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이어진 시인들의 우정

― 장수양, 문보영 『토끼는 언제나 마음속에 있어』(마음산책, 2022)

by 민휴

대화 형식의 글쓰기 방식, 두 시인이 시 쓰기나 독서 후 토론 형식의 글쓰기나 일상에 대한 주제들로 이야기가 이어 나간다. 장수양 시인이 전화 스터디 멤버 한 명을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블로그에 올린다. 댓글로 문보영 시인이 함께하겠다고 답을 한다. 이름, 나이, 직업 등 서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할 필요 없고 스터디 외의 사담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2회만 하기로 했던 전화 스터디는 2년간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장수양과 문보영, 두 시인은 글을 잘 쓰기로 소문난 유명 작가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소개도 받았기 때문에 관심도 있었다. 그들이 전화 스터디를 시작하면서 미리 정한 규칙들은 모두 무너지고 서로 절친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토끼는 언제나 마음속에 있어』는 제멋대로 흘러간 대화 속에서 우연히 튀어나온 말이다. 일상과 시 쓰기에 대한 대화 형식을 흥미롭게 읽었다.




두 시인이 번갈아 가며 일기가 공개되고 대화가 이어진다. 각자의 시도 보여 준다.


1부 시라는 점

은신처

진심이 되고 싶은 거짓말

세상에 미안한 직업

아름다운 번복

언제나 가까이 있는 나를 불편하게 여기겠죠

할 말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문보영 시 배틀그라운드 – 원


2부 어질러진 잡지

모텔방에서 TV를 끄는 심리에 관하여

오타가 생겨도 고치지 말라

우주인들의 대화록

기대 있는 순간

토끼는 언제나 마음속에 있어

같이 가서 펭귄을 세자

장수양 시 친구는 다치지 않으리


3부 덜 슬픈 시

음주 낙서는 어떻게 시가 되었을까?

소설을 만나고 온 시

문예지에 발표한 시는 왜 구린가

초인종 상담 너무 근사하지 않은 우리들의 루틴

초인종 상담 딴 데 보기

초인종 상담 하나씩 없애보는 건 재밌어

초인종 상담 60대가 되기 전에 못 견디고 신이 되고 말 것 같아

시의 뺨




「세상에 미안한 직업」에서

수양 : 언제까지 슬픈 것들을 찾아다니려나.

보영 : 세상이 행복하고 질서 잡혀 있다는 환상에 질문을 던지는 게 문학의 역할 중 하나겠지. 갈등을 봉합하고, 화해하며 끝나는 이야기들은 때때로 삶의 어두운 부분이나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은폐하기도 하니까.



「우주인들의 대화록」에서 장수양의 일기 중에서

“대화는 아주 많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열띤 대화의 끝은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와 내가 주고받은 말들은 그로부터 멀리 가라고 우릴 떠밀어줄 발사 지점이 될 것이다. 변화의 예감은 설레고도 슬프다.”라고 적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시를 쓸 글감과 생각들이 채워졌다는 말처럼 들린다. 대화 내용이 충분했으므로 곧장 시를 써 내려갈 것 같다.




「같이 가서 펭귄을 세자」에서

보영 : 시를 쓸 때도 그래. 시를 쓴다고 뭔가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가끔은 나에 대해서 모르고 있던 부분을 그냥 덮어놨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여전히 잘 덮어두고 있구나, 나는 나를 잘 모르는구나, 앞으로도 모르고 싶어 하는구나. 그런데 그 모름을 해결하고 싶지는 않아. 시를 쓰면 나를 더 알게 되면서도 한편으로 더 모르게 돼. 그래서 내가 닳지 않는 느낌이 들어. 산문을 쓰면 쓴 만큼 내 삶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거든? 더 쓰려면 더 살아야 하고. 그런데 시는, 내 삶과 무관하게 영원히 쓸 수 있을 것만 같아.

수양 : 그러면 그 마음을 읽는 사람이 계속 사랑할 수도 있네. 내가 자꾸 모르는 부분을 남겨놓아서 다 읽히지 않는 거지. 시에 대해서 다 알 것 같아도 다 알지 못하는 채로. 읽을 때마다 다르게. 그런데...... 요새는 내 시에서 모르는 부분이 잘 안 생겨.




「시의 뺨」에서

수양 : 끝을 못 낸 시가 결과물이 어떻게 나오냐면, 진짜 꼴 보기가 싫어.

보영 : 아, 마지막에 시의 얼굴이 없으면 난감하지.

수양 : 응. 그리고 굳이 내가 이제 다른 문장 중에 그건 뺨을 때린 것 같은 문장을 가져다 놓기 위해 애를 쓰고 막 그러면, 진짜 번잡하고 모양새가 좋지 않아. 그래서 내가 시를 길게 쓰잖아? 언젠가는 와. 그때까지 쓰면 되거든. 그렇게 해서 길어지는 게 정말 좋은 시를 쓰는 방법일까?

보영 : 음. 과감하게 버리는 게 더 좋을 때가 많았어. 근데 어쩔 수 없이 시가 길어질 때가 있잖아? 나는 짧게 쓰고 싶은데 시는 길어지고 싶어 하고. 이 두 힘이 밀당을 하면서 적절한 길이를 찾게 돼. 그래서 굳이 시가 길어지도록 부추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수양은 소설 같은 시를 쓰면 가책이 든다고 하고, 보영은 소설 같은 시가 좋다고도 한다. 수양은 버스 안에서 시가 잘 쓰인다고 하고 보영은 도서관에서 시가 잘 써진다고도 말한다. 서로 다른 입장의 견해가 있기도 하지만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하는 대화들이 독자의 마음도 편하게 한다. 조용히 시 쓰기에 관해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 자세도 들여다본 것 같다. 두 사람은 전화 스터디를 통해서 진짜 친구가 된다. 글쓰기와 마음나눔으로 맺어진 진짜 부러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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