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질병, 그 교차점에 서서
MOMO
나를 관통한 질병과 장애의 역사를 되돌아보다.
멀리 있는 이야기는 손에 잡히지 않을뿐더러,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 같아 나의 이야기로 글의 시작한다.
1993년,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원인 모를 뒤뚱거림으로 인해 자주 넘어지고 다쳤었다. 넘어지는 것에서 멈출지 알았지만, 결국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어서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경북대학교병원 신경과 전문의가 ‘유전에 의한 근육병’ 진단을 내린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가 악화될 것이라고도 했다.
‘근육병’ 진단 이후, 나와 가족은 일단 모든 것을 부정했다. 장애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온갖 종교와 미신·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통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기적이 일어날 리 만무했고, 방법이 없다는 전문의의 진단은 적중했다.
부정의 역사 위에 분노와 우울이 쌓이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동일한 병명으로 세상을 떠난 외삼촌을 소환해 냈다. 외삼촌의 소환은 나와 어머니에 대한 차별과 박해를 예고했다. 어머니에게는 ‘기형이라는 씨앗을 잉태한 죄인’, 나에게는 ‘복도 없는 죄인’이라는 주홍 글씨가 새겨졌다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게 되었고, ‘질병’을 극복하고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재활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절망과 최선이라는 늪에 빠져 들어갔다. 온 몸에 힘이 빠져 자가 보행이 힘들어졌고, 결국 휠체어에 의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자 하나, 둘 ‘질병’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장애’라는 색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존재에서, 치유 불가능한 존재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지금껏 장애인은 무능력한 존재이며 되어선 안 되는 존재라고 가르쳐 준 이들이 ‘이제 장애인이 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그 주문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애 등록을 위한 병원 방문 며칠 전부터 장애인이 되는 거라면 절대 갈 수 없다고 울고불고 했던 기억이 난다. “장애를 받아들여야만 온 가족이 편안해진다.” “그래야 지원이 많아질” 것이라는 회유와 협박을 끝에 복지카드를 발급받았고 결국 ‘질병’에 의한 ‘등록 장애인’이 되었다.
장애와 질병을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국가가 인정하는 장애인이 된 지도 어느 덧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장애와 질병이라는 정체성을 교차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을 강요당하는’ 것의 혼란스러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은 스스로 질병이 아닌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근육병 치료와 관련된 소식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 모습과 마주할 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장애는 무능한 것’, ‘질병은 치유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불협화음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장애’와 ‘질병’ 사이, 보이지 않는 틈 속으로 스스로를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향한 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것에만 매몰되어 “힘들어하시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앞서 말했다시피 장애와 질병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실익이 없으며, 상당히 소모적인 일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애와 질병이라는 정체를 뛰어넘어 한 개인이 어떤 불편을 겪고 있는 지 살펴보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BS ‘배워서 남줄랩-나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다-김원영 변호사’ 편에서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영국의 어느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장애’에 대해 물을 때 ‘병명’이나 ‘상태’를 물어보지 않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심에 HIV/AIDS 감염인들이 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적 지원 확대가 우선이며, HIV/AIDS 감염인도 예외일 수 없다.
그들은 장애와 질병을 가로지르는 이분법이라는 거대한 성벽에 균열을 내고 있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2017년 11월 HIV감염인의 재활 치료를 거부한 국립재활원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피해자는 면역력이 떨어졌으며, 그로인해 시력을 잃고 편마비까지 생겼다. 국립재활원은 피해자를 역격리할 시설이 없고, 감염내과 전문의와 검사장비가 없어 응급 대처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국가인원위원회는 지난 2019년 5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1조(건강권에서의 차별금지) 위반한 차별금지행위라고 판단했고, 국립재활원장에게 피해자 재입원 조치와 재발방지를 위해 인권침해 및 차별 예방교육을 직원들과 함께 수강할 것을 권고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 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를 ‘장애’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기초하여 만성적 질환 상태에 놓여있는 HIV감염인들을 장애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신체적 요인과 함께 사회적 지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HIV감염인들은 에이즈 약제가 전무했던 과거에는 약 10년이 경과할 즈음 사망하였으나 현대에는 의학과 약제의 발달로 인해 HIV감염 후 경과 시간, 치료, 관리, 약제 복용 시작 시기 등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적 지원 유무에 따라 삶의 질이 180도 달라지는 것이다.
장애인의 삶도 매우 유사한 데, 일상생활 지원을 위한 활동지원서비스제도 확대·물리적 접근권 보장을 위한 편의시설 확대·이동권 보장을 위한 교통수단 확대·노동권 보장·탈시설-자립생활지원·소득 보전을 위한 연금 지원·주거권 보장을 위한 공공주택 확대 등의 다양한 사회적 지원이 없다면,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들이 될 것이다. 장애와 질병을 나누는 것보다 당사자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러한 존엄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어떤 지원 체계들을 갖추고 있는 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길을 갈 것인지’ 장애와 질병의 교차점에 서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