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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변경선

이설야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5).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날짜변경선


이설야


바뀐 주소로 누군가 자꾸만 편지를 보낸다


이 나라에는 벌써 가을이 돌아서버렸다

매일 날짜 하나씩 까먹고도 지구가 돌아간다

돌고 돌아서 내가 나에게 다시 도착한다


지금 광장에서 춤추는 소녀는 어제 왔지만

나는 내일 소녀를 만날 것이다

만년 전 달려오던 별빛이 내 머리 위를 통과해갔다

그래서 오늘은 너와 헤어졌다


검은 재를 뒤집어쓰고

우리는 매일 무릎이 까진다


나에게 도착한 미래가

어제 아프다고 전화를 했다


이제 이 나라에서 입력한 날짜들을 모두 변경하기로 하자

휙휙, 나무들이 날아가고

섬들이 날아가고, 낙엽이 빗방울처럼 날아가고

날아가고, 날아가는 것들

뒤바뀐 날짜를 버리기로 하자

버리고 버려서

가슴속엔 새로운 정부를

모든 경계선을 지워가며





* 마음을 붙잡은 문장


지금 광장에서 춤추는 소녀는 어제 왔지만

나는 내일 소녀를 만날 것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했던 말을 인용한다.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는가? 우리는 먼저 간 이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 우리가 먼저 간 이들처럼 양심의 소리를 듣고 앞서지 않는다면 그들을, 후대를 볼 면목이 없다."

어제의 소녀, 내일의 소녀는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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