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은 속으로 다짐했다.
‘학교로 가야 해. 내 자리로… 내 교장실로.’
아이들 뒤를 멀찍이 따라가며 경비원의 시선을 피했다.
엎드려 숨을 고르다, 기회를 보아 로비 안으로 달려들었다.
발소리는 가볍지만 심장은 광란처럼 뛰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아하게 구두를 울리며 걸었던 그 길을, 오늘은 네 발로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 순간―
“어이쿠, 뭐야 이놈!”
이 선생이 대걸레를 들고 길을 막아섰다.
“이 선생, 잘 됐다! 나야, 나! 박선영 교장!”
간절한 눈빛으로 매달렸지만, 이 선생의 눈엔 그저 불청객 고양이일 뿐이었다.
슥―, 그리고 쾅!
대걸레가 망설임 없이 그녀를 몰아냈다. 마치 오래 참아온 원한을 쏟아내듯, 무자비하고 빠르게, 옆구리와 등짝을 쿡쿡 찔렀다.
“아휴, 교장 못 봐서 다행이지. 또 얼마나 나를 괴롭혔을까. 지긋지긋하다 정말.”
뒤에서 흘러나온 독기 어린 목소리가 선영의 귀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저 사람이… 내 앞에서는 그렇게 고분고분하더니….’
혼란과 굴욕이 한꺼번에 치밀었다.
학교 주변을 빙빙 돌았지만, 들어갈 길은 없었다.
‘내가 고양이라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건 꿈일 거야. 빨리 돌아가야 해. 내 집, 내 학교, 내 유토피아로….’
그러나 그곳은 이미 닫힌 문 너머로 사라진 듯했다.
월! 월! 월!
멀리서 뚝뚝 끊기던 개 짖는 소리가 점점 굵어지고 무겁게 다가왔다.
순간, 짖음이 또렷한 말로 변했다.
“넌 처음 보는 고양이구나. 여긴 내 구역이야. 썩 꺼져!”
선영은 두 귀를 쫑긋 세웠다.
‘개 짖는 소리가… 사람 말로 들린다고?’
“나 여기 교장이야! 골갑예술중학교 박선영이라고! 네 짖는 소리 때문에 내가 피아노 치다 몇 번이나 망쳤는지 알아? 그게 바로 너였구나!”
개는 코웃음을 치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뭐? 고양이 주제에 교장? 그럼 어디, 날 또 쫓아내 보시지?”
순간, 개의 입이 활짝 벌어지며 번득이는 송곳니가 눈앞을 스쳤다.
비린내 섞인 뜨거운 숨이 얼굴을 덮쳤다.
본능이 먼저 반응했다.
선영은 허공을 가르며 옆으로 튀어 올랐다. 그러나 개는 맹수처럼 방향을 틀어 다시 달려들었다.
추격전이 시작됐다.
학교 담장을 돌아 언덕을 오르고, 좁은 골목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발톱이 돌바닥에 긁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목구멍에서 거친 숨이 끓었다.
개는 포기하지 않았다.
뛰어오르면 따라오고, 담을 넘으면 그 밑에서 기다리고, 골목 모퉁이를 돌면 바로 뒤통수에 바람이 느껴졌다.
“헉… 헉…!”
선영은 인간이었을 때 느껴본 적 없는 공포와 굴욕에 치를 떨었다.
‘내가… 개한테… 이렇게까지…’
도망치는 길마다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고양이 몸이 아무리 날렵해도 오늘은 달랐다.
한 발짝 잘못 디뎠다가,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쓰레기봉투를 밟는 순간―
“퍽!”
봉투 속에서 썩은 양배추가 터져 나와 발바닥과 꼬리를 덮쳤다.
비린내와 시큼한 냄새가 한꺼번에 코를 파고들어 숨이 턱 막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개가 바짝 추격해왔다.
급히 담장 위로 뛰어오르자, 까치 한 쌍이 기다렸다는 듯 날개를 퍼덕이며 달려들었다.
“깍깍깍!”
부리로 정수리를 찍고, 날개로 뺨을 후려쳤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양쪽에서 협공하는 모습이 완벽했다.
‘까치까지 나랑 한 패냐…?’
머리 위에서는 먼지와 흙이 우수수 쏟아졌다.
