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호 Dec 27. 2021

이랑 3집: 멸망의 노래가 사랑 이야기가 되려면

얼마 전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된 인디 아티스트가 있다. 지난 8월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를 발매한 이랑이다. 가사집만 펼쳐 보았을 때 그의 노래는 멸망과 죽음, 그리고 공포로 다가온다. 이랑은 “이른 아침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가”는 세상을 그리고 “인천공항과 나리타공항”에서 “사람 죽는 것처럼 울었”던 친구들과 “동시에 죽어버리자”며 “한꺼번에 싹 다 가버리는 멸망”을 설파한다.


하지만 그의 앨범을 재생하는 순간, 고통과 절망의 무거움은 발랄한 포크 음악의 경쾌함으로 한없이 가벼워진다. 끊임없는 착취와 이어지지 못하는 대화, 기약없는 이별과 뒤척이는 잠자리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쾌활한 기타 반주 속에서 강렬한 의미로 되살아난다. 귀를 타고 들려오는 신나는 음악과 상반되는 명료한 고통의 가사는 청자를 잠시 혼란스럽게 한 뒤, 글자 너머에 있는 살아있는 자들의 고통을 더욱더 생생하게 펼쳐놓는다.


그의 노래는 ‘주황색’이라고 적힌 파란 글씨를 보고 실제 색깔을 말해야 하는 인지 능력 검사와도 같다. 밝은 음악에서 솟구쳐 오르는 분명한 설렘을 잠시 억누르고, 가사가 들려주는 보편적 고통에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만든다. 발랄한 음악, 곡물 창고와 마녀, 그리고 성문이라는 소재로 죽음의 이야기와 감정의 거리감을 확보한 청자는 이랑이 말하는 이들의 아픔이 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곧 깨닫는다.


그가 죽음과 멸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삶과 죽음이 결국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이해하는 휴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이랑의 사랑과 애정, 연대 의식은 우리가 모두 죽음을 향해 달리는 존재임을 인식하며 출발한다. 수록곡 ⟨환란의 세대⟩에서 그는 죽음의 시간이 찾아와 사랑하는 친구들을 모두 뿔뿔이 흩어 놓기 전에 "먼저 선수 처 버리자"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리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금 잠시의 헤어짐이 영원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잠을 설치면서도 이랑은 친구들을 걱정한다. 그들은 과연 자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울고 있을까 상상하면서.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는 그렇게 불면의 노래가 아니라 사랑 노래가 된다. "이게 사랑 노래라는 걸 내 친구들은 알겠지"라는 가사에도 나타나듯 그가 애정하는 대상은 친구이다. 연인 간의 사랑과 친구 간의 우정을 구별하지 않고 애()의 감정을 확장한다. 이랑의 노래에서 우리는 연인, 가족, 지인이라는 꼬리표로 나뉘기보다는 친구로 통칭된다. 그의 친구들은 함께 연대하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듣고 또 들려주고 싶"다는 이랑은 연대하는 상처받은 개인들의 이야기꾼(storyteller, 스토리텔러)을 기꺼이 자청한다.


그의 노래를 매일같이 듣던 12월의 한 아침, 신문에서 그의 언니의 부고를 접했다. 하지만 기사는 한 인디 아티스트 언니의 죽음을 다루지 않았다. 여자이기 때문에 상주가 될 수 없다는 상조 회사 직원의 이야기를 들은 그가 '아들'임을 자처하며 당당히 완장을 차고 넥타이를 매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가 삶의 가장 슬픈 순간 중 하나를 대하는 방식도 3집 ⟨늑대가 나타났다⟩의 주제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꽁꽁 싸매고 자기 연민과 상실의 슬픔에 빠져 한없이 침전해도 될 때조차도 이랑은 제례에서 배제되고 있는 다른 여성과의 연대를 택했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언니를 보내는 자리를 "행복한 장례식"이라 회상했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연대의 힘으로 또다시 맞닿아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고흥의 외딴 팬션에서의 발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