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마케팅 및 앱 기획, 프로모션…같은걸 했다
주로 여행 이야기를 썼지만 밴쿠버에서 일도 했다. 사실은 코로나 때문에 많이 놀러 다니지 못해 홀리데이보단 워킹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와중에 참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 일하던 일과 비슷한 마케팅 일을 하게 되었고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해서 출근길이 즐거울 정도로 재미있게 일을 했는데, 까먹기 전에 그 이야기도 조금 써보려고 한다.
마케팅 매니저로서 소셜미디어 채널 운영을 기본으로 꽤 다양한 일을 했는데, 그 다양한 업무 대부분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가장 중요한 업무였던 것은 바로 코로나 위기 극복이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밴쿠버에 지점이 몇 곳 있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브랜드였는데 코로나 이후로 매출이 예년의 10% 정도까지 떨어지며 위기를 맞았다. 마침 내가 첫 출근한 날 캐나다 국경이 폐쇄되었고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후엔 내 사수였던 제너럴 매니저도 퇴사를 했다. 매장 인력도 많이 빠졌다. 계속 매장을 운영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손님이 많이 줄긴 했어도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들이 있었고 정부에서 락다운을 명령하기 전까지 매장 문은 안 닫는다는 사장님의 의지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놀라웠던 지점인데) 매장 운영에 리소스가 적게 드는 이때 새로운 활로도 찾고 마케팅에 투자를 해보자는 사장님의 결단이 있었다. 이 기회에 온라인 판로도 개척해보고 브랜드 메시지도 정돈하자고. 사실 말이 쉽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판데믹 상황에서 돈을 더 써야 하는 일을 시작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사장님은 매일 매출을 보며 걱정을 하긴 하셨지만 그 판단을 쭈욱 밀고 나가주셨고 덕분에 나는 굉장히 새로운 상황에서 꽤나 도전적인 일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물론, 결과적으로도 아주 괜찮은 성과를 냈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시작하고 가장 주요하게 가져갔던 프로젝트는 바로 자체 앱 개발이다. 기존에도 사용하는 앱이 있었지만 주문은 할 수 없고 결제할 때 포인트를 적립하는 정도였다. 우리의 주메뉴인 포케(Poke)는 주문 후 조리 속도가 아주 빠른 편이지만 개인의 취향이나 식습관에 따라 단계별로 재료를 조합해서 주문하는 특성상 매장에서 주문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매장 내에 머물러야 했다.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 실내 매장에 오래 머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는데, 만약 앱 내에서 조합과 주문, 결제가 가능하고 매장에서는 준비된 음식을 픽업만 할 수 있게 된다면? 물론 스타벅스나 치폴레 등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는 진작에 서비스하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우린 작은 로컬 브랜드였으니까. 그렇게 앱 내에서 메뉴 조합과 주문, 결제가 가능하고 매장에서 간단하게 픽업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하기로 했다.
여러 개발 업체와 비대면 미팅을 하고, 주문 과정이 어느 정도까지 구현이 가능한지 어떤 기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으며 로열티 프로그램과 프로모션은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지를 따져 업체를 선정했다. 앱에 들어갈 사진을 새로 찍고 메뉴와 단계 별로 선택할 수 있는 재료들을 정리해 자료를 넘겼다. 그 후로는 끊임없는 테스트와 기다림, 테스트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포케는 베이스부터 프로틴, 야채, 토핑, 소스까지 선택해야 할 옵션이 아주 많아서 오류도 잦았다. 오류는 당연히도 출시 직전까지 계속 나와서 계속 잡아내고 수정 요청을 하고 기다리고 또 잡아냈고, 기본적으로 세팅이 되어있다던 앱과 백오피스 연동도 앱 런칭 직전까지 계속 오류가 나서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거의 미쳐버리려고 했다. 작년 여름 우리 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말했던 단어는 아마도 glitch일 것. (새로운 단어를 익혔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glitch와 씨름하는 동안 나는 포인트 적립 비율 조정 등 로열티 프로그램을 정비하고 앱 프로모션을 기획했다. 프로모션 내용을 정하고 매장에 걸 프로모션 포스터를 제작하고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준비했다. 웹 매거진에 낼 제휴 기사와 콜라보 콘텐츠도 준비했는데 앱 개발이 끝날 듯 끝나지 않아 몇 달을 기다려 실행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나였다면 답답해 죽으려고 했겠지만, 여긴 원래 다 느리다는 말에 마법처럼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준비하며 때를 기다리게 되었던 점은 신기한 지점이다. 이 일도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일이구나 하는 작은 감상.
