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성공에 알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과, 공신력 있는 기관의 통계 한 줄에 무너져 내리는 각오. 어떤 청첩장이 무너트린 짝사랑의 낭만과, 어떤 이의 평범한 사치가 무너트린 범부의 소주잔. 몰랐으면 좋았을 이야기들. 몰랐더라면 무너지지 않았을 소식들. 그런 것들이 요즘 세상에는 너무 많다.
어느 겨울, 작고 똑똑한 이는 나와의 '연애'를 마쳤다. 그러고 보니 일 년 즈음이 지났다. 나는 그때도 지금처럼 합사에 나가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른 채 일만 하고 있었고, 그때도 지금처럼 살갗을 에는 초겨울의 추위가 일었다.
우리는 실수로라도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미련 같은 것도 내비치지 않은, 그야말로 깔끔한 이별이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인스타그램을 차단하지 않았다. 헤어진 서로의 일상을 가끔 엿봤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늙었고, 그녀는 어렸다. 나는 매력이 없었고, 그녀는 매력이 넘쳤다. 그러니 그녀가 혼자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혼자인 기간은 길어질 것이다.
우리는 스토리만 훔쳐보는 사이가 됐다. 그걸 '사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다면 그것 만큼이나 딱한 사이가 또 없을 것이다. 나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씩 무료할 때나, 그리고 마침 그녀의 스토리가 하필 올라와 있을 때에나 그것을 봤다.
가끔 스토리를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내 스토리를 봤다는 것을 확인하면, 함께 했던 이별의 시간에 주고 받은 말들이 떠올라 내심 기분이 좋기도 했다. 헤어졌지만,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이상은 아니었다. 아직도 집에 놓인 소파를 바라보면 그녀가 나를 재워둔 채 밤새 울었다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가 받았던 상처, 내가 주었던 상처. 두 번 생각해 봐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내 소파 위가 걷어둔 빨래로 항상 가득 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빈 소파에서 그 아이가 또 울고 있을까봐.
여느 때 처럼 어쩌다 그녀의 일상을 훔쳐 보았다. 네댓 개의 사진. 좋은 해변과 여행지가 보였다. 누군가 찍어준 듯한 인물사진과, 2인분의 음식들과, 아무도 태그 되지 않은 사진들이 보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모르고 싶었던 이야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사진은 꼭 허리춤에서 올려다보고 찍으라며 성화를 내곤 했다. 장난처럼 내 팔을 셀카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누군가와 다시 그러고 있는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객관적으로는 그저 몇 장의 여행 사진이었겠지만, 나는 알아볼 수 밖에 없는, 나와의 시간과 기억에 배어있는 그녀의 습관들이 명확하게도 읽혔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혼자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혼자인 기간은 길어질 것이다. 그러니 때가 되면, 이 인연도 뭣도 아닌, 관계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어떤 끈 같은 것을 마무리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지막 사진을 넘겨본 순간, 당당하게 무너지며, 지체 없는 프로토콜처럼 더 이상 그녀의 소식을 볼 수 없게 되는 마법의 단추를 눌렀다. 이제 때가 되었네. 잘 가렴, 날 훔쳐봐주던 작고 똑똑한 아이야.
우리가 들락거린 스토리는 정말 '이야기' 였을까? 네 일상의 이야기는 모르지 않길 원했으면서, 모르고 싶은 순간이 다가오는 건 싫었던 걸까.
사실은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들 말이다. 우리를 무너져 내리게 만드는 이야기들. 우리를 내면의 거울 앞에 세워두고 속옷 채로 벗겨버리는 그 이야기들.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미뤄둔 소식. 미뤄둔 소식이 우리를 찾아올 때에는, 미루기 전보다 커다란 무언가를 동반해온다. 몰랐으면 좋았을 이야기들. 몰랐더라면 무너지지 않았을 소식들. 하지만 기필코 알게 되어 버렸기에 또다시 무너지고 마는 마음들. 미뤄둔 소식이 찾아오기 전에 내 삶이 더 좋아졌다면 무던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을, 하고 못내 아쉬워하며. 그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지 미리 알아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