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혜경 Aug 17. 2023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돌로미테 21일 / 코르티나 담페초 넷째 날 /  23. 06. 28

Crepe de Zumèles / Forcella Zumeles


버스로 8시 30분 Rio gere에 도착해서 멋있고 친절하고 스위트한 이탈리아 부부의 도움으로 트래킹을 시작했다.  지금 사진으로 다시 봐도 멋진 커플~


오늘은  Zumèles 산을 걷기로 했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버스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몆 군데 없는데, 여기는 보통은 로컬들만 다니는 곳이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표지판도 안 보이고, 주변은 공사로 산만하고, 날씨는 흐리고 스산한데 버스에서 내린 사람은 나 혼자.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가 길을 물어 올라가다 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로컬들만 다닌다는 곳인데 너무 무모하게 혼자 왔나 싶고, 날씨까지 안 좋으니 살짝 후회가 되려고 한다.


다시 내려오니 마침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막 내리는 젊은 커플이 있길래 물어보니 타바코 맵을 켜서 알려준다. 나도 타바코 앱을 깔긴 했지만 익숙지 않아서 앱만 깔아놓고는 무용지물인데..

심지어 지도를 스크린샷 해서 내게 메일로 보내주기까지 했는데, 내 메일함엔 메일이 들어오질 않는다. ( 인터넷 상태가 안 좋아 나중에서야 메일을 확인했다 ) 할 수 없이 알려준 길 쪽으로 걸어가는데 주변이 도로공사 중이라 다 파헤쳐지고, 표지판도 없고 안전망까지 쳐져있어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나를 다시 부르더니 트래일 시작점까지 데려다주고 갔다.


길은 처음엔 한적한 숲길. 게다가 알려진 길이 아니어서 조용하고 인적도 없다. 혼자 고즈넉한 숲 속 흙길을 한참 걸었다.  인적도 없고 많이 알려진 길도 아니니 헤매는 건 당연지사. 다시 한번 헤매긴 했지만 다시 잘 찾아갔다.


난이도가 중상으로 되어있어서 별 긴장 없이 걸었는데 , 갑자기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전문가 또는 숙련된 사람만 올라가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지난번 그 어려운 길도 걸었는데 싶기도 하고, 보기에 그때만큼 어려워 보이지는 않기에 좀 올라가다 아님 내려오지 뭐 하는 생각으로 올라갔다.


경사가 심하긴 해도 지난번만큼은 아니고 그리 위험해 보이진 않아서 계속 올라갔다. 하지만 여기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니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눈이 쌓여있진 않고 길이 또렷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급경사에 발 하나만 겨우 디딜 수 있는 데다 미끄러워서 한 두 구간은 또 스틱을 손목에 걸고 겨우 건너야 했다. 그렇게 거의 올라갔을 즈음에야 처음으로 위에서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처음에 내게 길을 알려주었던 바로 그 페라라에서 왔다는 이태리커플이었다!!!  세상에나~~~


그들은 나와 반대편 쪽에서 시작해서 걸어왔던 것.

내게 엄지 척!

하며 이제 아주아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산 정상이고, 그다음부터는 편안한 길이라고 했다.


너무 반가워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함께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내려오는 길은 숲 속 편안한 길이다 보니 걸어오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내가 올라온 길과는 전혀 다르게 이 길은 편안한 산책로라 로컬들은 정상까지 갔다가 반대편으로 내려가지 않고 다시 이 길로 내려가곤 하는 모양이었다.  


느긋하게 걷다 보니 예쁜 호수가 있는데, 거기서 핸드폰을 카메라 다리에 얹고 열심히 셀카를 찍고 있는 아가씨가 있다.  엊그제 소라피스 호수 Lago di Sorapis에서 열심히 셀카를 찍어대던 아가씨가 생각나서 혹시나... 하고 보니 바로 그 독일아가씨. 이 아가씨.. 혼자 다니면서 어딜 가나 그저 셀카 찍느라 정신이 없다.  

왼쪽 / Lago son Forca            오른쪽 /  길가엔 이런 평화로운 초원이...

주멜레 산에서 205번 트레일로 내려오다가 Passo Tre Croci 쪽으로 203번 트레일로 걷다가 209번 트레일로 걸어서 다시 Rio Gere로 가라고 되어 있는데, 걸으면서 눈을 부릅뜨고 나오는 표지판마다 확인을 하는데 한 시간 넘게 걷도록 209번 표지판이 안 나온다. 203번 트레일 표지판이 위, 아래 양 쪽 두 갈래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 가는 게 맞는지 몰라서 산에서 내려가는 길이니까 내려가는 쪽이 맞을 거라 생각하고 아래편쪽 203번으로 걸어 내려왔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반대편 올라가는 방향으로 갔어야 다시 처음 버스를 타고 내렸던 Rio Gere로 돌아가는 거였나 보다.  하지만 다시 아까 그 지점으로 돌아가기엔 너~~ 무나 멀리 와버렸다.  그러고 보니 호수가 있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아까 그 호수에서라도 길을 의심을 하고 다시 올라갔음 되는 거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호수도 있고, 길이 예쁘네 하며 하염없이 평화롭게 걸었던 것이다.


산속이라 구글맵은 되다 말다.. 일단 계속 내려가기로 했다. 이 길로 산악자전거들이 여럿 올라왔으니 내려가면 길이 나오겠지... 사람을 만나면 이리로 나가면 어디인지, 버스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아깐 그렇게 많이 올라오던 산악자전거들도 이젠 하나도 만날 수가 없다.  한 시간쯤 걸어내려가니 큰 길이 나오고, 구글에서 확인해 보니 가려던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편으로 나와버렸다.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내려왔기에 버스가 없으면 코르티나 담페초까지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서 가야겠다 했는데 다행히도 팔자레고 패스 Passo Falzarego 쪽에서 코르티나 담페초로 가는 버스가 있고, 마침 십분 정도 기다려 바로 버스가 왔다.


숙소 도착해서는 씻고 그대로 쓰러져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일찍 나가느라 아침도 못 먹고 호텔에서 크로와쌍, 달걀, 주스등만 주섬주섬 싸들고 나가 먹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오늘은 산장도 못 만나서 밥 먹을 곳도 없고, 산에서 내려오니 3시라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이라 닫았고.. 어쩔 뻔...


거의 매번 길을 헤매면서도 그래도 언제나 집을 찾아 돌아오니 얼마나 다행인가~ ㅋ

작가의 이전글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