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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Feb 11. 2021

캠퍼의 로망 카라반

티코사러 갔다 그렌저 끌고 온

캠핑을 시작한 건 2015년도였다. 캠핑 용품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 친구에게 타프 하나 의자 두 개 빌려서 7월 더운 여름날에 상암동 노을캠핑장에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한 시간 동안 타프 치며 낑낑거린 후에,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텐트, 의자, 테이블 등등 캠핑 용품을 하나씩 사서 모았고, 자립으로 캠핑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작은 녀석이 태어나기 전이라, 큰애랑 둘이서도 다녀보고, 와이프랑 셋이서도 다녀봤었다. 2016년에 몽산포를 처음 갔었는데, 일요일 오후에 도착한지라 한적하게 소위 말하는 전세 캠을 즐겼었다. 그때의 그 평화로움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16년도 몽산포에서의 추억


문제는 그 이후부터 점점 늘어나는 캠핑 용품과 캠핑 붐으로 캠퍼들이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가고 싶은 캠핑장은 늘 예약이 꽉 차 있어 갈 수가 없었고 그나마 선착순으로 갈 수 있는 몽산포 캠핑장은 그 후로도 몇 번은 가봤지만 늘 난민촌이었다. 차를 바꿀 수는 없어 세단 트렁크에 짐을 싣고 다녔어야 하는데, 짐 챙기는데 반나절, 다녀와서 정리하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또 짐이 많아지면 불가피하게 캠핑장에 가서 세팅을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굉장히 우스운 패턴의 캠핑을 반복했다. 전날 밤부터 짐 챙김, 아침 내내 차에 짐 테트리스 하기, 캠핑장 도착하면 두세 시간은 사이트 세팅하기, 이미 어둑어둑해지니 저녁 준비하기, 밥 먹고 나면 지쳐 쓰러져 잠들기, 다음날 아침 먹고 철수 준비하기, 다시 트렁크 테트리스, 돌아오면 또 반나절은 짐 정리하기.. 그러다 보니 점점 캠핑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나 나가는 수준이 되었다.


2박 3일 정도의 연휴에는 늘 난민촌인 캠핑장

그래도 가을에 한 번씩은 아버지, 매형, 조카와 우리 집 남자 셋이 모여서 '남자들만의 캠핑'을 갔었다. 2019년에도 한글날 연휴를 기회로 몽산포를 다시 갔었다. 이때 진정한 난민촌 생활을 경험했는데, 도처에 텐트가 널려있어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려 헤맬 정도였다. 그때 우리 옆집에 남자 셋이 트레일러를 하나 끌고 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텐트 트레일러였는데, 당시에는 그게 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사이트를 구축한다고 세 시간 동안 걸쭉한 육수를 쏟아내고 있었는데, 그쪽 팀은 차에서 내리더니 셋이서 으쌰 으쌰 몇 번 레버를 돌려서 텐트를 세웠다. 내 눈앞에서 딱 오분만에 사이트를 구축하더니, 트렁크에서 삽과 호미 장화를 꺼내 챙긴 후 유유히 갯벌로 나갔다. "아, 저게 캠핑이야. 저렇게 즐기려고 오는 거지, 왜 나는 노동을 하러 여기까지 왔을까." 소위 말하는 현타가 심하게 왔다. 그날 이후로 캠핑을 끊었고, 텐트 트레일러를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첫 검토의 시작은 소형 트레일러였다. 일단 짐을 집에 보관하지 않고, 주차장에 늘 보관만 할 수 있다면 트렁크에 테트리스 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없어질 것이고, 캠핑을 조금은 쉽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에는 국산 소형 트레일러도 굉장히 많아져서 가격대도 크게 부담은 없어졌고 300~500 만원 정도면 구매가 가능하였다. 하지만, 캠핑장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사이트를 구축해야 한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조금 더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 후보가 텐트+트레일러였다. 몽산포에서 내 눈을 홀려버린 바로 그 모델이다. 알아보니 텐트 레일러 등등 많은 모델이 있었고, 사람들의 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텐트 설치가 10분 내외로 가능하다는 부분이었다. 짐을 옮길 필요도 없고, 텐트 설치도 가능하니, 내 고민은 90% 정도 해결된 셈이었다. 가격은 500에서 1000만 원 정도였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천만 원 정도의 가격을 투자하자니 왠지 조금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가장 큰 단점은 텐트는 텐트라는 점이었다. 눈이나 비가 온다면 집에 와서 텐트를 말려야 하는데 지하 주차장 밖에 없는 우리 환경에서는 꽤 어려운 일일 것 같았다. 또 당연한 이야기지만 텐트는 텐트일 뿐이기 때문에 취사 등에 대한 기능도 조금 생각하게 되었다.


