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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Oct 25. 2024

삶의 기준을 둔다면

여기로 돌아오라는 말

모닝! 어제가 신기루라는 것 마냥 안개가 자욱하네요. 이른 새벽 매트에서 졸고 앉으면 발이 차요. 양말 하나 주워 신는데 버선 양말인 거예요. 발목은커녕 발등도 제법 드러나서요. 가만 앉아 책을 읽자니 구멍 난 곳마다 싸늘해요. 


둘째를 낳은 게 어느새 10년인가요. 한여름이었어요. 에어컨 아래 허옇게 발목을 드러낸 어미는 어르신께 참 많이 혼났지요. 아무 데고 손목을 짚고 있을 때도요. 배만 커다랗지 목이란 목은 죄다 부러질 듯 가늘어서요. 보기에 어떨지 알 것 같습니다. 이제 말이지만 그때엔 이 싸늘한 느낌을 잘 몰랐어요.


우리 아이도 그래요. 야밤에 근처 나간다고 반바지 위에 얇은 패딩을 걸치면 제가 한 소리 하는데요. 삐죽 나와 길쭉한 게, 내 다리처럼 창백하고 서늘해서요. 아이는 마냥 귀찮다는 표정입니다. 정말은 차간 이 느낌이 아이에겐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제 우연히 스친(스레드 친구)의 글 하나를 보았어요. 나이를 갈라놓고 무엇을 자랑하면 좋을지 말해보자는 거예요. 20대 때 건강한 것은 자랑이 안되듯이 40대면 돈 있는 게 자랑이 안된다고요. 대개 20대면 건강하고, 40대가 인생 중에 가장 잘(?) 사는 때라는데요.


50대는 어떠냐는 물음에 다양한 답글이 달렸습니다. 건강이 자랑이니, 자식, 친구, 여유 등을 말해요. 저는 자랑할 필요 없는 사람이 잘 사는 게 아닐까 답을 했어요.


여기 제가 사는 한국엔 나이별로 요구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20대면 이래야 하고 50대엔 저래야 한다는 둥

그래, 그런 책도 많습니다. 이즘이면 이 정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모조리 틀렸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단지 나이별로 나누는 게 맞나 싶어서요. 제 말은, 삶의 오르고 내림이, 그 시기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뻔한 이야깁니다.


더욱이 남 보기에 좋은, 그럴싸한 사람이 되는 게 왜 인생 목표인 듯 살아가는지 모르겠어요. 품위 있어 '보이는' 40대 여성의 특징이라던지, 똑똑해 '보이는' 30대의 생활법 같은 글이 이곳저곳 보여요. 진심인데, 그런 류의 글을 일부러 읽은 적 없습니다.


이해가 가고 말고요. 내가 잘 살아가고 있나, 의심하면 연기가 피어올라요. 문득 눈앞이 흐려지면 내 삶을 끌고 갈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때 타인이 정답을 탁, 제시해 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살면 안 돼, 저렇게 살아야 돼. 네 나이면 이게 맞아, 하고요.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기준을 세워 나아가는 건 정말이지, 용기가 필요해요. 제멋대로 흔들리고 엉망으로 느껴지는 '나'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니, 얼마나 두려운가요. 삶에 내맡기라니, 말은 쉽지만요.


그래, 오늘처럼 안개로 흐린 날이면 제 눈알을 이곳저곳 굴려대거나, 부릅뜨지 않을 뿐이에요. 은연중에 솟은 어깨를 내리고 심호흡을 합니다. 눈앞에 해야 할 일에 집중해요. 지금 내가 만난 사람, 입에 들어 있는 단밤의 맛과 향에 머물러 봅니다.

저기 멀리, 앞을 내다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라도 그럴수록 어지럽기만 해요. 오늘은 우리, '지금'에 집중해 보는 건 어때요? 몸 마음 따듯하게 다니시길 바라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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