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삶의 목표가 '경험'이라면,

by 하민혜

감사하게도 검소한 엄마 밑에 자란 나는, 사치를 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여자라면 모름지기 가방이나, 화장품, 신발, 옷, 미용비 등 쓰려고 하면 얼마든지 돈을 쓸 수 있다. 사치를 아는 남자도 알긴 하지만, 여자들만큼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돈이 들어가는 일은 아무래도 덜하지 싶다. 자랑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는 명품 가방을 한 번도 산 적이 없다. 명품 비스무레한 것도 가져본 일이 없다. 신발 역시 다르지 않다. 나 같은 여자 사람이 한둘은 아니겠지만, 나는 20대 초반부터 제법 돈을 벌었다. 더구나 화려한 언니들 틈바구니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시장표 가방을 고수했다는게 기특하다.
(주)스노우 폭스 김승호 회장님은 돈 버는 재주, 돈 쓰는 재주, 돈 모으는 재주가 각각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새삼 돌아보니 나는 돈 버는 재주가 있었다. 물론 사업을 시작한 후로 가진 돈을 모두 잃는다던지, 여행을 다니며 천만 원을 넘게 쓰는 일도 있었으니 모으는 재주는 없었다. 20대 초반에는 조 씨 언니와의 옷가게, 그리고 두 사장님의 바(bar)를 도우며 제법 돈이 모였던 것 같다.


옆 집 사장님들의 구인을 도와주며 소통하다 보니, 엷게나마 발이 넓어지고 있었다. 물에 밥 말아먹듯 후루룩 23살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꽈배기 파는 사장님이 신촌에 바(bar) 매물이 하나 나와 있다며 인수해보면 어떻겠느냐 물으셨다. 가게를 하나 얻는데 드는 비용, 인테리어 비용을 눈 감고도 줄줄 욀 지경이었으니, 가게를 인수하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가진 돈을 가늠해보니 2천만 원이 조금 넘었다.


"에이~택도 없어요~ 제가 무슨 돈으로."

"그 바(bar)가 몇 달째 안 나가고 있대. 사장 만나서 협상 좀 해봐. 권리금도 없더구먼"


순진하게도 권리금이 없다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바(bar) 장사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은 진짜 내 가게를 연다는 게 무척 설레었다. 전화번호를 손에 들고, 종일 폴짝대는 심장을 달랠 길이 없었다. '신촌이라.' 밤새 뒤적이다 직접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음 날 아침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지하철을 타고 신촌으로 향했다.


가게는 연대 아래 육교를 지나 골목 입구 건물 2층에 있었다. OO BAR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고 1층은 덮밥집이었다. 훤한 대낮부터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차가 다니는 길인지, 인도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때의 나만큼 활기가 넘치는 신촌 거리를 둘러보며 이 가게가 내 가게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열쇠를 돌려 육중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뽀얗게 먼지가 내린 바(bar)가 보였다. 생맥주 따르는 기계, 다트판, 칵테일 주류들이 발랄하고 컬러풀하게 널려 있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며 웃고 떠드는 바(bar)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지금으로선 활력을 잃고 소리 소문 없이 잠들어 있었지만.


머리를 묶은 남자 사장님이 의자에 내려앉은 먼지를 툴툴 털다 기침을 해댄다.

"콜록콜록..가게 보러 온 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네요. 오늘 계약하신다고 하면 최대한 맞춰 드릴게요. "


입에 바른 소리라는 걸 알았다. 뭐라고 떠들건 나는 이미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감사해요 사장님~언제까지 영업하신 건가요? 매출 전표는 볼 수 있나요?"


구석으로 들어가 두꺼운 장부를 꺼내 내미신다. 주류 매입부터 매일의 매출이 적혀 있었다.


"가게를 쉰지는 7개월쯤 되었어요. 몸이 좀 많이 안 좋아서 쉬려고 했는데, 수술이며 항암이며 차일피일 시간이 가서 가게를 내어놓게 되었어요. 잘해보시면 괜찮으실 거예요."


7개월이라니. 이렇게 되면 신규 오픈보다 힘이 들어갈지 모를 일이다. 두런두런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갔고 나의 재정상황을 꺼내 협상을 시도했다. 원하는 가게 보증금이 3천이었는데, 입맛대로 2천까지 맞출 수 있었다. 인테리어에 들어가야 할 비용, 고장 난 것들을 새로 구비하는 등은 계산 않고 덜컥 계약을 했다. 마치 첫눈에 반한 상대의 허점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는 것과 비슷했다.


나는 사업 수완 있고 매력 있는 아빠와 여성스럽고 차분한 엄마 사이에 태어났다.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언니가 있고, 가깝게 지내는 남동생이 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독립적인 분위기 속에 모든 선택을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배웠다. 바(bar)를 계약한 때에도, 그 누구와 상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을 내렸다. 나로서는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보면 부모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지 싶다. 부동산이라던지, 개인 사업에 관한 법률에 대해 일자무식이었고 가진 거라곤 젊은 패기뿐이었다. 하나하나 돌다리를 두드리고 결정하는 이들은 혀를 내두르다 못해, 진저리를 칠만한 사건이 이뿐만 아니다.


나의 삶은 늘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법을 모르고, 늘 단순하게 손이 닿는 대로 잡았고 발이 가는 대로 걸어갔다. 앞으로 닥칠 고난과 역경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직 내 가게가 생겼다는 설렘 하나로 계약서를 손에 쥐었다. 만일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 앞으로의 고생스런 일들을 막을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해 꼭 그렇지만도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철부지같이 조심성 없는 행동에도 분명 이점이 있다. 첫째는 일단 뭐라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삶의 목표를 성공이 아닌 경험으로 여긴다면 어떨까. 그 면으로 본다면 나는 참으로 많은 날을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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