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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Nov 10. 2015

다른 곳에 가볼까요?

2012. 일본 ::: 삿포로


#1. 하코다테에 가볼래요?- 고래군 


삿포로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기분은 참 새로웠다. 두 발로 걸어 다니니,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할 때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둘이 두 손 꼭 잡고 눈길을 걸어 다녀 미끄러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래도 추우니까 손을 놓기 힘들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미니양이 내게 말했다.


“내일 하코다테에 가야해.”


 그녀의 말에 의하면 삿포로 버스터미널에서 하코다테로 가는 버스편이 있다고 한다. 하코다테, 어디서 들어보았더라? 메이지 시대에 개항했던 곳이었나?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두텁게 눈으로 덮여있다. 이곳에 온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어쩐지 원래 이곳에 살던 것처럼 느껴진다. 어젯밤에는 길가에 세워진 택시에서 내린 택시기사 아저씨가 가슴높이까지 쌓인 길가의 눈을 넘어오려 하는 것 같아 ‘도와드릴까요?’ 하고 말도 걸었다. 괜찮다며 다부지게 웃던 그 아저씨의 서글서글한 눈가의 주름이 마치 삿포로에 가만히 내려앉은 눈처럼 이제는 내 얼굴에도 가만히 내려앉았다.


 오오도리 공원 근처에 있는 츄오 버스 터미널에 우리는 도착했다. 이곳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JR도 있긴 한데, 버스에 비해 엄청 비싸거든.”


 그런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터미널 매표소의 여직원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그 날짜에는 티켓이 없습니다.”


 그녀의 표정이 불안과 초조로 달아오른다. 나를 터미널 한 편에 세워두고는 그녀는 티켓을 알아보러 다시금 매표소에 갔다가 돌아왔다. 이대로 두면 곧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그녀가 내게 말했다.


“지금 새 해 첫 날을 앞두고 있었지 참. 이곳은 신년 연휴라 그런가 티켓이 없어.”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안 가면 되지 뭐. 거기 꿀단지 묻어둔 것도 아닌데 뭐. 괜찮아 괜찮아.”

“안 괜찮아! 이미 하코다테 호텔 예약해놨단 말이예요.”

“응?”

“버스티켓 있을줄 알고, 숙소만 예약하고 버스는 예약안했어요;;;”







#2. 하코다테에 갑시다!- 고래군


 다음날 우리는 하얀 눈 향기로 가득한 삿포로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JR 티켓을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여전히 지하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길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유리문을 열고 그녀를 지나보낸 후, 나는 뒷사람을 위해 유리문을 잠시 붙잡고 기다렸다. 반쯤 벗겨진 머리카락 대신 나보다 더 오랜 삶을 대신 뒤집어쓰고 있는 한 영감님이 나에게 목례를 하며 인사를 건넨다. ‘아, 스미마센 센세.’ 나도 그에게 목을 가볍게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삿포로역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서자, 안쪽에 직원들이 앉아있는 곳이 있다. 우리가 티켓을 알아보러 왔다고 말을 전하자,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다. 한국이라고 답하니 바로 옆 직원에게 안내한다. 처음에는 유창한 영어로 다시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질문한 담당 직원은, 곧이어 한국어로 우리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하코다테 왕복 티켓 가격은 레일 패스 가격보다 오히려 비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왕복티켓을 끊기보다는 3일 패스를 끊는 게 나은 것이다. 티켓을 구매한 우리는 훗카이도 지역 여행 홍보 전단지들을 여러 장 들고 인포메이션 센터를 나섰다.


“오빠. 기왕 레일 패스 끊은 거, 우리 다른 데도 가보자.”

“그래. 그럼 우리 3일동안 JR 타고 여기저기 다 갈 수 있는 거야?”

“네.”

“그럼, 어디 한 군데 가서 밥 먹고 나서, 다음 차 타고 내려서 산책하고, 또 다음 차 타고 내리고 해도 되는 거야? 모든 역마다 한 번씩 내려서 둘러볼까?”

“그렇긴 한데, 전부 내리는 건 시간상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고요.”


 아. 이제야 그녀 얼굴에 미소가 생겼다. 그래 처음 생각한 것보다 돈은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만큼 더 즐겁게 여행하면 되지 뭐. 그럼 된 거야.








#3. 여행은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나봐 - 미니양


 숙소를 미리 예약하고 다니는 편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이번만큼은 미리 숙소를 예약하고 싶었다. 연말, 신년 기간이니까 방이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까지 생각해놓고선 하코다테로 가는 티켓은 왜 예약을 안했을까? 역시 미리 예약하는 건 나랑 맞지 않나보다.


 하코다테로 가는 JR 패스를 예약했기에 예산은 초과됐지만 그래도 다른 도시들도 볼 수 있으니까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 하코다테로 가는 길, 눈덮인 열차는 꽤나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다. 눈의 나라로 떠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홋카이도의 겨울은 이미 눈의 나라였다.) 삿포로에서 하코다테까지는 기차로 대략 4시간 정도, 그 중간에 서는 노보리베츠와 도야호를 지나갈 수 있었다. JR패스 덕분에 예정에 없던 노보리베츠와 도야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여행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그런 계획의 어긋남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기쁨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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