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음악 들으려고 공부를 해

이유는 없어 그냥 들어

by 미니칸테

보통 사람들은 취미생활을 시작하면 장비부터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운동 취미를 시작하면 운동기구부터 지르고 만들기 취미를 시작하면 전문가용 도구부터 질러놓는다. 피 같은 돈 주고 산 장비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닮도록 쓴다면 엄청난 비용 절약이겠지만 현실은 시궁창. 동해물 수심이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장비들은 먼지와 콜라보해 수납장 터줏대감이 된다. 거대 운동기구라면 본래의 용도는 상실하는 현상은 안 봐도 너튜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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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감상 역시 장비병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서양 놈들 것은 다 고급인 줄 알던 시절에 들어와 부자들 중심으로 퍼진 상향 전파 문화이기 때문이다. 최고급 오디오가 딸린 고풍스러운 서재에서 원두커피 한 잔 마셔가며 들어야 할 것 같은 음악이니 자금 딸리는 소시민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세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 지구인의 청각을 책임지는 너튜브만 잘 쓴다면 텅장으로도 클래식 음악 감상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클알못도 아는 일상 브금부터 마니아틱 현대 클래식 음악까지 전 세계 덕후들이 올린 영상으로 가득하니 취향껏 골라들을 수 있다. 그리고 시작 단계부터 좋은 장비 필요한 취미는 거의 없다. 일단 발을 담가보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라고 느껴지면 본격적으로 돈을 투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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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과는 넘나 다른 구성과 일부 마니아들의 허세로 유식한 사람들만 듣는 음악이란 이미지도 크다. 주변에 클래식 음악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온라인 모임에서 이야기해야지 하고 가입했더니 다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댄다. 쓰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전문가 포오쓰 나는 용어고 질문글에 면박 주는 댓글 올라오면 나 같은 사람은 클래식 음악 들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까지 한다.


클래식 음악은 무식한 사람은 들으면 안 되는 건가?


아무리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지만 기본적인 배려는 어디다 쌈 싸 먹었나 싶다. 난 알아서 헤쳐나갔으니 니들도 그래야 한다는 보상심리와 이런 고귀한 덕질판엔 너처럼 천박한 놈 못 받아준다는 우월의식의 콜라보 때문이다. 이런 허세들 때문에 커뮤니티에 오는 사람만 오고 발전이 사라지고 있다. 유럽 것들 음악이라지만 유럽의 나쁜 점까지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음악 기초지식 서적이 번화가 핸드폰 가게 수만큼 출간되는 현상엔 다 이유가 있다. 다른 취미들은 흥미 단계에서 발을 담가보고 자연스럽게 지식을 쌓아 만랩의 길로 간다는데 유독 클래식 음악만 흥미 단계에서 만랩 수준의 지식을 요구해 발도 못 담그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다 서양 우월주의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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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신(요즘 보면 딱히 잘나지 않지만) 서양놈들 음악이라고 꼭 공부를 많이 해 경건한 자세로 들을 필요 없다. 연식이 좀 오래된 대중음악일 뿐이니 과일뮤직 주간 차트 top 40 모음곡 듣듯이 핸드폰 할 때 집안일할 때 과제할 때 틀어 흘러가는 대로 즐기면 된다. 듣다가 눈꺼풀이 부착되어 작곡가 선생님을 만나고 와도 상관없다. 음악의 주요 기능인 심신안정 효과를 톡톡히 받고 있으니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


큰맘 먹고 공연장에 갔는데 내 좌석이 귀호강 숙박업소가 되었어도 자책하지 마시라. 집에 있었다면 잡념에 사로잡혀 편안히 눈꺼풀이 포개지지 않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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