인간들도 소멸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소년으로서의 낙관적 태도라고 읽힌다.
운동으로 자전거를 타고 타운하우스 단지를 돌던 소년은 두 달 만에 피아노 소리를 듣고 문을 두드린다. 소년과 소녀는 “정말 사람이 있었네”라며 놀란다. 열다섯 살 동갑내기였고, 나무가 뽑혀 나가고 집들이 떠오르며 사람들이 투명해지며 사라지는 상황에서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서 놀랐다. 소녀의 엄마의 마지막 말은 “밖으로 나가지 말라”였다.
일주일 뒤 소년은 소녀가 사는 허공의 집 옆집으로 이사한다. 소년은 주전이 되지 못하면 고등학교에 가서 야구할 수 없으니, 세상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소녀는 날마다 허공의 키를 잰다. 허공은 소녀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소녀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했지만, 그럼에도 왜 자신과 소년만 남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딱히, 할 일도 없는 아이들은 집에 불을 지르기 시작한다. 먼저, 소년이 자신이 살던 집을 태웠다.
“파괴할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소녀는 불가항력적인 세상에서 자기들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들의 존재에 대한 쓸모와 자유를 느끼는 것이라고 읽혔다.
세상은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열다섯의 식욕은 여전히 왕성했다. 재난 속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하고 사랑하고 고백하고 기억한다. 재앙은 세상에 두 명뿐이라고 해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인지도 몰랐다.
“넌 그런 생각 안 해봤어? 사라진 사람들이 다른 세상 어딘가에 옮겨 심어지는 중인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는 창세기인 셈이지.”
독자의 입장에서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두 사람만 투명해져 있는 거라면 좋겠다. 땅이 무너지면서 소년과 소녀는 소녀의 집에 고립된다. 두 사람은 자주 다퉜고, 도리없이 빨리 화해했다. 소년은 달력과 시계를 모두 버렸다.
“사라지는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녀는 묻는다. 집이 떠오르면서 바다가 보였고, 구름 위까지 올라갔다.
“하얀 구름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대지를 그 위에 포근히 자리 잡은 집들을 보며 천국 같다”라고 생각한다.
소녀의 몸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 사실을 안 소녀는 3000 피스 짜리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소년은 가슴이 먹먹했다. 소녀의 모습은 자신의 미래이기도 했다.
“소년은 혹독한 추위와 혼곤해진 의식, 곧 혼자가 될 거라는 공포에 맞서 힘겹게 싸웠다.”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소녀가 맞춰 놓은 퍼즐을 발견한다. 퍼즐을 완성하고 제 방에서 소멸하는 게 그나마 소원이었던 소녀는 사라지고 없다. 세상은 무너졌고, 사람들도 사라진 자리에서 사춘기의 소년과 소녀는 계속 성장해 나가고 있다.
“소년이 전부터 들어오던 소리였다. 뼈가 자라는 소리였다.”라고 끝을 맺는다.
상상하기 어려운 재난 상황이다. 집이 떠오르다니, 사람들이 투명해지면서 사라지다니, 소멸과 성장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유도 없이, 설명도 없이 무작정 주어진 운명 앞에서 불가항력이다. 재난 이후의 삶을 대하는 아이들의 시선이 너무 담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