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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Mar 26. 2020

나를 객관화하는 즐거움

사람들이 MBTI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1~2년 사이에 MBTI 성격유형검사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6가지의 유형으로 나뉘는 이 검사는 심리학적으로는 신뢰도가 떨어지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 재미 삼아 퍼지기 시작하며 각종 분석글을 낳았다. 사실 나는 이런 종류의 심리 테스트를 매우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는 혈액형 성격론을 맹신했고, -물론 지금은 아니다- 이번 MBTI 유행에도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알면서도 여러 유형과 글들을 찾아보며 즐겼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분석글을 좋아하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성격 유형 분석'이 주기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친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노력하려는 편이다. 이 때문에 예전부터 내 포용 범위 안의 사람들의 고민상담을 많이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민이 있는 친구의 심리를 “객관적”으로 말해주며 현실적인 조언을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공감 없이 조언만 늘어놓았다는 것이 아니다. 공감과 함께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조언을 하면서 그 친구가 말하지 않은 상황적 맥락이나 심리를 읽어내는 것에 약간의 쾌감을 얻었다.



   내가 이때 얻었던 쾌감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세상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그 본질과 메커니즘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본능은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이다. 자연의 본질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본능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사회와 인간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철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이 발전했다. 내가 고민상담을 해주며 느꼈던 쾌감도 타인의 상황과 감정의 맥락과 본질을 읽어냈다는 것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객관화를 위해서는 개인적 경험과 감정, 편견을 배제하고 대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감정 없이 바라볼까. 그렇기 때문에 나를 객관화하여 바라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나를 분석해줄 타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야?'를 확인받기 위해 사람들은 주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을 던지는 대상과 형태는 다양하다. 친한 친구나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성이 될 수도 있고, 익명의 인터넷 커뮤니티나 심지어는 이름만 입력하면 랜덤한 결과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에서도 답을 얻으려 한다. '나 정도면 평범한가?', '내 첫인상 어땠어?', '난 자주 ~~ 하는 편인데 다들 이래?' 등등 일상에서 익숙하게 오가는 질문들이 앞서 말한 사람의 본성을 입증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게 MBTI와 같은 성격유형검사는 가장 쉽고 객관적으로 나를 분석해줄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약 12분 정도, 몇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세하고 구체적인 지표와 숫자, 설명으로 꽤나 그럴듯하게 설명해준다. 심지어 내가 해당되는 4자리의 알파벳만 기억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유형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즉,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해서 설명하고 분석해준다. 참으로 간편하고 유용하다. 이는 MBTI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비록 신뢰성은 떨어지더라도 '검사'로 분류되는 MBTI보다 훨씬 비논리적이고 근거 없는 혈액형 성격론은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마치 상식처럼 유행했다. 이러한 혈액형 성격론이 오랫동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이었다. 설령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더라도 맞는 부분만 바라보고, 심지어는 내가 아는 나보다 근거 없는 인터넷의 글을 믿고 싶어 할 정도의 강한 욕망이다.







   이상은 내가 생각해본 MBTI의 인기 요인이다. 재미있게도 내가 MBTI가 왜 이렇게 인기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마저 '내가 이걸 왜 좋아하지?'라는 질문에서 나왔다. 남이 주는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지만 않는다면, 나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알아가면서 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가야 하는 것처럼,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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