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한 편 (3).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두부
고영민
저녁은 어디에서 오나
두부가 엉기듯
갓 만든 저녁은
살이 부드럽고 아직 따뜻하고
종일 불려놓은 시간을
맷돌에 곱게 갈아
끓여 베 보자기에 걸러 짠
살며시 누름돌을 올려놓은
이 초저녁은
순두부처럼 후룩후룩 웃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좋을 듯한데
저녁이 오는 것은
두부가 오는 것
오늘도 어스름 녘
딸랑딸랑 두부 장수 종소리가 들리고
두부를 사러 가는 소년이 있고
두붓집 주인이 커다란 손으로
찬물에 담가둔 두부 한모를 건져
검은 봉지에 담아주면
저녁이 오는 것
두부가 오는 것
* 마음을 붙잡은 문장
갓 만든 저녁은 살이 부드럽고 아직 따뜻하고
(두부처럼 고요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저녁이 일상이 되면 좋겠다. 칼바람부는 이 계절에 거리에서 밤을 보내며 평화를 부르짖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만큼은 평화롭기를~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