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자기소개서(1) 경험중심으로 기술
진짜 오시는 거에요?
그는 8년 넘게 친분을 쌓아오던 대표님이었다. 꼬꼬마 때부터 일이든 뭐든 챙겨주시는 터라 개인적으로도 많이 가깝게 지냈다. 함께 업무를 한지는 꽤 됐지만 오고 가는 중에 한번씩 들러서 소식을 전하곤 했다.
그 날도 근처를 지나시다 들렀는데 이러저러하게 인연이 닿아 해외 진출을 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눈빛이 함께 일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 바로 팀을 꾸리면 나도 합류하겠다고 했다. 언젠가 한번은 함께 일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이왕이면 날 필요로 할 때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해외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동시에 구상하고 있었는데, 주위의 선수들을 모아 팀을 결성하고 싶어 했다. 그 동안 워낙 친하게 지낸 분들이 많았고, 그 중에 내가 아는 선배들도 있었다. 그 중 몇몇과는 워크샵과 현지 출장도 다녀왔다. 그렇게 여러 사업을 탭핑하던 중 한가지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 같았다.
해외 현지에서 얼마간 머물며 사업계획서를 쓸 팀이 필요했는데, 그 대표가 고려하는 여러 명 중에 나만 합류를 결정했다. 나머지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고, 여러 가지고 고려를 하고 있었다. 대표는 그들에게 여러 번 제안을 했는데 결국 합류하지 않자 본인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해 히스테리를 부렸다. 잘 달래서 현지까지 갔는데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는 것 같았다.
그 회사 팀장과 실무자들도 친분이 있었는데, 내가 합류하니 다들 놀라워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한 목소리로 외쳤단다.
“리셋증후군 팀장님, 진짜 오시는 거에요?”
사실, 그 당시에는 내 의리에 대한 찬양인 줄 알았는데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을 깨달았다. 이들은 날 걱정해 준 것이었다.
현지에서는 꽤 힘들었다. 현지 언어도 익숙하지 않은데, 영어를 그다지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업무도 생활도 쉽지 않았다. 사업계획 수립에 대한 조급함은 나만 가지고 있었다. 주요 의사결정은 매번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미뤄졌다. 내 연봉이 회사에서는 꽤 부담이었을 텐데 그 걱정도 나만 했다. 내가 빨리 비즈니스를 시작해 돈을 벌고 싶었던 반면, 대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여유로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유롭지 않았는데 돌파구를 모르는 것 같았다. 현지 장기 출장의 목표를 사업계획 수립이 아니라 파트너사와의 유대관계 구축에만 두는 것 같았다.
드디어 첫 번째 설전을 벌였다. 금방 잘 마무리 했다. 해외 신사업 업무 말고도 대표는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나의 도움을 구했다. 그 머나먼 땅에서 한국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을 위한 자료를 구했다. 나름 자부심을 갖던 일에 대해 내가 부정적인 의견을 주고 중단할 것은 권고했을 때 기분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일들은 그것이 기회일 수 있다. 다만 그럴 때에는 본인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꽤 어려운 일이었는데, 회사에서 하고자 하는 사람도 없어서 중단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설전을 벌였다. 이번에는 좀 직설적으로 말했는데, ‘여기 왜 왔냐’, ‘왜 공부 안 하냐’, ‘이렇게 시간 죽이면 내 월급 안 아깝냐’, ‘도와줄 사람들 만나야지 왜 아무도 못 만나게 하냐’ 등등 두 달 동안 쌓였던 화를 뿜어 냈다. 대표는 이상한 방향으로 내 얘기를 받아 들였다. 가족 같이 생각하는 네가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월급 누가 주는데’ 소리를 들었다. 대표는 나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월급을 주기 시작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까먹은 것 같았다. 어이가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와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계속 카톡으로 헛소리를 지껄였다. 대표 방으로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업무방식 등에 개선의 여지가 없음을 확인했다. 바로 나와 짐을 쌌다.
그 뒤로 한번 연락이 왔는데 그냥 씹었다. 그 동안의 친분은 그렇다 치고, 업무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과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권한을 다 주는 것도 아니고 주지 않는 것도 아니고, 대표가 돼서 직원을 질투하면 되겠나! 말 그대로 월급 네가 주면 스스로 본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경영을 잘하면 될 것이지 쓸데 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생각하면 안쓰럽긴 한데, 본인이 고쳐야지 누가 뭐라고 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