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9. 관계

관계의 문법이 달라지는 곳

by Life like Joy

대도시의 삶에서 맺어온 관계와는 사뭇 다른 종류의 것이 도시 외곽에 있다.


섬 제주, 그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내가 사는 이곳은 자식이 자신이 나고 자라 졸업한 학교 후배가 되는 일이 흔한 작디작은 농어촌 마을이다.


내가 사는 빌라 두 동에는 모두 16 가구가 산다. 70대 노부부부터 갓난아기를 둔 가족, 제주 토박이부터 육지에서 온 이주민까지 색깔과 모양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총집합체이다. 20년 전에는 육지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도망치듯 삶의 터전을 옮겨오는 사람들이 많았다지만, 요즘은 치열한 삶이 지긋지긋해진 도피처로, 혹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 오는 경우도 많다. 내가 사는 빌라는 이 모든 이주 또는 정착의 이유가 한 그릇의 비빔밥처럼 섞여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작은 빌라인 만큼 몇 호의 불이 저녁 몇 시쯤 켜지는지, 차가 언제 들어오는지 주말에는 교회를 가는지, 제사가 있어 친척이 방문했는지 그 면면을 조금씩 알게 된다. 굳이 궁금해하지도 그렇다고 물어본 적도 없는 것들이 어느새 알아채진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이 공동체의 최우선 순위다. 빌라 뒤 학교 가는 지름길에 누군가 돌을 쌓아 길을 내어주기도, 매일 외할머니를 보러 오는 이제 갓 고개를 가눌 수 있게 된 아기를 태운 소형차 (뒤에 아기타스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다)는 빌라 내 어디에 주차해도 모두 너그럽게 이해해 준다. 빌라 내 뜰에서 아이들을 위해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자는 의견이 반상회 안건으로 올라오고, 윗집 할머니는 아이들 먹으라고 연신 과일이며, 야채며 간식거리를 나르신다. 이제 중학생이 된 빌라 터줏대감 00 이는 어렸을 때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 대신 옆집 할머니가 손수 돌봐주셨다고 한다. 지금도 돌아가신 그 옆집 할머니가 종종 생각나는지 친할머니보다 더 그립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집이 빌라 총무를 맡게 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반상회에서 세입자임에도 만장일치로 얻은 타이틀이다.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한 번 궁금해 본 적 없는 남편과 나는 301호에 사는 분 성함을 알고, 102호와 빌라 내 화원에 심을 꽃을 함께 사러 가고 주말에 종종 화단에 물을 주며 콧노래를 부른다. 참 이상하지. 내 가족만 알고 지낸 이전 세월이 몇 배인데, 어느새 이웃에 마음을 열고 화단에 쓰레기를 줍고 비가 오면 공동 하수도 걱정을 하는 이상한 마음이 든다는 게.


대도시에서 익혔던 관계의 문법이, 이곳에서는 다르게 쓰인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사는 곳이 먼저 나를 이웃에게로 데려다 놓는다.

작가의 이전글마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