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2023년 9월 의정부에서 ‘제2회 레드카펫 영화제’라는 독립영화제가 열렸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 영화제는, 우리가 보통 ‘인디 영화’라고도 부르는 독립영화(Independent film)를 대상으로 한다.
홍지은 감독의 영화 <유효기간>(2023)은 한국 어딘가에 분명 있을 법한 어느 중학교와 또 수없이 존재하고 있을 어느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다.
어느 여자중학교 교실. 출산휴가를 떠나는 담임을 대체하기 위해 기간제 교사 ‘효정’(손영주 분)이 온다. 반장을 맡은 학생 ‘서영’(유가은 분)은 할머니의 보험료 납부 연체 등으로 금전적 곤란을 겪는 엄마를 보고, 학원 대신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다. ‘서영’은 다른 교사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효정’을 본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른 ‘효정’은 폐기하는 삼각김밥을 몰래 챙기려다 곤란을 겪는 ‘서영’의 삼각김밥까지 같이 계산한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효정’이 학교에서 사라진다. 담임이 복직했기 때문이다. ‘서영’은 교차로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다가 길 건너에 서 있는 ‘효정’을 멀리서 발견하지만, 이내 다른 방향의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오자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결국에는 두 사람이 재회하지 못하게 된다.
카메라가 보여주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차갑고 삭막하다. 기간제 교사 ‘효정’은 다른 교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교무실 구석에 있는 자리에서 편의점 샌드위치로 혼자 끼니를 때운다. 심지어 그 자리도 휴가를 떠난 본래 주인이 없는 동안에만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자리이다. 그리고 ‘서영’ 역시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전화기 너머를 향해 제발 조금만 더 기달려 달라고 애원하는 엄마의 목소리로 채워지는 집 안에서, 중학생 ‘서영’은 삶의 안정성이 와해되는 공포를 감내해야만 한다.
그런데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효정’이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서영’에게 작은 친절을 건네는 순간은 더욱 눈부시게 빛이 난다. 그리고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힘든 상황을 직면해야만 하는 ‘서영’이기에, 자신이 외로워한다고 느끼는 ‘효정’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말을 건네는 순간에는 스크린 너머 관객석에까지 따스한 온기가 스며 나오게 된다.
영화 <유효기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이른바 ‘불안정생활자’나 또는 ‘프레카리아트’라고 부르는 사회 계층에 해당되는 나약한 주체들 사이에서 우리가 연대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인식하고 고민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서영’과 ‘효정’ 두 사람을 통해 사회의 구조가 강제하는 경제적 결핍으로 인하여 손상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주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늦은 밤 벤치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효정’이 ‘서영’에게 샌드위치를 건네는 시퀀스를 통해, 그러한 주체들이 서로에게 증여하는 관심과 배려를 통해 나타나는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도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영화는 여기에서 ‘효정’의 대사를 통해 “유효기간”이라는 제목을 직접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영화의 중핵으로써 배치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약한 주체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타진해보는 연대의 가능성이야말로 홍지은 감독이 담아내고자 했던 핵심적인 주제라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도시의 사거리 교차로를 배경으로 하는 마지막 시퀀스에 더욱 눈길이 끌린 것이 사실이다.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길을 제시함으로써 결국 서로의 관계가 결국 단절되는 이미지가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도와 인도의 분할, 횡단보도와 삼색으로 명멸하는 신호등, 이것은 근대적 도시공간에서 주체가 스스로의 위치를 결정하지 못하고 법과 제도의 통제 아래에서 허가받은 위치로만 이동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기호들이다. 그리고 이 기호들은 지식-권력이 생산해낸 담론이 합리적 이성이나 법과 질서라는 형태로 주체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푸코의 ‘통치성(Governmentality)’에 관한 아이디어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을 뒷받침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효정’이 위치한 좌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서영’이 이동하는 원인으로, 신호등에 들어온 파란불과 횡단보도, 도로와 인도의 분할을 기표로 하는 ‘제도(Régime)’를 지목하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정말이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프레카리아트 사이의 연대는, 그 주체들이 이미 지배적 권력이 마련한 담론 체계에 단단히 포박되어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은유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연대에 관한 가능성과 불가능성이라는, 서로에 대해 배타적인 두 가지 의미를 상호보완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유효기간>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매력적인 영화이다. 특히 홍지은 감독은 인물들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시선 주체까지도 한결같이 담담하고 평온한 정동을 유지하게끔 한다. 이를 통해 이 영화는 서로 대조적인 두 개의 이미지들 사이의 경계적 공간을 스크린 너머에 마련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성공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경제적 곤란으로 인한 고통과 타자의 관심과 배려로부터 오는 기쁨의 사이를 횡단하는 주체에 대한 영화로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교사와 학생이라는 배타적 관계에 놓인 두 주체 사이에 놓인 경계를 횡단하는 이미지에 대한 영화로 해석될 수도 있게 된다.
영화 <유효기간>은 13분 남짓의 짧은 영화이다. 하지만 감독이 스스로 “러닝 타임이 짧은 영화”라고 말하기 전까지, 결코 이 영화가 짧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 영화가 독자 또는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해보고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분명하게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정갈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는 점도 큰 매력이었다.
※ 홍지은 감독의 졸업작품이기도 하다고 들었다. 마찬가지로 신인 평론가인 입장에서,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 프레카리아트(Precariat):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안정한(precario)’ 상태에 놓여 있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 계급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언제든 다른 노동자로 대체 가능한 상태에서 저임금·저숙련 노동을 지속해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계층을 의미하며, 흔히 ‘고용 유연성’이나 ‘노동시장 유연성’이라고 표현하는 노동 조건을 동반한다. 한국사회에서는 보통 ‘알바’나 ‘계약직’, ‘비정규직’, ‘구조조정 대상자’ 등으로 표현하는 노동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