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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셋증후군 May 19. 2024

13. 진짜 오시는 거에요?

제3장 자기소개서(1) 경험중심으로 기술

진짜 오시는 거에요? 


그는 8년 넘게 친분을 쌓아오던 대표님이었다. 꼬꼬마 때부터 일이든 뭐든 챙겨주시는 터라 개인적으로도 많이 가깝게 지냈다. 함께 업무를 한지는 꽤 됐지만 오고 가는 중에 한번씩 들러서 소식을 전하곤 했다. 


그 날도 근처를 지나시다 들렀는데 이러저러하게 인연이 닿아 해외 진출을 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눈빛이 함께 일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 바로 팀을 꾸리면 나도 합류하겠다고 했다. 언젠가 한번은 함께 일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이왕이면 날 필요로 할 때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해외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동시에 구상하고 있었는데, 주위의 선수들을 모아 팀을 결성하고 싶어 했다. 그 동안 워낙 친하게 지낸 분들이 많았고, 그 중에 내가 아는 선배들도 있었다. 그 중 몇몇과는 워크샵과 현지 출장도 다녀왔다. 그렇게 여러 사업을 탭핑하던 중 한가지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 같았다. 


해외 현지에서 얼마간 머물며 사업계획서를 쓸 팀이 필요했는데, 그 대표가 고려하는 여러 명 중에 나만 합류를 결정했다. 나머지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고, 여러 가지고 고려를 하고 있었다. 대표는 그들에게 여러 번 제안을 했는데 결국 합류하지 않자 본인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해 히스테리를 부렸다. 잘 달래서 현지까지 갔는데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는 것 같았다. 


그 회사 팀장과 실무자들도 친분이 있었는데, 내가 합류하니 다들 놀라워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한 목소리로 외쳤단다. 

“리셋증후군 팀장님, 진짜 오시는 거에요?” 


사실, 그 당시에는 내 의리에 대한 찬양인 줄 알았는데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을 깨달았다. 이들은 날 걱정해 준 것이었다. 


현지에서는 꽤 힘들었다. 현지 언어도 익숙하지 않은데, 영어를 그다지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업무도 생활도 쉽지 않았다. 사업계획 수립에 대한 조급함은 나만 가지고 있었다. 주요 의사결정은 매번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미뤄졌다. 내 연봉이 회사에서는 꽤 부담이었을 텐데 그 걱정도 나만 했다. 내가 빨리 비즈니스를 시작해 돈을 벌고 싶었던 반면, 대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여유로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유롭지 않았는데 돌파구를 모르는 것 같았다. 현지 장기 출장의 목표를 사업계획 수립이 아니라 파트너사와의 유대관계 구축에만 두는 것 같았다. 


드디어 첫 번째 설전을 벌였다. 금방 잘 마무리 했다. 해외 신사업 업무 말고도 대표는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나의 도움을 구했다. 그 머나먼 땅에서 한국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을 위한 자료를 구했다. 나름 자부심을 갖던 일에 대해 내가 부정적인 의견을 주고 중단할 것은 권고했을 때 기분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일들은 그것이 기회일 수 있다. 다만 그럴 때에는 본인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꽤 어려운 일이었는데, 회사에서 하고자 하는 사람도 없어서 중단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설전을 벌였다. 이번에는 좀 직설적으로 말했는데, ‘여기 왜 왔냐’, ‘왜 공부 안 하냐’, ‘이렇게 시간 죽이면 내 월급 안 아깝냐’, ‘도와줄 사람들 만나야지 왜 아무도 못 만나게 하냐’ 등등 두 달 동안 쌓였던 화를 뿜어 냈다. 대표는 이상한 방향으로 내 얘기를 받아 들였다. 가족 같이 생각하는 네가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월급 누가 주는데’ 소리를 들었다. 대표는 나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월급을 주기 시작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까먹은 것 같았다. 어이가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와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계속 카톡으로 헛소리를 지껄였다. 대표 방으로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업무방식 등에 개선의 여지가 없음을 확인했다. 바로 나와 짐을 쌌다. 


그 뒤로 한번 연락이 왔는데 그냥 씹었다. 그 동안의 친분은 그렇다 치고, 업무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과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권한을 다 주는 것도 아니고 주지 않는 것도 아니고, 대표가 돼서 직원을 질투하면 되겠나! 말 그대로 월급 네가 주면 스스로 본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경영을 잘하면 될 것이지 쓸데 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생각하면 안쓰럽긴 한데, 본인이 고쳐야지 누가 뭐라고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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