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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하늘에서 온 사람

by MOMO

#이민호의차별속으로 #개천절


[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하늘에서 온 사람

▲불규칙한 파란 틈 사이로 크고 작은 빨간색 방울이 포도송이처럼 서 있다. ⓒ김소하 작가

다가오는 10월 3일은 개천절(開天節)이다. 이날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이지만, 단순한 역사적 기념일에 머물지 않는다.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과 존엄을 묻는 날이다. 하늘이 열린다는 말 속에는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려 했다는 신화적 상징이 담겨 있으며, 이어 단군이 나라를 세움으로써 인간과 하늘, 땅이 하나의 질서로 연결되려는 뜻이 깃들어 있다. 개천절은 곧 우리 민족의 철학적 기원을 되새기고, 모든 존재에게 하늘이 열려야 한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일깨우는 날이다.

‘하늘이 열린다’는 상징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한 신화적 사건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을 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이 열린 순간은 단순히 신이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한 시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기원과 존재 이유를 탐색하고, 삶의 의미를 성찰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나는 그 기원을 인간의 몸을 이루는 물질로부터 추적해 보고자 한다.

우리의 몸은 수소, 헬륨, 산소, 탄소, 질소, 철 같은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저 멀리 우주의 심연에서 별들의 핵융합과 초신성 폭발을 통해 탄생했다. 별에서 흩어진 원소들은 수억 년 동안 은하와 성운을 떠돌며 서로를 찾아 모였고, 마침내 지구라는 푸른 행성 위에 쌓여 생명의 씨앗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숨 쉬고 걷고 느끼는 모든 순간, 그 원소들은 여전히 우리의 몸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산소는 공기와 물속에 녹아 호흡을 가능케 하고, 탄소는 단백질과 DNA 속에서 존재의 뼈대를 이루며, 철은 혈액 속에서 생명의 리듬을 만들어 낸다.

결국 우리는 우주에서 온 원소들의 집합체이자, 별의 흔적을 품은 살아 있는 우주적 산물이다. 우리는 별의 이야기를 간직한 존재이며, 우주의 시간 속에 잠시 머무는 작은 순간이자, 끝없는 우주와 이어진 삶의 한 조각이다. 그렇기에 개천절은 단순히 과거의 신화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 그리고 자연이 맞닿아 있는 깊은 연결을 성찰하게 하는 날이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결국, 우리 각자의 내면과 존재, 그리고 우주와의 조화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날 우리는 단순히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 우주적 사실은 중요한 철학적 선언으로 이어진다. 모든 몸은 이미 존엄하다는 것이다. 어떤 몸도 우주 앞에서 크거나 작을 수 없다. 장애가 있든 없든, 생산적이든 비생산적이든, 모든 인간은 열린 하늘이 내어준 하나뿐인 소중한 우주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모든 사람의 존엄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한다.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고,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잣대로 가치를 평가한다. 그 결과 차별과 배제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택시를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 장애인, 충분한 지원이 없어 교실 바깥으로 내몰리는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의 한계 때문에 기본적인 일상조차 누릴 수 없는 장애인. 이들이 겪는 모든 불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구조적 장벽이며 존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다.

존중은 추상적 덕목이 아니다. 그것은 이동의 권리, 교육의 기회, 돌봄과 노동의 권리 속에서 구체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존중이 제도의 틀 안에서 구현될 때 비로소 존엄은 현실이 된다. 따라서 개천절의 의미는 과거의 신화 속에 머물 수 없다. 하늘이 열렸다는 상징은 우리 사회의 닫힌 문을 열고, 차별과 배제를 넘어 새로운 질서를 시작하라는 요청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타인의 몸과 삶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서 있는가. 존중은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기억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내가 별의 물질로 이루어졌듯, 당신 또한 별의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차이를 존엄으로 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존중은 마음속 다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회 제도와 구조 속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분명하다. 장애인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대신, 실질적 지원을 제공하고, 돌봄을 시혜가 아닌 권리로 보장하는 제도를 세워야 한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의 정신이다.

개천절의 ‘하늘이 열렸다’는 말은 단군 신화의 옛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닫힌 사회 구조를 열고, 서로를 존엄으로 마주하며, 하늘의 뜻을 이어가라는 부름이다. 하늘이 열렸던 그날처럼, 우리의 사회도 마침내 닫힌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열리기를 바란다.

https://theindigo.co.kr/archives/64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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