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여름
아직도 내 기억 중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 고향의 자연 속에 묻혀 보내던 여름날의 추억 몇 가지ᆢ
하루라는 시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데 그 시절 여름철 하루는 참 길었었다. 그 긴 하루를 보내며 내 기억의 깊은 곳에 자리한 시골의 푸근한 정서는 지금도 내 가슴 깊이 남아서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는 활력소와 자양분이 되고 있다ᆢ 몇 가지 생생한 기억을 나열해본다.
첫 번째 "참외와 배탈과 설사"
아버지는 외지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 내가 방학 때 집에 오면 그 귀한 참외를 가마니 단위로 사서 안채에 있는 광에 쌓아 놓으셨다. 이 참외는 방학기간 내내 나의 특별 간식이 되었는데 때론 너무 많이 먹어 배탈과 설사로 고생하기 일쑤였다.
두 번째 "약초밭과 쐐기"
어머니는 점심때가 되면 약초밭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나를 약초밭으로 보내곤 하셨는데 약초밭고랑을 지나다 보면 아무리 조심을 해도 꼭 쐐기 한두 방은 쏘이게 된다. 이 쐐기는 약초의 약성 때문인지 통증도 심하고 지속기간 또한 매우 길어서 발가락 사이에 물린 한두 곳은 고등학교 졸업 때 까지도 가끔 통증을 느꼈었던 기억이 있다.
세 번째 기억은 "무섭게 퍼붓는 소나기와 눈부시게 빛나는 맑은 하늘"
어린 시절 소나기는 비의 양과 내리는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소나기가 내리면 동구 밖 개울은 이내 범람해서 학교도 못 가게 되고 방과 후 소나기가 내릴 때는 친구 부모님들이 개울가까지 마중을 나오곤 했었는데 나는 작은집이 학교 옆에 있다는 이유로 한 번도 부모님이 마중을 나오시지 않아서 아주 서운함을 느끼곤 했었는데 비 갠 후 눈부시게 밝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이내 섭섭한 마음이 가라앉곤 했었
네 번째는 "넝쿨 딸기와 푸진"
우리 집에는 농사 일꾼(보통 머슴으로 부른다)이 여러 명 있었는데 나는 그들이 큰 산에 풀을 베러 갈 때면 특별히 큰 산에서 나는 알이 굵은 넝쿨 딸기를 따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들이 귀가할 때 꼴짐 맨 위에 꽃아 와 건네준 빨간 딸기의 새콤 달콤함은 풀밭에서 뛰어 노느라 다리에 번진 푸진( 풀잎의 독성에 의해 생긴 일종의 부스럼)으로 여름내 고생하던 나의 심신을 달래주곤 했었다.
다섯 번째는 "모깃불과 하루거리"
유난히 모기가 극성인 날에는 모기퇴치를 위해 모깃불을 피운다. 가끔 모깃불 옆에서 멍석을 깔아놓고 식구들이 식사를 할 때도 있었는데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물을 닦아내며 식사를 하고 이때쯤 이면 적어도 식구 중 하나쯤은 하루거리("초학"이라고도 불렸으며 일종의 말라리아 같은 증상)에 교대로 걸려 다른 식구들은 너무 더워 웃통까지 벗고 있는데 환자는 혼자 솜이불을 덮고 끙끙 앓곤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