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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남자 Mar 29. 2024

잘못된 만남

-Song by 김건모-

신림9동은 1990년대 초, 중반에 고시 전문학원과 전문서점이 들어서고 출세의 꿈을 안고 신림9동으로 몰려든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고시촌 건설 붐이 일기 시작했다.

신림9동을 비롯해 2동, 6동, 봉천동까지 연결되어 있는 쪽방들과 고시촌에 전국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했지만 고시촌 근처에는 금테안경을 착용하거나, 스포츠머리를 하거나, 약간의 땀 냄새 또는 홀아비 냄새를 풍기며 신림9동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주로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았으며 그래서인지 고시촌 근처에는 이쁜 아르바이트 생들이 있는 광장서적이나 약국들은 지금의 오픈런을 가볍게 따돌리고 알바비 인플레이션 돌풍을 일으키며 성장해 나갔다.


일부 고시생들은 사각팬티를 반바지처럼 입고 다녔고 흔들거리는 물건이 보이지 않는 것이 자랑도 아닐 터인데 자랑스럽게 '나는 고시생이다'를 티를 내고 다니는 이들의 추태는 고시생들의 이미지를 하락시키는데 일조하였으며, 법학부 고시생이 아닌 장수 고시생들을 따로 분류하여 대놓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패션이었다.


당연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딩이였기 때문에 고시생과 서울대생을 구분할 수 없었으며,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최루탄 공격을 퍼부은 사람들이 경찰이 아닌 서울대 생이라는 오해를 가지고 있었고, 외삼촌은 전경(전투경찰) 이였는데 데모 지원을 나가 서울대생이 던지는 무언가에 맞아 머리에 떡을 진 핏덩이를 방에서 떼어내고 있었던 기억이 선연한데, 그건 서울대생이 던진 무엇이 아니고 상급자의 폭행이 있었던 것이었고 서울대생들은 고시촌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으며, 신림9동에서 별로 놀지 않고 서울대 내 도서관에서 공부한 것이 드러나 모든 오해가 풀리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 초등학교에도 서울대 근처에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며 이사 온 친구들이 있었고,

우리 집은 시골에서 저렴한 집을 찾아온 부류에 속해있었다. 모래시계의 박태수가 되기에 여건이 충분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를 범죄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인도한 것은 성당이었는데 삼성산 성당에서 배출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대학을 나온 성당 오빠들이 많았고 그것을 의식한 부모들은 가톨릭의 인자함을 얻고자 하는 마음보다 좋은 대학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 커뮤니티가 형성된 집단에 아이들을 넣는 것이 좋은 학원을 보내는 것보다 효과적일 듯하여 많은 이들이 성당으로 몰려들었고 나는 수녀님 이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니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 그들과 함께 예수님의 품 안에서 떨지 않으며 지낼 수 있었고, 

집에서는 엄마에게만 어리광을 부렸을 뿐 외부에서는 조용한 아이였었는데 엄마는 너는 까불까불 거린다며 까브리엘이 좋겠다며 가브리엘 대천사를 모욕했다. 


그렇게 나는 가브리엘이라는 세례명도 얻었다.


신림9동에 동방 롤러스케이트 장은 당대 최고의 오락문화 시설이었고 한쪽에는 방방이?(트램펄린)가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키즈카페? 스포츠 카페? 같은 것이 적절한 비유일 것이고 달고나 냄새가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이들의 유혹과 당 충전을 담당했다.

돈 많이 아이들이 올 것이라는 판단을 한 일진 중학생 형들은 롤러장에서 수익화를 실연하려고 하였으나 롤러스케이트장의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서는 불안 요소가 없어야 한다는 경비아저씨의 철저한 직업의식으로 일진 형들에게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기도  했고, 내부에서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 이들은 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에게 동전 한 잎이라도 요구했지만 이미 달고나까지 사 먹고 난 아이들은 일진형들에 줄 무언가도 없었으며, 그것 또한 동방빌딩의 슈퍼직원들이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저지하였기 때문에 안전하게 롤러장을 다닐 수 있었다.

물론 난 그 일진들에 주머니까지 탈탈 털리게 되는 샘플이 되어 운이 좋지 않게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먼지밖에 없다는 사실에 처맞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으나 어디선가 나타난 동방슈퍼마켓 슈퍼맨이 일진들을 일망타진하며 그들에게 담배를 빼앗는 모습을 직관할 수 있었다.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그 어느 날~! 핫~!' 


하며 울려 퍼지는 동방 롤러스케이트장에는

우리의 팬티 고시생들이 하루가 멀다고 민원을 넣었지만 대성슈퍼를 운영하는 정현이 엄마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강인한 정신력과 생존 방법을 터득한 터줏대감 건물주였고 공무원들에게 찔러주는 무기로 팬티 고시생들의 민원을 물리쳤으므로 그 건물은 시장의 논리에 의해 없어지기 전까지 신림9동의 독보적 존재였다. 

누나가 입던 청바지를 몰래 입고 나와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뒤로 가기를 선보이며 김건모 노래를 듣노라면 세상은 무한이 돌아가는 바퀴 같았고 트램펄린의 사방 철조망까지 높이 올랐다가 등으로 떨어지는 기술은 고난도 까지는 아니지만 기계체조 선수도 아닌 이상 앞뒤 텀블링이 고작이었기 때문에 그 기술을 구사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으며 기분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잘못된 만남, 날개 잃은 천사, 상상 속의 너, 머피의 법칙, 비밀은 없어, 날 떠나지 마, 닭고기 아줌마 등 다양한 댄스 노래들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흘러나왔으며 그중 잘못된 만남은 빠른 비트와 가사로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기에 좋은 노래였다. 

아쉽게도 내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할 때는 인라인 스케이트가 생겨났으며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롤러스케이트의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내가 탄 기간은 고작 2~3개월 정도가 전부였으며, 그해 여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오락을 금기했는지도 모르겠으나 대성슈퍼는 대성학원으로 바뀌면서 롤러스케이트장이 철수되었고 추억도 철창 사이로 굳게 잠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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