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세, 엘리베이터 사건 -
언제부터가 시작이었는진 모르겠다.
아들은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면 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 나는 아들의 그런 모습이 신기하고 기특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 부담스럽고 피곤하다. 흥미와 재미로 시작한 아들의 열정은 머지않아 눈물이 되고, 집착이 되고, 분노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아들의 분노에 취약한 엄마인 나는 늘 고민했다. 적당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울기전에 그만둘 수 없을까. 그 꼴을 못 보겠는데... 하지만 그 '적당히'라는 나의 욕심은 되려 나를 공격하는 화살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엘리베이터
아들이 4살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숫자에 관심이 많았던 아들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흥분했다. 숫자를 누르면 불이 들어온다. 게다가 움직이는 물체라니! 아이 입장에서는 엄청난 흥미요소이자 놀잇감일 수밖에 없었다. 1층에서 2층, 3층, 4층, 5층.. 숫자가 바뀔 때마다 아이는 숫자를 크게 외치며 즐거워했다.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며 나 역시 행복했다.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에 일부러 21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하고 1층 앞 계단에 앉아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을 의미 없이 구경하기도 했다. 아이는 스케치북에 기다란 네모를 그려놓고 1부터 21까지의 숫자를 삐뚤빼뚤 그려 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아들의 엘리베이터 사랑은 곧 집착과 분노로 이어졌다.
▼ '적당히'를 넘어 '도가 지나친' 상황의 예
- 버튼이란 버튼은 무조건 내가 눌러야 함
-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 내가 제일 먼저 내려야 함
-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역시 내가 제일 먼저 타야 함
- 우리 집보다 다른 집에 먼저 도착하면 안됨
- 엘리베이터 점검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이런 내용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등원부터 전쟁을 치르기 일쑤였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내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던 나는 고작 4살 아이의 고집을 꺾어보겠다고 여러 번의 무리수를 두었다. "그렇게 하면 넌 앞으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어!"라고 엄포를 놓곤 아이를 들쳐 안고 11층까지 꾸역꾸역 올라온 날이 있는가 하면, "엘리베이터에서 말썽 피웠으니 반성하고 어린이집 들어가! 반성하기 전엔 못가!"라고 했다가 결국 그날 하루 집에서 가정보육을 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누구를 위한 무리수였나 싶다.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내 자유시간은 허무하게 날아가버리고, 아이를 혼낸 죄책감과 판단의 오류를 범한 미숙함에 대한 자괴감으로 나는 하루 종일 괴로웠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그런 날은 여전히, 그 후로도 수없이 찾아왔다. 7세인 아들은 엘리베이터를 포함해 다방면의 관심사로 나를 여전히 괴롭히고(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적당히'를 넘어선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여전히 무리수를 두고 있다.
나는 언제든 화살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