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이르다 - 한국의 소멸 위기

by 김민호

지금은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닙니다. 최근 출산율 0.8명대 회복은 통계적 착시에 불과합니다. [1] 코로나19로 미뤄졌던 혼인이 몰리고 90년대생이 출산 적령기에 진입해 잠시 숫자가 튀어 올랐을 뿐, 청년들이 몸을 뉘고 살아가는 서식지의 척박함은 단 1밀리미터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저출생은 단순히 청년들의 통장에 돈이 없어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닙니다. 부의 편중, 주거 불안정, 성차별적 구조, 그리고 약자를 혐오하는 무한 경쟁이라는 독성 서식지가 만들어낸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생물학적 방어 기제입니다. 현 정부가 내놓은 1억 원의 대출 탕감이나 임대주택 몇 채로는 이 왜곡된 현실의 결과를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파편화된 각자도생의 슬럼을 걷어내고, 아이를 함께 키워낼 수 있는 마을과 공유지를 복원하는 것만이 이 붕괴된 생태계를 살릴 해법입니다.


[생태학적 연쇄 붕괴: 자본의 탐욕은 어떻게 숲을 사막으로 만들었나]

과거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늑대를 모두 사냥해 씨를 말려버린 비극이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서부 개척 시대, 백인들이 들소를 모조리 사냥해 먹이가 사라지자 늑대들은 목장주들의 가축을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가축은 곧 거대한 자본이었습니다. 분노한 축산업계의 로비로 연방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해 조직적인 '늑대 소탕 작전'을 벌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엘크나 사슴은 관광과 사냥에 유익한 '착한 자산'이었고, 늑대는 이를 축내는 '나쁜 해충'에 불과했습니다. 당장의 자본 가치를 늘리기 위해 생태계의 포식자를 박멸하는 단편적이고 오만한 정책을 편 것입니다.


그 결과 엘크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들이 공원의 풀과 어린나무를 뿌리째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나무가 사라지니 새들이 떠나고, 강둑을 지탱할 뿌리가 없어지니 강이 범람하며 토양이 유실되었습니다. 생태계를 지탱하던 핵심 연결고리가 끊어지자, 푸르던 숲은 생명이 살 수 없는 황폐한 사막으로 변해버렸습니다. [2]


이 끔찍한 연쇄 붕괴는 한국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국가와 기성세대가 '부동산'이라는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회를 지탱하던 뼈대인 '마을과 연대'를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하며 강제로 뽑아내 버렸습니다. 생태계의 균형을 잡아주던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를 무한 경쟁과 거대한 투기 자본이라는 탐욕이 집어삼켰습니다.


국가가 주거의 책임을 외주화하고 집을 자산 증식을 위한 금융 상품으로 변질시킨 결과, 둥지가 되어야 할 청년들의 서식지는 깡그리 파괴되었습니다.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었다지만 청년들이 안심하고 머물 집은 없습니다. [3]


우리가 내 집 앞 눈 치우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곳이 내가 뿌리내릴 집이 아니라 언제 떠날지 모르는 임시 대합실이기 때문입니다. 정주할 둥지를 빼앗긴 개체가 번식을 포기하고 생존에만 에너지를 쏟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생존 전략입니다.


[보이지 않는 슬럼: 공간의 파편화는 육아를 분담할 공유지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외국과 달리 한국의 슬럼은 화려한 빌딩 숲 사이, 고시원과 반지하라는 수직적인 형태로 교묘하게 숨어있습니다. 청년들은 이 보이지 않는 슬럼에 고립되어 각자도생합니다.


이러한 공간의 파편화는 곧 비빌 언덕의 붕괴를 뜻합니다. 과거에는 육아라는 거대한 생존 프로젝트를 이웃과 지역 사회가 완충재가 되어 함께 짊어졌습니다. 그러나 무한 경쟁 속에서 마을이라는 공유지는 완전히 사라졌고, 생존과 양육의 거대한 하중은 오롯이 젊은 부부의 몫으로 떨어졌습니다.


[치명적인 현실: 여성에게 출산은 생존 자원을 포기해야 하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마을이 사라진 척박한 환경에서 돌봄의 무게는 성차별적 구조를 타고 여성에게 집중됩니다. 여성은 출산이라는 결과를 내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와 소득이라는 필수 생존 자원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4] 생존 비용이 이토록 비정상적으로 높게 설정된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재생산을 거부하고 파업을 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논리적 귀결입니다.


