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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Oct 04. 2024

찬바람이 도착했다


그토록 무덥던 여름을 지나 찬바람이 도착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불볕더위였다. 나무의 끝이 햇빛에 타들어가기도 했고, 사상 초유의 온도를 갱신하며 꼼짝하기 어려운 한낮이었다. 온도가 예년보다 높아서 처서가 지나면 잦아들어야 할 풀들이, 절기를 두 단계나 뛰어넘어 추분이 지나계속 올라왔다. 딱, 맞춤한 이 가을이 금방 지나가버릴까 걱정하는 말도 들려온다.



남편은 9월 말에 예초기로 풀들을 바짝 깎아 놓고, 올해 복숭아밭 제초작업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사흘을 꼬박 예초기를 돌리느라고 팔 근육이 아프다고 했다. 띠를 만들어서 예초기 손잡이 부분을 목에 걸고 작업했더니 팔은 덜 아픈데, 이번에는 목이 아프다고 한다. 제초작업이 농사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이라고 하소연한다. 시월에나 고랑 쪽만 승용예초기를 임대해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무더운 날씨 탓에 벌레들도 죽지 않고, 텃밭의 야채콩잎도 갉아먹기 시작했다. 물가에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던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뜯어먹어서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어느 날, 가지만 남은 나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두 부분 벌레집이 생긴다 했더니, 온 나무를 먹어치웠다.



버드나무 안쪽에는 친정에서 캐 온 사철나무로 울타리가 되도록 심어 놓았다. 울타리를 예쁘게 만들어 보려고 비료도 해보고, 흙을 보충해 주기도 했었다. 양옆의 풀도 잘 뽑아 주었다. 노랗게 시들기 시작해서 나무를 살펴보니, 털이 달린 벌레들이 엄청 많았다. 손으로 잡아낼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틈만 나면 뽑고 있는 블루베리 하우스 옆, 바닥의  풀에도 벌레가 보여서 기겁했다. 사철나무에는 할 수 없어서 살충제를 뿌렸다. 나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비닐하우스 입구에 있는 풀들을 애써, 뽑는 이유가 그것이다. 비닐하우스 속으로 벌레들이 침투할까 걱정이 된다. 풀을 뽑으려고 손으로 잡으면 하얀 것들이 튄다. 진딧물인지, 천사벌레인지 정체는 잘 모르겠다. 그것들이 방충망을 뚫고 블루베리 하우스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변을 깨끗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복숭아나무의 도장지를 잘라야 하는 일이 밀려있다. 9월 초에 가지치기를 했더니, 나무들이 힘이 드는지 힘없이 잎을 늘어뜨리고 있어서 날씨가 조금 선선해지기를 기다렸다. 한 달을 기다렸더니, 도장지들이 더 많이 자라 있다.



복숭아나무가 잎을 통해 광합성을 하면서 열심히 자라야 할 시기다. 심하게 가지치기를 하면, 내년에 나무가 약해서 열매를 많이 달 수가 없다고 한다. 2월 동계 전정 때, 결과지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고, 지금은 굵은 도장지들만 최소한 전정을 해줘야 한다. 복숭아나무의 도장지를 잘라주고, 단에 맞춰 가지를 유인해줘야 한다. 단에 맞춘 가지들이 자라 있어서 위치도 바꿔줘야 한다. 열매만 따버리면, 일이 끝나는 줄만 알았더니 나무들은 해야 일들이 계속 생긴다.



올봄에 심었던 복숭아나무 묘목이 잘 자라고 있다. 도장지들이 가운데로 자라서 통로를 꽉 막고 있는 형국이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도 잘 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이 많다. 가운데로 자란 도장지를 잘라 주었더니, 시원하게 바람이 들어왔다. 마무리 작업은 이주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이틀 연속 가는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10도 이상 차이 나게 낮아졌다. 뜨거운 날씨가 물러가고 시원한 찬바람이 마냥 좋았었는데, 비가 내린 후에는 너무 추워서 긴팔 옷을 찾게 되었다. 비그친 후에는, 평년 기온이 돌아온다는 예보를 들었다. 찬바람이 부는 환상의 날씨가 며칠새에 어디로 가버릴까 봐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다. 이 가을,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더욱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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