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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Aug 22. 2023

어쩌다 '인생' 워크숍

인생의 답을 찾는 여정에 대화만큼 유용한 게 어딨겠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설레는 탐험이 되고, 신뢰하는 사람들과의 여행은 인생을 공유하는 워크숍이 된다.


한참 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 12년 전 한 팀으로 일했던 사람들과 하룻밤 여행을 떠났다. 멤버는 30대에서 50대까지 총 6명. 까칠하고 까다로운 사람 셋, 뭐든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사람 하나, 넓은 포용력으로 사람들을 조용히 품는 이 둘.


한두 시간을 달려 고즈넉한 한옥에 도착했고, 우리의 대화는 낮과 밤을 지나 아침으로 이어졌다. 평온했고, 심오했고, 유쾌했다. 쏟아지는 말에는 저마다의 고민과 고집이 묻어 나왔다. 나는 백수 삶에서 파생되는 '잉여력' 폭발을 말했고, 어떤 이는 사십 대에 찾아온 '나다움'의 고민을 얘기했고, 어떤 이는 '커리어' 갈림길 고비를, 또 다른 이들은 이른바 '요즘 아이들'을 이야기했다.


십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도 변하지 않는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고, 동시에 시간에 마모된 서로의 둥근 모서리도 목격하고 있었다. 시간이 쌓인 관계는 서로에게 이어지는 어떤 길을 만든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쏟아지는 대화는 언제나 힘이 세다.



"장보기 주제 하나에도 대화가 이어지잖아"

대화는 신비로운 영역이다. 이어나가기 까다롭다가도, 한 없이 시시해져버리기도 한다. '잘' 한다는 것은 주관적이고, 정답도 없다. 즐거운 대화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관찰만이 필요할 뿐, 사실 그게 전부다.


저녁 바비큐를 위해 장 봐온 먹거리를 보면서 까다로운 이가 말했다. "글쎄, 가니쉬용 아스파라거스를 구워 먹는다고 사 온 거예요. (...) 장어는 양념도 소스도 없이 그냥 사 왔더라니까요...(...) 근데 착한 *은 글쎄 (...)"


껄껄거리며 한참을 듣다가 누군가 말했다. "무슨 장본 얘기가 이렇게나 이어지죠? 지금 직장에 있는 한 친구는 회사 사람들과 어떻게 말을 섞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던데, 장 본 이야기만으로도 웃어 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면 깜짝 놀랄걸요?"


우린 안다. 이 시시껄렁한 얘기 안에 멤버들 저마다의 개성이 담겼다는 걸. 그래서 그 대화가 더 생기를 얻는다는 걸.



"저는 요즘 '나다움'을 고민해요"

누구보다도 단단한 사람이 이 말을 꺼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 그만큼 잘 해내는 사람이기도 했다.


20대 시절에도 흔들림 없이 본인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40대에 접어들어 고민한다는 키워드는 의외이기도 했다. 왜 이럴까, 뭐가 문제일까 고민을 하다가, 회사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의 본질은 결국 근본적인 '나'에 대한 고민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회사도, 동료도, 환경도 아닌, 결국은 나의 문제일 수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결국은 그게 전부일 수도 있다.


정체성 탐구와 방황은 20대의 전유물일 것 같지만, 나이가 들수록 늘 고비가 찾아오기 마련이더라. 아니, 내가 지금까지 일해온 방식이 다른 세대 또는 문화를 만나 섞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선이 있죠. 더 고집부리면, '인재'가 아님을 인정하는 셈인, 그 어떤 선"

장난기 많은 이는 슬슬 웃으면서 말했다. '딱 여기까지'라는 선이라는 것이 있다고. 회사에서 나의 직무를 결정하는 데 있어, 여기서 더 난리 치면 더 이상 내가 회사가 인정하는 '인재'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선에 도달한다고.


대개 회사 안에서 인정받는 인재라 함은 뾰족한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직무에 상관없이 뭐든 잘 해낼 제너럴리스트로 키워지기 마련이다. 본인의 의사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때가 중요하다. 어떤 선을 기점으로 받아들이고 거절할 것인지,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달려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인재의 도리란 거다.


"우린 그 선이 어딘지 잘 알잖아요. 계속 거부했다가는 제가 제 스스로 인재가 아님을 인정하는 셈이 돼버리는 선. 그땐, 물러서야죠. 선택해야죠"



"매니저를 매니징 하는 법을 배워야죠"

요즘의 나는, 그 어떤 회사든,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무작정 아련함을 느낀다. 앞뒤 안 보고 나의 감정을 이입하곤 한다. 이 날도 그랬다. 뒤늦게 도착해 우리가 나눈 얘기를 속사포로 듣던 이가 말했다.


"부정적인 말을 지양하고, 본인을 낮춰야 해요. 으유, 속았지, 사실 내가 너를 매니징하고 있다,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매니저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승인해 줄 수 있도록 매니징 해야죠."


결국 마인드셋이 전부일 수 있다. 회사도 서로가 서로를 길들여가는 과정일 테니까.




밤이 깊어졌을 즈음, 누군가 말했다.

"오늘 말이야, 이거 우리 인생에 대한 워크숍이네"


그랬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 한참 힘들게 깨닫고 있는 지혜들, 무심하게 툭툭 던지지는 다정함들. 그런 것들이 버무려진 인생 워크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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