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스물다섯 나에게 세상은 적잖이 전쟁터와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건너편 국숫집 사장님은 새로 생긴 국숫집을 의식해 무리하게 확장 공사를 했다.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매출 때문에 날마다 시름시름 앓고 있다. 가뜩이나 축 처진 볼살이 근래는 입술까지도 바닥으로 내리 당기는 것만 같았다. 바로 옆 부동산 사장님은 마주하기라도 하면 급매물을 건네며 소개를 부탁하신다. 건물주는 며칠에 한 번 세상에 대한 푸념을 쏟아내며 세 들어 사는 우리에게 괜한 트집을 잡아 붙들어 매곤 했다. 모처럼 젊은 날이었지만 세상은 계산적인 이들로 둘러싸인, 더 가지지 못해 억울한 무리들 투성인 곳으로 보였다. 치열하게 올라가기만 하면 뭐가 있기라도 한 걸까? 그때의 나는 장사가 어렵지도 않았고 딱히 지금 상황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았다. 단골손님이자 가깝게 지내는 의사 언니는 그게 나의 문제라고 했다. 다들 문제의식을 갖고 살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살지만 너는 늘상 호기롭다고 했다. 가만 지켜보니 본인의 눈에는 내가 살얼음판 위를 걷듯 아슬아슬해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 바로 문제라고 말이다.
삶을 전쟁터로 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그때의 나는 돌멩이들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계란이나 다름없었다.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며 흘러넘치는 생각들을 어떻게 주워 담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언니의 말이 맞을지 몰라.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늘 사람들과 부대끼고 있으니 혼자 운전하는 시간만큼은 그야말로 안식과 같은 순간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그 곳이야말로 나의 퀘렌시아였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아가기 이전에는 반드시 숨 고르기가 필요했으니까.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나는 나와 전쟁 중이었다. 나를 문제로 보며 방향을 잡지 못하는 물렁한 나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단단한 나와의 치열한 전쟁으로 마음껏 그 때를 누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