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앞으로의 '주술회전'이 기대되는 이유

'범부 엔딩'은 아닐지도

by 은유 Metaphor
만화를 주간으로 연재한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다.
-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

'주술회전', '진격의 거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술회전 극장판 : 시부야사변X사멸회유⌟, 2025.12.

나는 '주술회전'을 정말 싫어했다. 주술회전은 그 당시까지 장르물의 집중으로 인해 지속되어 왔던 재패니메이션 업계의 퇴폐를 제대로 설명해 주는 작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막장 스토리,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설정, 핍진성과 개연성의 부족, 캐릭터의 죽음을 소비하는 방식 등, 주술회전에서 비판할 수 있는 요소는 차고도 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는 뭐라고 욕을 지껄이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술회전을 끝까지 시청했다. '시부야사변' 이후 차기작인 '사멸회유'가 선공개된 것도 벌써 한 달여가 지났다. 상영이 끝나고 극장을 나서던 때, 나는 몇 가지의 이유 때문에 극장에 들어서기 전과는 달리 그동안 회의적이었던 주술회전이라는 작품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의 주술회전이 기대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번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산업구조 변화와 최근 애니메이션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의 주술회전이 기대되는 이유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1. 애니메이션 소비 흐름의 변화


극장에 들어선 나는 상영관을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상영관에 들어서는 이들의 연령대와 계층이 지나치게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동반한 채 계단을 오르는 엄마, 친구 사이처럼 보이는 여중생 무리, 마찬가치로 친구처럼 보이는 아저씨 같은 사람 몇 명···. 분명 이번 ⌜시부야사변X사멸회유⌟는 15세 관람가였을 터였다. 과거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해본 내 경험상 이 정도의 다양한 계층 분포라면 전체관람가인 '미니언즈'나 12세 관람가인 '어벤저스' 시리즈를 떠올리게 했다.


다양한 계층에게 소비되는 작품이라면 보통은 상술한 작품처럼 개성이 적고 가능한 많은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안정적인 방법을 택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주술회전이 대중성을 가질만한 '동그란' 작품이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숨 쉬듯 죽어나가는 캐릭터들과 유혈 표현, 인간 존엄을 가볍게 연출하는 방식 등, 부모라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애니메이션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술회전이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계층에게 소비된다는 것은 괄목할만한 점이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크게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원작이 될 만화, 둘째는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낼 제작사, 그리고 셋째는 제작비를 투자할 제작위원회 등의 제작자다.


애니메이션, 특히 재패니메이션이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특히 '나루토'나 '원피스'를 필두로 2세대 능력자물 혹은 배틀물이라 불리는 장르들이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도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적인 스트리머 '아이쇼스피드'는 미국에 사는 흑인이지만 '원피스'나 '귀멸의 칼날'등을 비롯한 재패니메이션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릴스나 틱톡 등의 숏폼에서 최근 개봉한 '체인소맨:레제편'의 주제가인 요네즈 켄시의 'IRIS OUT'이 흘러나오면 댓글 중의 절반은 영어, 나머지 절반은 한국어와 일본어다. 재패니메이션의 소비 계층은 확실히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일본 및 한국 등의 동아시아권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여러 방면에서 국면의 전환을 맞이했다.


강철의 연금술사 TVA (2003, 오리지널)

