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인간

by 놀PD

읽는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읽는다. 그것이 앎과 지식의 도구를 위해서든, 한순간 유희를 위해서든, 어떤 깨달음을 위해서든, 활자중독이라서 어쩔 수 없는 중독적 쾌락을 위해서든, 대충 읽든 넘겨 읽든 몰입해 읽든, 읽고 씹고 맛보고 즐기며 읽든 그냥 읽는다. 하지만 쓰는 인간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쓴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도 봐주지 않을 글에 이렇게 에너지를 써가며 결과물이 터무니없이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써내려갈 리 없다. 살 수가 없는 거다. 쓰지 않고서는 말이다.

내가 글쓰기가 들어간 책을 모두 구입했던 까닭은 글을 잘 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나처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인간들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세상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는 것을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연대감이라도 느끼고 싶어서.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이 책은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 박경리, 프리다 칼로, 긴즈버그 등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 존재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은 왜 썼는가? 저자는 나혜석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나혜석은 여성이 말을 하고 여성이 글을 쓸 때 세상은 달라진다고 믿었다.“

왜 글을 쓸 때 세상이 달라지는가. 나는 그것이 글쓰기가 언어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세상을 나만의 실로 직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글쓰기는 그야말로 개인만이 할 수 있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글쓰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다. ‘혼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사유’를 먹고 자란다. 이것은 사실 돌봄 노동을 주로 하는 여성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돌봄노동은 돌봄 받는 자와 돌봄 하는 자의 위치가 딱 붙어있다. 자기만의 배타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자아가 들어설 공간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돌봄의 시간 또한 중첩되기는 마찬가지다. 돌봄 하는 자와 돌봄 받는 자의 시간은 내부와 외부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말하지 않는가. “우리 와이프 집에서 놀아요.” 예전에는 이 말을 들으면 발끈했는데 어느 날 내가 집에서 무엇을 하나 가만히 살펴보니 기존의 ‘노동’과 ‘생산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딱히 반박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없이 바쁘긴 한데 그렇다고 회사 다닐 때처럼 어떤 생산성을 따지거나 목표와 달성율을 따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돌봄노동은 ‘생산’의 관점이 아니라 ‘재생산’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위치가 딱 붙어있고, 쉬면서 돌봄하고 돌보면서 노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의 분리도 쉽지 않다. 감정적 연결고리도 상당하다. 하지만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노동을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가 달라져야 비로소 돌봄노동의 특성이 보인다.


이 돌봄노동은 특성상 몰입의 산물로 나오는 글쓰기에는 절대 적합하지 않다. 특히나 육아기의 엄마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 어쩌면 여성들이 악착같이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는 어쩌면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는 것에 더해, ‘개인’이라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발악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변기 위에서 아이를 안은 밤 어떻게든 일기를 쓴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아이에게 수유하기 위해 태어난 젖소가 아니라 변기 위에서 아이를 안아도 짐승이 아니고, 정신줄 놓고 아이에게 화내고 소리치더라도 괴물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기억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처럼 많은 여성들이 쓰고 싸우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나혜석이 그랫듯이,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듯이, 프리다 칼로가 그랬듯이 말이다.


“흠결 없고 상처 없는 완벽한 인생을 살았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 역시 사람이므로 일생 동안 수많은 실수를 거치며 성공과 실패, 성취와 좌절을 오갔다. 결국 그들은 모두 좋은 글을 남겼다. 앞으로 걸어갔다. 어떤 경우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글과 말의 힘을 믿었다. 불행이나 불운이 반드시 살아서 글을 쓰겠다는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중에서


그래서 나는 많은 이들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 그리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아 서로가 서로의 역사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무엇보다 씀으로서 자신이 가장 먼저 구원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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