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교환학생 이야기
덴마크에서 느꼈던 가장 큰 문화충격에 대해 묻는다면 '키우는 방식'이라고 하겠다. 애도 많고 개도 많은 이곳에서 지내면서 낯선 장면들을 꽤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국 친구들끼리도 대체 어떻게 키우길래 이렇게 되었을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을 정도이다. 한 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계속 관찰을 하게 됐다.
처음 덴마크의 양육 방식이 뭔가 다르다고 느꼈던 것은 한 궁전 근처에서였다. 궁전 앞 광장에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광장의 구 모양 조형물들이 눈에 띄었다. 그 위를 아이가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한 조형물에서 다음 조형물로, 또 그 다음 조형물로 점프했다. 동그란 표면에 디딜 곳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에 사고가 날까 걱정되어 자꾸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이의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아이가 뛰는 속도에 맞춰 걸어갈 뿐이었다.
레고랜드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다. 누가 밟고 침을 뱉었을지도 모르는 야외 계단이었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된 것 같은 아이는 계단을 올라가려면 바닥을 손으로 짚어야 했다. 아이는 최선을 다해 계단을 올라가려고 노력했고 보호자는 그 뒤에서 아이를 보고만 있었다. 이번에는 더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보호자가 바로 뒤에서 보호하고 있었다는 점이 조금 다르기는 했어도 아이가 이동할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할지, 또 어떻게 이동할지 스스로 결정한다. 자유롭게 걸어다니고 뛰어다니고 만지고 느낀다. 부모는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준이 된다면 주의를 주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였다.
늦둥이 동생의 손을 계속 잡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동생이 길을 잃을까, 넘어질까 걱정돼 동생을 자꾸 잡고 있었다. 이 버릇은 동생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했다. 어른이 가는 곳을 아이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아이가 가는 곳을 어른이 따라간다는 점에서 낯설지만 좋은 방식이라고 느꼈다.
덴마크에는 아이들만큼 개도 많다. 특히 대형견이 정말 많다. 입마개는 하지 않고 산책로나 공원에서는 목줄도 안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대중교통이나 일부 실내에서도 큰 제한 없이 개가 출입이 가능했다. 크기에 관계 없이 개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항상 긴장하고 다니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안심이 되었던 것은 주인이 개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책할 때 주인이 줄만 잡고 있는 게 아니라 통제권 자체를 가지고 있다는 게 보였고 개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 없이 주인만을 따라갔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날씨 좋은 날 책을 읽겠다고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의 넓은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이나 공 물어오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이에 홀로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잠시 뒤 한 남성이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강아지의 목줄을 풀었다. 그가 공을 던지면 강아지는 열심히 뛰어가서 물어왔다. 그 뒤에는 엄청 신나하면서 빙글빙글 돌며 다시 공이 던져지기를 기다렸다. 멀리 있는 강아지까지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라 책을 읽는 것도 잊고 구경을 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한 강아지가 내 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순간 굳어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1m 정도의 거리까지 가까워 졌을 때쯤,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강아지의 이름을 불렀다. 강아지는 바로 다시 주인에게 갔다. 흥분했을 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건 사람한테도 어려운 일이다. 개가 나보다 나았다.
덴마크에서 몇 달 간 지내면서 개들은 통제하고 아이들은 통제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울거나 짖는 소리를 상대적으로 덜 듣는다는 생각도 했다. 순하게 타고나서 보호자 입장에서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건지, 이렇게 대하니까 순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의 아이들과 개들이 좋은 방향으로 자랐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비밀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