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대한 추억
엄마는 매번 방학 마지막날 달력으로 교과서를 싸줬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마지막 날 저녁을 먹고 엄마와 함께 나는 개학 준비를 했다. 일기를 매일 썼는지 확인하고, EBS 방학 탐구생활을 챙기고, 교과서 준비를 했다. 엄마는 지나간 날짜의 달력으로 교과서를 손으로 꾹꾹 눌러가면 반듯하게 감쌌다. 새하얀 뒷면이 교과서의 겉표지가 되었다. 따뜻한 방 안에서 엄마는 물감으로 정성스럽게 코끼리, 토끼, 강아지, 생쥐가 즐겁게 학교 가는 모습을 달력 위에 그렸다. 나는 숨죽여 동물들이 완성되는 것을 보았다. 마치 경건한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싶다고 조르지 않고 엄마가 그리는 모습을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 그림이 마르면 엄마는 살짝 두꺼운 비닐인 아스텔지로 한 번 더 쌌다. 동물 친구들이 생긴 교과서를 보면서 방학이 끝나는 것은 아쉽지만 학교 가는 것이 설레기도 했다.
어릴 적 내 방 책상 반대쪽에는 그림 액자가 있었다. 엄마는 달력의 그림을 오려 주기별로 액자에 바꿔 끼워 놓았다. 봄에는 두 명의 여자아이가 피아노 치는 모습이 걸려 있었다. 흘러가는 느낌의 붓질로 과 옅은 주황과 초록의 색들이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었다. 겨울에는 유럽 어느 마을의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 그림이 걸려 있기도 했다. 얼음 위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쳐다보며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 했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이 그림들에 대해 물어보거나 반대로 엄마가 딱히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서양미술사에 대해 배우면서 그림들의 제목과 화가를 알게 되었다. 겨울풍경은 네덜란드 화가 아베르캄(Hendrick Avercamp)의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이었다. 피아노를 치는 두 아이가 그려지 그림은 르누아르의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이었다. 뉴욕에 여행 갔을 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을 한참 쳐다보았다.
엄마는 달력을 항상 장에 깨끗하게 보관했다가 키친타올 대신 사용했었다. 엄마는 손이 큰 편이라 한 끼를 먹어도 여러 가지 전을 푸짐하게 구웠다. 깻잎전, 동그랑땡, 두부전, 부추전, 고구마전, 배추전, 호박전, 해물파전, 육전 등을 자주 구웠다. 엄마는 굽기 전 대나무 채반 위에 달력 뒷면이 위로 오게 깔았다. 그 위에 전들을 종류별로 나란히 두었다. 쪼로미 줄을 선 전들을 채 식기 전에 호호 불어가며 손으로 집어 먹었다. ‘고기는 야채랑 같이 골고루 먹어야 한다.’ 는 엄마의 요리 철학이 반영된 동그랑땡은 고기 반 야채 반으로 한 입에 넣지 못할 만큼 뚱뚱했다. 엄마가 동생과 나를 최대한 많이 먹일 수 있는 방법으로 전을 선택했던 것 같다. 사춘기 때는 속으로 엄마가 맛있는 것을 너무 많이 줘서 내가 통통한 것 같아 괜히 탓을 하기도 했었는데 완전 배부른 소리였다는 것을 독립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새하얗고 빳빳한 달력은 나의 마음과 몸을 넉넉하게 살찌웠다. 교과서를 감싸고 있던 달력 위에 탄생한 그림처럼 일상에서 예술을 실천하는 엄마의 태도가 나에게 이어졌다. 엄마는 항상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아름다움을 일상에서 추구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지점토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통로 끝에 앉아서 ‘학교 잘 다녀왔어?’ 하고 웃으며 여자아이가 입은 치마의 프릴을 주름잡고 있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엄마는 모자를 쓰고 체크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소풍가는 장면을 지점토 액자로 만들고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즐거워하며 일상에서 미술을 즐겼다.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나의 태도는 분명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연말이되면 판촉물로 달력들이 생기고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관리 할수 있으니 굳이 필요 없지만 기어이 벽에 걸어둘 달력을 사고야 만다. 명화가 그려진 달력일 때도 있고 계절에 맞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달력일 때도 있다. 1년도 지나도 매년 내가 산 달력들은 모아둔다. 요즘은 2022년 달력을 꺼내어 ’5월‘에 있던 크뢰이어 (Peter Wverin Kroyer)의 1893년작 <장미들>을 따라 그리고 있다. 유화 물감으로 5월의 햇살을 반짝이는 하얀 장미들과 그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는 화가의 아내를 그린다. 그러는 동안 달력에 물감들이 묻고 종이는 군데군데 찢어지고 구겨진다. 그 달력을 보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여 뿌듯하다.
달력의 그림이 예술을 일상에서 즐기는 태도를 가지게 해주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몸도 넉넉하게 살찌웠다는 말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고작 전을 올려놓는 용도로 달력을 사용한 것을 가지고 달력이 몸을 살찌우게 했다는 것은 억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달력 위에 통통한 전들은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잘 크도록 도와 주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달력 뒷면은 전의 기름도 잘 흡수하고 키친타올과 달리 들러붙지도 않는다. 명절에 친정에 가면 기름에 구워진 전들이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나는 냄새에 이끌려 신발을 벗자마자 주방으로 가 손으로 아직 따뜻한 전들을 집어먹는다. 명절을 지내고 서울에 돌아오면 내 몸무게가 불어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