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짧고도 묵직한 충격음이 거실 공기를 찢었다.
선영의 몸이 휘청이며 검은 그랜드피아노 옆으로 기이하게 비틀렸다. 순간, 아까 무심히 내던져진 열쇠꾸러미가 발목을 감아 올리듯 걸렸다. 발끝이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찰나, 그녀의 몸이 무너져 내렸고, 차갑게 윤이 나는 대리석 바닥이 이마를 무자비하게 받아냈다.
피아노의 광택 위에 순간적으로 번뜩인 빛이, 눈앞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귀 안쪽에서 둔탁한 진동이 울리고, 숨이 가빠지며 세상이 한 겹씩 벗겨지는 듯했다.
머릿속에서는 핏물이 번져나가듯 서서히 어둠이 스며들었다.
그 어둠 속에서 장면들이 튀어나왔다.
비정규직 교사의 허리를 더 굽히게 만들던 날,
교내 대회 상장을 조작하던 서류,
은밀하게 건네받던 봉투,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지어 보이던 매끈한 미소.
모두가 잘 다듬어진 가면 속에서 흘러갔고, 그 속의 자신은 차갑고 완벽했다.
죄책감은 오래전 굳은 시멘트처럼 굳어버려, 부서질 기미조차 없었다.
그러나 지금, 바닥에 쓰러진 채 느껴지는 것은 단 하나였다.
숨이 꺼져가는 공포.
그리고 문턱 너머에 닿기 전의 간절함.
‘잘못했습니다… 제발… 천국에…’
이토록 짧고 작은 기도가 목울대에 걸려 나왔다.
피아노 현이 마지막 울림을 내뿜고 사그라들자, 집 안은 정적에 잠겼다.
그 고요를 찢은 건 낮게 길게 울리는 소리였다.
“야아옹―.”
그 울음은 어쩐지 단순한 고양이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어둠의 틈에서 들려오는,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심판의 신호 같았다.
눈을 찌르는 날카로운 빛이 닫힌 눈꺼풀 사이로 스며들었다.
빛에 밀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여기가… 천국인가?’
그러나 곧 전해진 건 의외의 감각이었다.
등 뒤로 스며드는 싸늘한 감촉.
돌바닥 특유의 차가움이 척추를 타고 전해졌다.
‘천국은… 이렇게 차갑지 않잖아.’
마지못해 눈을 떴다.
먼저 들려온 건 일정하게 쿵쿵 울리는 발걸음 소리와,
찰랑거리며 스치는 얇은 교복 치마의 바스락거림.
흐릿했던 시야가 점차 맑아지자, 아이들의 다리와 신발이 시야 아래서 오갔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은, 아침 햇살이 비추는 등굣길 한가운데였다.
“어머, 귀엽다.”
해사한 목소리와 함께 햇빛 속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다정한 손길이 이마에서 귀 쪽으로 부드럽게 흘렀다.
머리카락 대신, 빛을 머금은 짧고 매끄러운 털 사이를 손가락이 헤집고 지나갔다.
그 감촉이 낯설게, 그리고 섬뜩하게 스며들었다.
그 순간―
온몸이 본능처럼 솟구쳤다.
“아니, 뭐 하는 짓이야!”
목이 찢어질 듯 외쳤다.
확실히, 분명히 인간의 목소리를 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공기를 가른 건 날카롭고 찢어지는, 인간의 말과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야아아옹―!”
울음은 공기를 갈라 등굣길에 메아리쳤다.
아이들의 눈이 놀람과 환호로 반짝였다.
그제야 그녀는 알았다.
이 소리가, 이제부터 세상이 기억할 자신의 ‘목소리’라는 것을.
짧고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목울대와 혀, 성대까지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그 울음은 오래전부터 내 목소리였다는 듯,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야아아옹―!”
울음이 등굣길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이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깔깔 웃었다.
“진짜 귀엽다. 안아보자!”
작은 손들이 주저 없이 그녀의 몸을 향해 다가왔다.
촉촉한 코끝으로 스치는 바람결 속에서, 낯선 본능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발톱이 저절로 드러났고, 등줄기를 따라 털이 곤두섰다.
순간―
샤악!
발끝에서 번개처럼 뻗은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아이들의 놀란 비명과 함께 그들이 부리나케 뒤로 물러섰다.
등굣길의 웃음소리가 찢기듯 흩어지고, 공기 속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선영은 한 발, 또 한 발 뒤로 물러나더니, 햇빛이 반짝이는 담장 위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알 수 없는 짜릿함이 치밀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어.’
담장 위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그녀는 길게 울었다.
“야아아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