하지만 우리는 애니메이션이 지금처럼 원작 위주의 흐름을 갖추기 전, 업계가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소비했는지 잘 알고 있다. 만화 원작이 있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주간 방영을 하게 되면 반드시 어느 순간 주간 방영의 속도가 만화 원작의 연재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한다. 미디어믹스의 판매를 위해서 주간 방영을 멈출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할까? 당시의 제작위원회들은 이것을 오리지널 스토리의 진행으로 해결했다. 만화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를 진행하고, 다른 결말로 이야기를 끝내거나 하여 원작 만화의 연재 속도에 구애받지 않고 상품의 가치를 보전하려고 한 것이다. '샤먼킹'이나 '강철의 연금술사', '헬싱', '트라이건', 등 90년대~00년대 초의 재패니메이션들은 하나 같이 애니메이션이 원작 만화와는 다른 오리지널 스토리로 흘러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와 같은 산업구조를 택한 이유는 지극히 단순한데, 과거에는 완구회사, 즉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들이 제작비의 대부분을 대는 사업구조였고 그들이 작품의 편성에 대한 대부분의 결정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간 만화 연재 플랫폼에서 완구 사업화가 가능한 작품을 물색하고, 그것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편성한 뒤, 그 애니메이션의 팬이 된 어린이들에게 완구를 팔아 수익을 남기는 구조였던 것이다. 완구회사가 직접 원작 없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기획하여 방영하는 일도 흔했다. 그 대표주자가 '기동전사 건담'시리즈다. 매주 한 편씩 쏟아져 나오는 주간 방영은 많은 어린이들을 매료시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방영이 종료되면 거짓말처럼 방금 내가 본 애니메이션의 장난감 광고가 나온다. 광고를 본 어린이들은 떼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철저히 일본 내수용, 많이 쳐줘도 그 애니메이션이 수출되는 한국 및 동아시아 일부 국가에 한해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그것은 유효했다. 과거에는 애니메이션을 산업의 일환으로써 현물 판매업의 매개체이자 수단으로만 사용했다는 것이다. 오리지널 엔딩은 작품 본위가 아닌 사업의 결과였다. 주간 방영 편성은 유지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오늘날 소비계층의 확대가 주술회전의 내일이 기대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건 웰메이드 애니메이션 시장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리지널 엔딩으로 만족하지 않는, 나아가 원작의 IP가 충실히 재현되기를 바라는 소비계층이 폭넓고 다양하게 나타나 수요를 주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 작품을 보기 위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기꺼이 그것을 기다려줄 용의가 있다. 그리고 업계와 시장은 이 같은 수요의 변화를 민첩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2. 애니메이션 산업 구조의 변화

주술회전 3기 '사멸회유'

이제 오늘날로 돌아와보자. OTT에서 늘 상위에 노출되어 있는 인기작들을 떠올려보자. 주술회전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다음 시즌을 보려면 최소 수개월 혹은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오히려 원작 만화의 결말이 나온 지 한 참이 지나서도 애니메이션이 그 뒤를 꾸준히 느린 속도로 따라가고 있는 정 반대의 현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상술한 대로 소비계층의 확대와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가져온 것은 연재 만화가 애니메이션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더욱 풍성한 콘텐츠로서 재탄생하는 것을 대중들은 하나의 완성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도중에 흐트러지거나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수요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대중의 숫자가 일본 및 동아시아에 국한되었던 규모에서 전 세계로 확대되며 미디어믹스나 완구 등 상품 판매 자체의 수익보다 글로벌 IP로서 작품이 갖게 되는 부가가치가 더욱 큰 수익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체인소맨:레제편'을 제작할 때,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MAPPA는 별도의 제작위원회를 갖추지 않고 극장판을 제작한 것으로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같은 대담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체인소맨'이 확보하고 있는 글로벌 팬들의 영향력을 직간접적으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따라서 재패니메이션 업계는 사업 구조 유지를 위해 주간 방영을 강제당하며 원작을 변경 또는 훼손해 왔던 과거와 달리, OTT의 출범으로 인해 충실하게 원작을 재현하며 주간 방영의 압박에서 벗어나 더욱 긴 시간을 갖고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는 다음 대목에서 한 가지 커다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




3. 원작의 '흑역사'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

주술회전 230화 중에서
범부(범:부, 凡夫, 평범한 사내(를 낱잡아 부르는 말)

작가도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실수를 한다.


숏폼에서 마치 헬기를 띄워놓고 현장을 중계하듯 주술회전 원작 만화의 전개를 소개하는 영상들이 줄을 섰다. 그리고 '인외마경 신주쿠 결전' 편에서 고죠 사토루의 죽음이 묘사되자 독자들의 반응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주술회전 최고의 오점이라 할 수 있는 '범부 드립'이 탄생한 시점이다.