여러 번의 한숨과 여러 번의 화상회의, 몇 번의 (분노에 찬) 메일과 이런저런 일들 끝에 앱을 출시했다. 그간 준비해둔 모든 프로모션도 드디어 진행할 수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매출 상승이었다. 앱을 출시한 이유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우리 포케를 사 먹을 수 있는 창구를 만들기 위함이었으니까. 모든 프로모션은 매출을 올리고 단골이 찾는 횟수를 늘리고 새로운 고객을 단골로 붙잡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했다. 특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 고객이 어디로 처음 유입되든 반대편으로도 꼭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다. 우연히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는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앱을 다운로드하도록 유도하고, 그렇게 연결된 후에는 다시 인스타그램으로 쿠폰을 발행해 재방문을 유도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흥미를 가진 잠재 고객들에게도 앱 다운로드를 끊임없이 유도하여 한번쯤 매장에 방문하게 만들도록 노력했다. 보고서라면 전환 수치를 제시해 실질적으로 얼마큼의 효과를 냈는지 기록해야겠지만 이미 마케팅을 그만둔 나의 기록용 글이니까, 제법 효과 있었다, 라는 애매모호하고 말도 안 되는 표현 정도로 기록해둔다. (호호)
갑자기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여러 가지 업무 중에서도 가장 즐거웠던 건 이미지 제작이었다.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를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우리 음식을 더 먹고 싶게 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SNS를 운영했다. SNS 콘텐츠 외에도 포스터와 같은 제작물 기획도 했고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지겹도록 했지만 그때도 꽤 좋아했던 일이었으니 밴쿠버에서도 즐겁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더 자유로웠고 더 유기적이었고 무엇보다 물리적인 결과물을 자주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나는 디지털 마케팅을 하면서 생각보다 허무함을 많이 느꼈다. 텍스트, 이미지,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무형의 것들(만)을 끊임없이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억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고 결국 나의 노력과 시간이 무형의 데이터로 남고 쓸려 내려가면 나 말고는 다시는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는 점이 정말이지 허무했다.
그런데 여기는 한국보다 규모가 아주아주 작은 브랜드고 오프라인 매장이 훨씬 중요했다. 그리고 규모가 작다보니 한 사람이 여러 일을 했다. 나 역시 마케팅 이라는 이름 아래 들어가는 대부분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매장에 걸어둘 홍보물을 자주 만들었고, 특히 코로나 때문에 안내문이나 거리두기 스티커 같은 자잘한 제작물을 만들 일도 많았는데 거의 내가 만들었다. 물론 앱 출시 포스터같이 중요한 제작물은 디자이너 외주를 통해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도 기획은 내가 했고, 자잘한 안내문이나 스티커, 작은 포스터 같은 것들은 내가 만들어서 바로 제작해 매장에 걸어두었다. 손에 잡히는 것으로 제작물이 나온다는 것, 실제로 매장에 그것들이 전시되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의도에 맞추어 움직인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만족감을 주었다. 나는 내 일의 결과를 현실로 가져와서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제작 말고도 콘텐츠 기획과 촬영도 재미있었는데, 결과물에 욕심이 많은 포토그래퍼, 그리고 모든 것에 열정적이었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이자 나의 어시) 덕분에 나도 훨씬 더 영차영차 열정을 쏟아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촬영을 준비하고 진행했었다. 어딜 가도 예쁜 밴쿠버 풍경 덕분에 한국에서 '아 이런 배경에서 찍고 싶다' 했던 컷들도 꽤 많이 찍어봤다. 나도 이런 걸 해보는구나, 조금 짜릿하기도 했던 것 같다.
운이 좋아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이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고 좋은 사장님과 동료들 덕분에 더 시너지를 냈고 코시국이었지만 또 그 덕분에 평소라면 할 수 없었을 새로운 일을 많이 해서 정말 좋았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사무실로 지내던 곳에 새 지점을 오픈할 예정이어서 새 매장 오픈에 대한 프로모션 아이디어도 준비하고 매장 디자인에도 조금씩 관여하면서 (조명도 고르고 화분도 고르고!) 오픈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시의 허가가 너무 늦어지면서 결국 오픈을 못 보고 귀국하게 되었다. 매일같이 가던 곳이 멋지게 단장해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1년이었지만 1년이나 잊고 있다가 다시 발견해서 쓰는 22년의 지금, 얼마 전 그 지점이 문을 열었고 또 다른 지점 오픈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 일하던 친구는 아기 엄마가 되었고! 새로운 포케 메뉴와 디저트 메뉴도 생겼다. 나도 아예 마케팅을 그만두고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멀리, 정말 멀리 있는 곳의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내가 이렇게 일했던 것이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아 기분이 이상하다. 이렇게라도 적어둬서 얼마나 다행인지. 일하다가 힘들 때 내가 일했던 방식들, 좋아했던 일, 즐겁게 일했던 기억 같은 것을 돌이켜보기로 한다.
이렇게 밴쿠버 워킹홀리데이의 '워킹' 이야기 2년 만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