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제

나쩡

by 로사 권민희


자유주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초등교육을 받던 꼬꼬마 시절, 동화책을 통해 처음 만났던 속담이다.

옛날 옛날, 가늘고 길다란 다리를 가진 황새와 짧고 볼품없는 다리를 가진 뱁새가 있었다. 뱁새는 우아한 모양새로 사뿐히 걷는 황새를 부러워한다. 짧은 다리를 쭉쭉 찢어가며 황새의 걸음걸이를 무리해서 따라하던 뱁새는 결국 크게 다치고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동화는 뱁새의 처지가 얼마나 우습고 비참해졌는지 아주 친절하게 이야기해줬고 어린 나는 겁에 질렸다. 세상에, 주제파악을 못하면 이렇게 아프고, 수치스럽고, 슬프고, 어쨌든 골고루 고통받게 되는구나!


초등학교 체육시간, 옆자리 유연한 친구를 이겨보겠다며 억지로 뻣뻣한 다리를 쭉 찢었다가 며칠을 절뚝거렸다. '다리 찢어진 뱁새' 꼴을 몸소 겪은 이후, 이 속담은 '나대지 마, 다쳐'라는 더더욱 위협적인 뉘앙스를 품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 속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뱁새에 대한 이미지도 썩 좋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애꿎은 황새를 괜히 시기하고 질투하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심술궂은 새. 게다가 이름에 들어가는 '뱁'이라는 글자도 왠지 이상했다. 쫙 찢어진 눈매가 불만으로 가득 찬, 기분나쁘게 생긴 새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얼마 전, 우연히 뱁새의 사진을 보기 전까진 그랬다.


뱁새를 본 적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속담에 뱁새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내 생각에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뱁새는 미친듯이 귀엽게 생겼다. 조물주가 세상의 모든 귀여움을 다 때려박아 창조하겠노라 작정한게 아니라면 이런 생김새는 나올 수 없다. 세상에, 이런 깜찍함 앞에서 다리 길이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 물론, 다리 찢어진 뱁새에겐 자기 다리길이와 쫑쫑 걷는 모양새가(귀여워!) 컴플렉스였을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안타깝다. 아아, 이렇게 큰 귀여움을 갖고도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다가 다리가 찢어지다니...... 가여운 뱁새야.


뱁새의 귀여움과 새벽감성에 취한 나의 두뇌는, 자신의 장점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존감 낮은 뱁새가 열등감에 휩싸여 고통받는 이야기로, 속담을 자꾸 왜곡해버린다. 자꾸자꾸. 이 속담은 '네 분수를 알아라' 라는 냉철한 지적이기 보다는 '네가 가진 장점을 왜 보지를 못하니!'하는 애정어린 탄식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사랑스러운 속담이었을지도.

어쨌든, 뱁새는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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