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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Sep 19. 2024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조언컬렉터가 돼버렸다  

오후 4시 31분, 여전히 여름이 꼬장꼬장하게 살아있는 9월의 어느 날. 

오래된 맥북이 힘겨운 숨을 깊게 내쉰다. 나는 이 노트북의 거친 숨을 애써 무시하면서 타타타탁탁 무언가를 쓰다가, 따다 따따따 따 금방 또 새침하게 지워버렸다. 맥북의 숨소리와 타자의 리듬만이 이어지고, 나는 그 소리들이 꽤나 잘 어울리는 화음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이 길어질수록 커리어 고민은 더 깊어만 간다. 이미 몇 번의 선택지를 앞에 두고 결정을 해 봤음에도, 어쩜 커리어의 고민은 매번 이렇게 특수하고, 이토록 다이내믹하며,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는 걸까. 그러다 또 이렇게 지나고 나면, 그땐 후회의 재발견을 얘기할 테지.  


그야말로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 '북쪽으로 가야지!' 하고 발을 내딛다가, 추울 것 같은데 라며 다시 제자리. 남쪽으로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라며 또 제자리. 동쪽으로 가자니 뜨뜻미지근한 이것 또한 영 탐탁지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몇몇 분들에게 조언을 들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답답한 나의 마음과 별개로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각자의 삶의 궤적에 맞춰진 조언들을 듣는 게 너무 좋아서, 이러다가 나의 정체성에 '조언 컬렉터'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이왕 조언컬렉터가 된 김에, 지금의 나에게 유용했던 그 말들을 기록해 본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마인드셋에 도움이 되는 말,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상황을 비유해서 표현했을 때 그 말이 갖는 힘이 있다는 것. 그런 조언들이다. 


여전히 수없이 헤메이고, 부딪쳐서, 아젠 그만 길을 잃을래요 하고 싶지만, 

결국엔 이 과정 자체가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서사임을, 그렇기에 어떤 방향으로 가든 의미 있는 돌파구를 마련할 거라 믿는다. 



나랑 잘 맞는 회사는 나를 알아보게 되어있어요 


최종 면접을 앞둔 날이었던가, 결과를 기다리던 때였던가. 한 구석에서 작게 시작된 불안한 마음이 그 몸집을 불려 가던 때, 이럴 땐 따뜻한 온도의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꼭 되어야겠다는 부담감도,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놓아버릴 수 있는 마법의 주문 같았다. 넌 할 수 있어, 될 거야, 잘해봐 등의 말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데, '나랑 잘 맞는 회사는 나를 알아보게 되어 있어요'라는 이 말은 내 마음속에 한참을 머물더라. 


어찌 보면 이제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와 조건 말고, 나랑 잘 맞는 회사를 서로 알아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임을 알아서 일지도. 또는, 잘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 내 마음의 반창고 같은 말이어서 그랬을지도. 



회사를 선택하는 건 결혼하는 것과 비슷해요.
남들 말은 중요하지 않고요, 실제로 그 일을 할 본인의 마음이 중요해요. 


가장 신뢰가 가던 헤드헌터 분에게 별도로 조언을 여쭸다. 말의 온도가 따뜻하되 예리함도 갖추고 있는 분이라 그런지 통화하면서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조언 대신, 몇 가지의 질문을 차례대로 주더라. 정해둔 답변 대신 질문을 준 건, 회사는 남편을 택할 때와 비슷해서 나에게 맞는 곳인지 아닌지가 중요하기에 다른 사람이 의례 하는 말 말고 나 자신에게 맞는지를 보라는 의미였다. 


직장 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등의 여러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의 끝에서, 그분의 마지막 질문은 이랬다. "그래서 그럼 그 조건으로 그곳에서 일한다고 해보죠. 힘들고 어려운 일은 언제나 있을 거잖아요. 그 조건 때문에 그런 상황 일 때마다 짜증 나는 마음이 들 것 같으세요?" 


그리고, 질문을 듣자마자, 이에 대한 나의 대답도 바로 나왔다. 



그 상황은 말이야, 마치 코인에 투자를 할까 말까 하는 것이 아닐까


예전 직장 상사 분. 커리어 조언이 필요할 때면 여러 차례 문을 두드리곤 했던 선배다. 지난주에도 조언을 받고 후속 팔롭 삼아 또 전화해 조언을 구했다. 워낙 논리적인 분이고 길게 넓게 보는 분이라 그 관점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1차, 2차, 3차의 얘기를 쭉 들으시더니 하시는 말... 


"내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건 마치 코인의 열풍에 합류를 하는 것 같은데."

"네에? 이 결정이 도박처럼 느껴진다고요?" 


고민이 많을 때는 늘 이야기가 길어진다. 주절이 주절이 떠들고 있다 보면, 내가 그래서 뭘 말하고 있는 거지 싶은 순간이 오는데, 이럴 때 직관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비유해 주는 것도 상대방이 본인만의 길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대화 이후, 또다시 마음에 어떤 울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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