옆집 공사장 인부가 삽질하다가 흙을 담장 밖으로 흘린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눈, 귀, 수염까지 흙범벅이 된 선영은 재채기를 연발했다.
“에취! 에취!”
그 사이 개는 담장 밑에서 점프를 시도했고, 앞발이 아슬아슬하게 담장에 걸렸다.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마치 온 세상이 한마음 한뜻으로 그녀를 쫓아내려 작정한 것 같았다.
까치, 쓰레기, 흙, 그리고 개까지.
‘좋다, 다 덤벼!… 아, 아니 잠깐, 진짜 덤비면 안 되지!’
정신없이 골목을 내달리던 선영은 코너를 돌자마자 하늘에서 내려온 또 다른 재앙과 맞닥뜨렸다.
바로 양쪽 건물 사이를 가로지른 빨랫줄.
그 빨랫줄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남의 속옷, 이불, 그리고 어제 빤 걸로 보이는 커다란 면바지가 매달려 있었다.
속도를 줄일 틈도 없이, 선영은 정면으로 돌진했다.
“푸슉!”
면바지가 얼굴을 감싸며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숨은 턱 막히고, 발은 헛디뎌 허공을 차는 사이―
개가 ‘기회다!’ 싶었는지 껑충 뛰어올랐다.
결과는 처참했다.
선영은 빨랫줄에 몸이 걸린 채 빙글빙글 공중에서 한 바퀴 반을 돌다가, 개 바로 앞에 “쿵!” 하고 떨어졌다.
놀란 개는 순간 멈칫했지만, 곧 이빨을 드러내며 다시 달려들었다.
머리 위에서 까치가 다시 깍깍 울었고, 담장 너머에서 공사장 인부가 얼굴만 내밀어 외쳤다.
“거, 고양이 괜찮아? …아니, 근데 왜 이렇게 꼴이…”
온 세상이 한 통속이 되어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기분.
박선영은 숨을 헐떡이며 생각했다.
‘…제발, 이게 악몽이길.’
결국, 학교 담장 옆 언덕 밑 억새풀 더미 속으로 몸을 처박았다.
날선 풀잎이 얼굴을 긁었지만, 숨죽이고 버텼다.
심장이 귀 가까이에서 북을 치듯 울렸고, 온몸의 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게… 내 인생 최악의 하루다.’
빨랫줄에 걸려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선영은 한동안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
흙먼지와 비린내, 땀과 개침 냄새가 한꺼번에 뒤섞인 꼴.
예전이라면 하루 종일 욕실에서 씻고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을 냄새였다.
그런데 지금은, 발톱 하나 깎을 수 있는 손가락도 없었다.
윤기 흐르던 머리카락 대신 먼지투성이 털, 값비싼 명품 시계 대신 거칠게 갈라진 발바닥.
선영은 억눌러왔던 숨을 길게 내쉬더니,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야아아옹… 야아옹…”
처음엔 단순한 울음이었지만, 곧 쉰 소리가 섞이며 깊게 가라앉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사람일 때 조금만 더… 아니, 많이 더… 제대로 살 걸…’
머릿속에 지나간 건, 경비의 굽은 허리, 울던 장은희, 무시했던 승희의 뒷모습.
그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가슴 한가운데 서늘하게 박혔다.
선영은 꼬리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앞발로 어설프게 훔쳤다.
그러나 눈물은 더 쏟아져 나왔다.
마치 오랫동안 묶여 있던 무언가가 한꺼번에 터져버린 듯, 울음은 멈출 줄 몰랐다.
멀리서 까치가 깍깍 울었고, 개가 여전히 골목 어귀를 서성이며 으르렁거렸다.
선영은 두 귀를 축 늘어뜨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한 번만… 다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하지만 대답해주는 건 아무도 없었다.
바람만이, 그녀의 처량한 울음을 실어 골목 끝까지 퍼뜨리고 있었다.
그때―
가늘고 떨리는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스며들었다.
“야옹… 야옹…”
소리는 점점 선명해졌다.
풀숲을 헤치자, 한 줌도 안 되는 새끼 고양이들이 서로 몸을 붙인 채 웅크려 있었다.
작은 숨결마다 엄마를 부르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 순간, 선영의 등줄기를 타고 전혀 다른 감각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낯설지만 뜨겁게 일렁이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뒤에서 낮고 묵직한 울음소리가 울렸다.
“야아아옹―.”
노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빛났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검은 고양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