원작 230화에서 등장한 대사 한 줄 때문에 범부라는 단어 자체가 처음으로 대중들에 의해 사용되는 밈이 되었을 정도다. 이 대사 한 줄과 고죠 사토루의 죽음은 팬들로 하여금 주술회전의 졸작 전개와 고죠 사토루 서사의 미숙한 마무리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특히나 시부야사변 편에서 죠고와의 전투를 마친 후 그에게 강하다며 인정을 건넨 스쿠나의 악역이자 강자로써의 대인배적 면모가 팬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는데, 명백히 그보다 강한 고죠에게는 그에 상당하는 인정을 건네지 않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주술회전의 이 같은 행보는 앞서 소개한 구시대적 산업구조와는 정 반대의 방법으로 팬들을 실망에 빠트린다는 점이 재밌다. 기존에는 주간 방영의 족쇄 때문에 억지로 원작과는 다른 오리지널 엔딩을 경험해야 하는 식으로 원작에 대한 훼손이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팬들의 기대치를 한 껏 끌어올린 상태에서 오히려 진행되고 있던 원작이 스스로 전개를 망쳐버려 팬들의 실망감을 자아내는 또 다른 훼손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비슷한 사례를 이전에도 겪은 적이 있다. 바로 '진격의 거인'이다.


'진격의 거인' 원작 만화에서 최종장에 해당하는 에렌과 아르민의 대화 장면, '우리를 위해 학살자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대사가 등장하며 세간이 떠들썩해졌다. 학살 미화, 군국주의 미화 등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가 수년 전부터 달고 다니던 전범미화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많은 팬들의 원성을 샀다. 진격의 거인을 제대로 본 독자라면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이 결코 학살 미화 따위가 아니었음을 진즉 알아챘겠지만, 그 대사 한 줄에 신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기에 이 같은 논란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진격의 거인 The Final Season Part 3 완결편 후편 중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사 MAPPA와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는 똑똑한 방법으로 이를 해결했다. 원작의 속도를 뒤늦게 따라오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두 번째 기회로 삼아, 그곳에서 종지부를 다시 제대로 찍는 것이다.


진격의 거인의 마지막 시즌에서 제작진은 에렌과 아르민이 나누는 대화의 비중을 더욱 긴 템포로 보여주고, 원작과는 다르게 아르민으로 하여금 에렌에게 학살의 이유를 제대로 따져 묻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학살자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말로 에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원작의 대사 대신, 우리가 함께 벌인 일이나 마찬가지라며 지옥에서라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로 대사를 수정했다. 덕분에 최종장 직전에 벌어진 대화 그 자체도 원작보다 더욱 납득될 수 있도록 풀어냈을뿐더러, 논란이 되었던 대사의 수정 및 보완까지 훌륭히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학살은 안된다'며 꾸준히 등장인물들의 입으로 이야기해 왔던 이사야마 하지메의 메시지도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셈.


