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기다란 컵에 죽염 몇 알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통을 뚫고 그 속엘 들여다본다. 사막에 모래가 날리듯 소금 알갱이가 흩어졌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한참 서있었다. 녹아내리는 덩어리가 마치 응어리진 감정처럼 보였다. 소금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난 후 그위로 차가운 물을 부었다.
내내 땀을 흘려선지 몸에 한기가 들었다. 밤새 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를 경험했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시작은 전화 한 통이었다. 얼굴을 본 지 4년은 넘었는데 전남편과 함께 일했던 사람이다.
"아이고, 그 사람이 갔다고 하네요."
가긴 어디를? 아직 이른데요.
등뒤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이게 사실인지를 어떻게 확인할지 생각하는 동시에 이 사람이 이런 식의 '농담'을 건넬 분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겁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확인은 필요할 테지만 중요한 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혼자 사는 일이 못 견딜 만큼 괴로웠던 걸까,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나, 여자 문제가 생긴 걸까.
물어도 대답이 없을 그에게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이 들면 말을 하지, 싶은 생각이 든다. 하필이면 '나에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하루가 지나며 나는 속수무책으로 죄책감에 휩싸였다.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이런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설상가상으로 아빠를 끔찍하게 여기는 둘째 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이혼하길 잘한 것 같아. 지금 우리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
아이들은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 과정이 끝난 이후로도 곧잘 이런 식의 말을 건넸다. 엄마와 아빠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이면서, 못내 아쉬운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려는 느낌이다. 어떻든 '잘'(?)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크게 탈이 없고 가족애는 여전히 끈끈하니까.
그런 중에 그가 자살을 하다니. 아이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게 된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나를 집어삼켰다. 그 순간 나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꿈인가?'
한참을 누워 있었다. 이불의 결이 낯설었다. 코밑을 스치는 숨이 어색했다. 방금까지 마주한 상황이 이 방의 공기와 맞닿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대로 자리에 누워서 내가 꿈을 꾼 것인지, 그 전화 통화가 사실인지 분간하려고 애를 썼다. 놀라운 것이 아무리 꿈이 생생해도 보통은 '아, 꿈이었구나.' 하는 느낌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한데 이번은 달랐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장면들이 정말 꿈이었는지, 아닌지를(제발 꿈이기를) 확신하지 못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꿈이 이어졌다. 더는 이 세상에 없는 그를 나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가슴이 짓눌린 채 밤을 지나왔다.
우리 가족은 일찍 새끼 고양이의 죽음을 들여다본 일이 있다. 삶에 '죽음', 그리고 '상실'은 고등 코스일 텐데, 그렇다고 그걸 겪는 것이 나이 순대로 일어나진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하필 나의 아이들이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여기서 '이런 일'이란 '이혼'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지난밤 꿈은 내가 해소하지 못한 나의 죄책감의 현현임을.
나는 어떻든 이혼을 선택했고 그건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좋거나 나쁜' 영향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마음 한편엔 늘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왜 내가 이런(이혼하는 엄마) 역할을 해야 하지?'
불교와 유교에서 죽음에 대한 꿈은 마음의 빚, 즉 업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본다. '칼 융'은 꿈을 의식이 받아들이지 못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일도, 인간 관계에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나 이것이 물리적인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 마침표를 찍기 위해선 그 일이나 관계를 통해 만난 마음을 '제대로' 느끼고, 해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자극적 이게도 꿈을 통해 직접 무의식을 해소하기도 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여태 용서한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여전히 심판하는 자리에 서서 나의 결혼과 이혼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이 밤이 지나고 나는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녹아 사라진 죽염처럼 마음속 단단했던 감정의 결정체 하나가 천천히 삶에 스며들어 사라지고 있다. 언제쯤 나는 그와 나에게 부드럽게 머리를 숙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