[갑을 생태계의 공포: 생존 투쟁에서 밀려난 불안은 혐오로 발현됩니다]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서 갑이 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몇 해 전 서울 강서구에서 벌어진 참담한 풍경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발달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앞에서, 장애 아동의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로 애원해야 했던 사건입니다. [5]


내 집단, 내 집값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사회적 약자조차 철저히 배제하고 짓밟는 이 지독한 갑질의 생태계를 목도하며, 부모들은 뼛속 깊이 서늘한 공포를 학습합니다.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뒤처져 을이 된다면, 이 사회는 내 아이 앞에서도 무자비하게 문을 걸어 잠글 것이라는 끔찍한 깨달음입니다. 완벽한 포식자로 키울 자신이 없다면 아예 먹잇감을 낳지 않겠다는 처절한 저항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자원이 고갈된 생존 투쟁은 남녀 간의 연대마저 끊어놓았습니다. 마을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디지털 슬럼의 알고리즘은 무한 경쟁에서 밀려난 청년들의 불안을 손쉬운 가상의 적에게 돌려버립니다. 청년 남성들의 극우화와 젠더 갈등은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파괴된 서식지가 만들어낸 끔찍한 생존 기제이자 연대의 가능성을 영퍼센트로 수렴하게 만든 치명적인 독입니다.


[도구화된 생명: 누군가의 연금을 위한 부품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정부와 기성세대가 저출생을 걱정하며 내뱉는 말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섬뜩한 기저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노동 인구가 부족하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우리가 늙었을 때 연금을 낼 사람이 없다는 위기의식입니다.[6]


이는 태어날 아이를 온전한 하나의 생명으로 존중하고 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을 굴리기 위한 부품이나 기성세대의 노후를 부양할 납세자로 취급하는 폭력적인 시각입니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치열한 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이 철저히 소모품으로 쓰이며 겪은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아이를 국가의 경제 동력이나 누군가의 노후를 받쳐줄 도구로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다는 뼈아픈 파업인 것입니다.


[대합실을 다시 둥지로: 끊어진 강줄기를 되살릴 작은 마중물]

결국 저출생은 앞서 열거한 문제들이 모여 만들어낸 뼈아픈 결과입니다. 지옥 같은 쟁탈전에서 버틸 자금을 줄 테니 일단 아이를 낳으라고 등 떠미는 정책으로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황폐해졌던 옐로스톤은 1995년, 단 14마리의 늑대를 다시 들여오면서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늑대를 피해 초식동물들이 이동하자 숲에 다시 나무가 자라고, 새와 비버가 돌아오며 끊어졌던 강줄기가 원래의 흐름을 되찾았습니다.


우리의 척박한 생태계를 살리는 방법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고 했습니다. 거대한 투기 자본과 척박한 시스템을 당장 뒤엎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 개인이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생태계의 물줄기를 바꿀 작은 마중물은 분명히 있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내 소비의 아주 작은 일부를 지역의 생협이나 동네 협동조합에 출자해 공동의 자산으로 묶어두는 것. 경쟁의 트랙에서 벗어나 기꺼이 서로의 아이에게 눈길을 주고 반찬을 나눌 작은 안전지대를 동네에 만드는 것. 그리고 굳게 닫힌 현관문을 열고 나가, 빌라의 공용 계단을 한 번 더 쓸어내고 누군가를 위해 공유 우산을 걸어두는 사소한 다정함입니다.


각자도생의 수직적 슬럼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연대의 감각을 다시 우리 삶에 방사해야 합니다.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 내 삶의 반경 1미터부터 공유지로 복원해 내는 치열한 고민과 다정함만이 이 거대한 생태계의 소멸을 멈출 수 있습니다.




[1] 통계청. (2025). "아기 울음소리 커졌다…작년 출산율 0.75명, 9년만에 반등".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연된 혼인 건수의 일시적 증가 및 1990년대 초반생(2차 에코붐 세대)의 주 출산 연령대 진입으로 인한 단기적 반등 효과를 다룸. URL: https://v.daum.net/v/KcON7IloqY

[2] Yellowstone National Park. "Wolf Reintroduction Changes Ecosystem in Yellowstone". 포식자 도입이 생태계 전반의 서식지를 회복시키는 영양 폭포 효과(Trophic Cascade)의 대표적 생태학 사례. URL: https://www.yellowstonepark.com/things-to-do/wildlife/wolf-reintroduction-changes-ecosystem/

[3] 국토교통부. (2023). "2022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 발표". 주택보급률은 100%를 상회하나, 수도권 집중 및 투기 수요로 인해 청년층의 실질적인 자가점유율(13.2%) 및 주거 안정성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실을 보여줌. URL: https://eiec.kdi.re.kr/policy/materialView.do?num=246383

[4] 한국개발연구원(KDI). (2024).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 여성의 출산 후 겪는 경력단절(차일드 페널티)이 출산율 하락 원인의 약 40%를 차지함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 URL: https://www.kdi.re.kr/research/focusView?pub_no=18306

[5] 비마이너. (2017). "“왜 강서구에만 특수학교 2개나 짓냐”...또 다시 무릎 꿇은 장애부모".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서진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발달장애 학생 부모들이 지역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호소한 사건의 현장 기록. URL: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1335

[6] 연합뉴스. (2021). "50년 뒤엔 인구 절반이 62세 이상…국민연금 고갈 앞당겨진다". 저출생의 위기를 설명할 때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연금 고갈 등 국가 경제적 지표와 시스템 유지의 관점이 주된 근거로 작동함을 보여주는 언론 보도. URL: https://www.yna.co.kr/view/AKR20211209084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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