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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라마단'이라고?

라마단 기간에 '도하'에서 레이오버

by 미니고래

카타르 도하에서 레이오버(하루 미만으로 경유하는 것)를 할 때의 일이다. '맛있는 것도 먹고 최대한 알차게 하루를 보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밝은 낮 동안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다.


이런저런 기대를 안고 비행기 착륙을 기다릴 때였다. 도하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에 기장이 라마단 기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동시에 모니터에서도 라마단 기간이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다시 말해서 그 사실을 착륙 직전, 도착하기 직전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라마단이라고?? 라마단이 정확하게 뭔지는 여전히 몰랐지만 단 하나의 사실, 해가 질 때까지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라마단이라니... 예전에 두바이에 갔을 때에는 마냥 잘 먹고 잘 다녔으니까 이번에도 막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일단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올해 라마단에 대한 내용은 이렇다.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 기간이 3.11(월)(잠정)부터 시작됩니다(4.9.(화)까지). 라마단(Ramadan, 이슬람력 9번째 달)은 선지자 모하메드가 코란의 첫 계시를 받은 것을 기념하여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을 행하고 자선과 관용을 실천하는 달로, 라마단 기간 중 무슬림들은 일출부터 일몰까지는 먹거나 마시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있습니다.

주재국 정부에 의하면, 무슬림이 아닌 외국인들이 동 기간 중 금식해야 할 의무는 없으나, 해가 떠 있는 동안 허가된 식당 외의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음식 및 음료 섭취(껌 포함)를 금하고 있습니다. 위반 시 징역형 혹은 벌금형에 처할 수 있으며, 특히 음주나 음주운전에 대해 더욱 엄격한 처벌을 적용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overseas.mofa.go.kr/ae-ko/brd/m_11118/view.do?seq=1346214)




외국인들은 금식의 의무가 없다고는 하지만, 식당은 대부분(사실상 거의 전부) 문을 닫으니 낮 동안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형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포장해 오기로 하고 'MONOPRIX Msheireb'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슈퍼마켓이 있는 거대한 쇼핑몰 전체가 정말 영업을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불이 꺼져 있어서 당황하기도 했다. (마치 영화 <나는 전설이다.>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지하 슈퍼마켓은 영업 중이었고, 즉석조리 코너에 가서 음식을 찾을 수 있었다. 슈퍼마켓 직원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얼마 전에 BTS 정국이 도하에 왔었다며 엄청 반가워했다. 같은 한국인인 것뿐인데 반겨주어서 뿌듯했다.


가고 싶었던 미술관 박물관 모두 전시는 볼 수 없었고, 건물 내부 구경만 하거나 외관만 봤다.


먹고 싶은 몇 가지를 포장해서 호텔로 돌아와서는 호텔 방 안에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식당뿐만 아니라 박물관도 미술관도 전부 다 일찍 문을 닫았다가 해가 지는 저녁 이후에나 다시 문을 연다고 해서, 밖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호텔 방에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자면서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해가 지는 6시쯤이 되자, 밖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며 떠들썩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기 시작했다. 해가 졌으니 이제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호텔 레스토랑에는 음식들이 가득 펼쳐졌고 사람들이 해가 졌을 때 모스크에서 나오는 기도문 소리를 기다리다가, 일제히 즐겁게 식사를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가 져서 사위는 어두워졌지만, 길거리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식당과 거리에도 활기가 넘쳤다. 내가 낮에 봤던 인적이 드문 그 도시, 도하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우리도 몸을 일으켜 즐거운 도하의 밤을 같이 즐겨보기로 했다. 호텔 맞은편에 있는 '수크 와키프'를 산책하고 해변을 걷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할 수 있었다. 중동 음식을 먹으면서 비로소 '우리가 도하에 와 있구나.'를 느꼈던 시간. 라마단이라 낮에 식당에서 밥도 못 먹고 미술관도 관람을 못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나저나 앞으로는 이슬람 문화권에 방문할 때는 라마단 기간을 꼭 미리 알아둬야겠다. 물론 기회만 된다면 라마단 기간이어도 갈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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