외부 날씨에 대한 견고성을 생각하면서 관심이 하드탑 트레일러, 즉 카라반으로 옮겨왔다. 카라반에 대해 고민할 부분은 크게 세 가지였다. 어디에 보관하지? 운전은 어떻게 하지? 어떤 생활을 할 거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싶다면 가능한 모델은 한두 개로 좁혀진다. 장축 기준 4미터 이내일 것. 높이는 2미터 이내일 것. 초소형 카라반들만 가능하다는 부분인데, 좀 아쉬운 면이 있다. 운전에 대해서는 소형 면허를 취득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인데, 무게 750kg을 넘기면 소형 면허가 필요했다. 카라반의 무게는 견인차와도 연결이 되는데 통상 견인차 무게의 절반 이하의 카라반을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처음 내 상황에서는 1번 선택지 (초소형 카라반) 밖에 가능성이 없었다. 와이프와 독일제 소형 카라반을 보러 다녔는데, 조금 아니다 싶은 느낌이 왔다. 이 좁은 차 안에서 애들 둘이 뛴다면? 갑자기 로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또 다른 악몽이 다가왔다. 딜레마에 빠져버린 셈이다. 그때 구원투수로 장인어른이 등장하셨다. 원래부터 카라반이나 차박에 관심이 많으셨던 장인어른이, 위 문제들을 아주 쉽게 해결해 주셨다. 30만 키로를 넘긴 오래된 코란도가 한대 놀고 있었는데 그 차를 견인차로 쓰라고 하셨고,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도 파주 운정에 하나 마련해 주신 것.

이제 내 로망은 현실에 꽤 가까이 다가왔다. 견인차와 주차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내가 할 일만 해결하면 됐다. 두 번의 좌절 끝에 소형 견인 면허를 취득했다. 20년 여름은 카라반 구하기가 정말 어려운 시즌이었다. 독일과 영국에서는 카라반 제조 업체들이 셧다운 되어 수입이 막혔었고, 국내에 남아있는 중고 매물들은, 해외여행에 발 묶인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었다. 장터에서 매복하기를 수개월, 정말 운이 좋게 가까운 김포에서 내가 원하던 카라반을 만날 수 있었다.

베일리 퍼슈트 530. 영국제 모델인데 모델명은 500 시리즈이지만 퍼슈트만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내부는 700급의 사이즈를 느낄 수 있는 모델이었다. 2017년도 모델이었는데 전 차주가 구매 후 한 달 만에 집안 불화로 다시 내놓게 되면서 우리 가족에게 오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캠핑장에 가더라도 취사장과 샤워장을 가지 말자는 와이프의 조건이 있었기에, 조리 시설과 샤워 시설이 필수였다. 퍼슈트는 냉장고, 3구 가스레인지, 오븐, 전자레인지를 갖춘 주방 시설이 있었고, 단독 샤워 부스가 있는 화장실이 있는 모델이다. 더군다나 퀸 사이즈의 침대와, 밤에는 역시 퀸 사이즈로 변환할 수 있는 11자 소파가 있어서 거실과 침실의 구분도 지어지는 공간감이 있었다.



처음 차량을 인수받았을 때의 흥분감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반년 전 몽산포 난민촌 캠핑장에서 텐트 트레일러를 보며 부러워했던 내가 이런 하드탑 트레일러를 가질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간절히 원하면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처음 한 달간은 정박지에 가져다 둘 수가 없는 사정이 있어 동네 근린공원에 있는 주차장에 한 달 정도를 두고 지냈었다. 7월이었던가 일주일 간의 여름휴가 기간 동안 아침에 카라반에 출근해서, 창문 열어놓고 에스프레소 한잔 내려 마시고 책 보고, 낮잠 자며 보냈었다. 주말 아침에는 큰 애와 자전거 트래킹을 다녀오는 길에 카라반에 들러서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쉬다가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동안 살면서 로망도 많지 않았고, 그 로망을 이룬 적도 많지가 않아 이번 경험은 더욱 특별한 것 같다.


카라반 구매에는 허들이 많다. 비용도 처음 생각 대비 세배 이상 늘어났고,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주변 환경도 많이 받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와이프와의 확실한 consensus가 중요하다. 우리는 현실적 선택을 한 셈이다. 십 년 된 고물 자동차를 바꿀 때가 되어 자금을 준비해왔었는데, 폼생폼사로 좋은 차 뽑아서 일주일에 한 번 타고 말 거면 차라리 같은 돈을 카라반에 투자하자고 협의를 했다. 이런 모든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 아직도 결정은 못한 채 애만 태우고 있었을 거샤 같다.

아들과 13박 14일의 카라반 전국 일주 계획을 세웠다. 아직은 내가 운전이 서툰 점을 감안하여, 여행의 실행 시점은 내년 여름 방학이다. 그때까지 카라반 캠퍼로서 스킬을 쌓아두어야겠다. 아이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좋은 추억 많이 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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