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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an 08. 2018

만달레이에 도착을 했습니다!

2013. 미얀마 ::: 만달레이

#1. 만달레이에 도착을 했습니다! - 미니양


 드디어 방콕에서 만달레이로 넘어왔다.

 방콕에서 받아야 했던 미얀마 비자부터 공항에서의 긴 기다림까지. 미얀마는 나에게 쉬이 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렇게 미얀마라는 나라에 도착하기까지 순탄치는 않았기에 감회가 더욱 남달랐다. 만달레이에 온 첫 날, 숙소를 잡고 그냥 동네구경을 했다. 만달레이의 첫인상은 라오스나 베트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더 다양하게 섞여있고 생각보다 복잡한 느낌이랄까? 첫 날의 기억은 그랬다. 미얀마라는 나라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했던 것 같다. 딱히 가이드북도 없었고, 와이파이 되는 곳은 더더욱 찾기가 힘들었기에 그저 기분내키는대로 걸으며, 배가 고프면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맥주 한 잔을 하고 그랬다. 



 조금씩 만달레이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이곳만의 풍경과 일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처럼 맨발로 만달레이 힐을 올랐다. 꽤 긴 시간동안 오르면서 곳곳에서 그들의 종교와 일상을 엿볼 수도 있었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언제까지 올라야 하는 걸까 힘들어할 때 쯤 내 옆으로 지나가는 미얀마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냥 올라가기에도 힘든 계단을 좁은 치마를 입고 바구니를 머리에 잔뜩 이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힘을 내어 계단을 올랐고, 이윽고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올랐던 계단은 954개였다.)


 힘들게 도착한 사원에서 정성들여 기도하는 미얀마 사람들을 보니, 우리네 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의 절과 같기도 또 다르기도 했는데, 종교가 없는 나에게도 만달레이 힐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꽤 오랜 시간 힐에 머물며 돌아보던 그 순간, 난 또 한 번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만달레이 힐까지 차로 한 번에 올라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알고보니, 내가 올라 온 계단 반대편으로 차가 올라올 수 있는 길과 널찍한 주차장이 있었다. 다들 그 길을 통해 차로 편하게 만달레이 힐로 올라오는 것이었는데, 내가 올라 온 계단 외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 나에게는 살짝 충격이었다. 헥헥거리며 죽어라 남산을 걸어 올라갔더니, 정상에서 케이블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차와 엘리베이터로 올라갔을 때 느껴지는 것과는 또 다른 풍경과 경험이 있으니 그다지 억울하지는 않았다.








#2. 지하철역 대합실에 도착했습니다!- 고래군


 그녀와 시각을 정했다. 보이스톡으로 목소리라도 듣자며, 그러니까 그녀에게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 정해진 시각에 통화를 하자고 정한 것이다. 그 시각은 그녀에게는 점심을 먹을 때였고, 한국의 나에게는 오후 세 시였다. 집에 있는 인터넷 공유기는 무선을 지원하지 않는 모델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통화하기에는 데이터가 많이 들까봐 걱정도 되고...... 결국 집 근처 지하철역 대합실로 발길을 옮겼다.


 혹시라도 그 전에 연락이 올까 싶어 서둘러 도착한 그곳에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멍하니 앉아 있는 어떤 할아버지, 끊임없이 올라가는 메시지들을 읽으며 바쁘게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어린 여학생, 건너편에는 게임 이야기에 한참 열을 올리는 두 어린 남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그 '어떤 할아버지'의 옆 자리에 한 칸 떨어져 앉았다. 나의 반대편에는 자기의 세상에 나를 등장시키지 않으려는 듯 온 신경을 작은 화면에 집중하는 어린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무엇인가가 한가득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 서너 개를 든 아주머니 한 분이 어딘가에서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어린 여학생 곁에 앉았다. 게임 이야기에 몰두하던 남학생들은, 게임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나란히 어딘가로 떠나갔다. 그리고 불현듯 할아버지의 다른 일행이 도착했다. 건조하게 앉아 있던 할아버지의 얼굴에 온갖 표정을 만드는 주름들이 떠올랐다. 조용한 대합실이 두 늙은 목소리로 싱싱하게 채워지기 시작한 것도 잠시였다. 그들은 나란히 지하철역 바깥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떠나버리고야 말았다.


 다시 조용해졌다. 지하철들이 역에 도착하고 다시 떠나는 조용한 소음과 진동이 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왔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몇 명이 내린 듯 우리 앞을 지나쳤고, 또 바깥에서 우리 앞을 지나쳐 더 깊숙한 곳을 향했다. 그러고 나면 대합실은 또 정적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전화기 화면에 떠올랐다.


 "당신 어디야?"

 "오빠, 나 지금 밥 먹고 연락하고 있어요. 만달레이."


 전화기 너머로 시끄러운 엔진소리들이 가득했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 바로 곁인 걸까? 굉음에 파묻혀 그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거기 버스 터미널이야? 뭔 차들 달리는 소리 같은 게 시끄러운데요?"

 "아아. 하필 여기 옆에 무슨 공사 하고 있어서. 그렇게 크지는 않은데?"

 "몰라요. 나한테는 엄청 크게 들리는데?"

 "보이스톡이라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조용한 그곳에, 이번에는 그녀의 목소리를 담은 나의 목소리가 번지기 시작했나보다. 앉아있던 이들이 힐끔 나를 쳐다본다. 그러나 나의 귀에는 온통 그녀의 목소리와 그녀가 있는 곳의 소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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