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관계

by MOMO

선인장


이민호


책상 한편, 이름 모를 작은 선인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선인장이 책상 위를 스쳐 지나갔다. 유명을 달리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수많은 죽음을 가로질러 지금껏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선인장은 이 녀석 하나뿐이다.

선인장이 하나 둘 죽어 나갈 때마다 ‘마이너스의 손’,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법’이라고 자책했었다. 마지막 선인장이 고개를 푹 숙일 때, 자책만이 능사가 아닌 것 같아 사무실 근처의 꽃집에 들러 이유를 여쭤보았다.


꽃집 주인장께서 “부지런하면 못 키워요. 잘 키우고 싶어서 물 자주 주면 뿌리가 썩어요. 말라비틀어지려 할 때 흠뻑 줘야 잘 크는 거예요. 아 참, 바람도 쐬고 햇빛도 많이 쐬어야 해요.”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주인장의 이야기를 듣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아차’ 할 수밖에 없었다. 선인장의 색깔이 조금만 바래도 호들갑 떨며 물을 담뿍 주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부지런함이 선인장을 괴롭혀 온 셈이었다. 선인장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결여된 부지런함이었던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선인장을 햇살 풍부한 창가로 옮기고, 한 달 동안 물을 주지 않아 보기로 했다. 처음 보름간은 아무런 변화 없이, 힘없는 상태를 유지했다. 물을 주고 싶었지만 선인장을 위해 그 마음을 꾹 눌러 담았다. 이것이 마지막 선인장이라는 생각으로 참았다.

보름하고도 10일이 더 지난 25일, 선인장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나의 인내심에 강한 압력이 가해졌고 물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단속하고, 조금 더 참아 보기로 했다. 5일이 지난 후, 선인장을 살펴보니 거식증에 걸린 모델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이때다 싶어서, 화분이 흘러넘칠 정도로 물을 주었다. 얼마나 말라있었던지 물은 금세 사라졌다.

3일 정도 지났을까. 궁금한 마음에 선인장을 찾아갔다. 선인장은 창가에서 햇살을 가득 맞고 있었다. 비쩍 말랐었던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통통히 살이 올라 있었다. 너무 기쁜 마음에 선인장을 뒤로한 채 꽃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주인장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주인장은 손사래 치며, “아니에요, 알고 있는 거 그대로 말해준걸요. 식물이지만 사람 관계하고 똑같아요,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면 오래 못 가요.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거예요.”

무심히 던지는 말이었지만, 오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인 까닭에 진솔함이 느껴졌다. 한 글자 한 글자 내 마음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관계에 대해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 딜레마(Porcupine’s Dilemma)’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겨울 숲속을 산책하던 쇼펜하우어가 우연히 고슴도치를 발견하고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

고슴도치들은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고 놀라 물러나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다가가고 물러나고 다가가면서 그들은 뭔가 배웠다. 바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도 상처 주지 않는 적당한 거리말이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을 보면서 인간관계도 똑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대방과 나의 가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서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가르쳐 준 선인장과 꽃집 주인장께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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