다시 주술회전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주술회전의 팬들이 원작의 전개를 지켜보며 걱정했던 부분은 '사멸회유' 에피소드 자체의 핍진성 결여와, 주술회전의 대미를 장식할 '신주쿠 결전'의 마무리, 즉 '범부 엔딩' 그 이후에 관한 부분이었다. 사멸회유는 에피소드 자체가 배틀 장르에서 흔한 데스매치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인물 서사 위주로 진행해 오던 주술회전과 맞지 않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으며, 사멸회유라는 데스매치 자체의 룰의 난해함과 우후죽순 쏟아지는 신규 등장인물들의 소비, 개연성 및 행동동기의 설득력 부족으로 많은 팬들에게 질타를 받는다. 특히 비범한 악역이었던 스쿠나가 맹독과 저주의 왕이 아닌 '속박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속박이라는 설정을 남발하는 등, 작가의 역량부족으로 인한 원작의 완성도 저하가 점점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마저 짓눌러, '어떻게 마무리하려고 이러지?'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작가인 아쿠타미 게게 본인도 원화전 QNA에서 사멸회유는 매우 후회되는 에피소드라고 밝힌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상술했듯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애니메이션이 원작을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며 진격의 거인의 선례도 있으니, 주술회전도 '두 번째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극장판에서 선공개된 사멸회유 초반 분량에서도 원작과는 연출적으로 다른 부분이 꽤나 존재했다. 원작에는 몇 컷 없던 주인공 이타도리의 제령 장면을 더욱 비중 있게 다뤄 풍부한 액션을 보여줬고, 젠인 나오야의 투사주법이나 쵸소우의 적혈조술 묘사 또한 원작을 초월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옷코츠 유타와 이타도리의 싸움이 원작과는 달리 어떤 무대 위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변경된 점은 고무적일 정도였다. 옷코츠 유타가 이타도리를 죽이려 하는 것이 연기라는 점을 무대라는 장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연출한 셈. 덕분에 사멸회유는 생각보다 많은 분량의 공개와 더불어 뛰어난 작화 및 플롯의 각색으로 많은 팬들에게 호평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몇 가지의 변경점이 보여주는 것은 결코 적지 않다.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단순히 원작의 재현에만 몰두하는 일차원적 역할이 아닌, 원작자와의 협의를 통해 더욱 세련된 연출과 부족한 부분의 보완까지 컨설팅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 올라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센스와 원작자의 적극적인 동의가 있다면 애니메이션을 통해 원작을 보완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되는 것. 마치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공개된 연출의 변화들이 사멸회유 에피소드 전체와 '범부 엔딩' 또는 '속박의 왕'의 보완에 대한 가능성 또한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4. 실패할 수가 없는 이야기

동료, 선생, 학원, 초능력, 그리고 악역

나는 앞서 막장 스토리,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설정, 핍진성과 개연성의 부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 등으로 인해 주술회전을 싫어했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대다수의 독자들이 위 요소 중 한 가지 이상은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술회전이 글로벌 IP로써 다양한 곳에서 소비되고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싫어했다고 생각했던, 상술한 모든 요소가 한 데 합쳐져 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소년과 한 명의 선생. 캐릭터 고유의 초능력, 교복을 입는 학원의 일상, 주인공의 초인적인 성장 등. 주술회전을 구성하고 있는 설정의 토대는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 뿐이다. 심지어 아쿠타미 게게는 만화 원작을 연재하던 중 여러 번의 표절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을 정도로 '기시감'이라면 둘째 가지 않는 작품이 주술회전인 것이다. 하지만 아쿠타미 게게는 지난 수십 년간 만화 업계가 쌓아 올려온 독자들의 호불호를 똑똑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떤 작가의 실패, 어떤 작가의 몰락, 어떤 작가의 성공과 여러 작가의 흥망성쇠 속에서 그 실험적인 행보들을 통해 소년 만화의 성공 공식이라 부를만한 요소들이 생겨났는데, 그것들을 한데 모아 집대성한 작품이 주술회전이라는 이야기다.


맛있는 것만 때려 넣어 만든 음식은 실패할리 없다. 고로 주술회전은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적은 IP라는 것이다. 그것에 유일한 의문을 던진 계기가 사멸회유와 신주쿠결전의 졸작 전개였으나, 앞서 이야기 했듯 그것을 수정할 두 번째 기회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주술회전 애니메이션의 흥행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5. 마치며 : '당신들'만 몰랐던 이야기

'체인소맨'의 레제 댄스를 보여주는 ITZY 류진

얼마 전 오동진 평론가의 '돌연변이 흥행' 칼럼에 세간이 떠들썩했다. 체인소맨이 '베놈'을 따라 했다는 둥, 한국 극장이 일본화될까 우려가 된다는 둥, 한정된 사고방식에 갇힌 저열한 평론이 이어졌다. 애니메이션을 소비하는 주류 계층인 10~20대는 기사를 보고 코웃음을 쳤고, 그가 메타 인지의 바운더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짐작했다.


재패니메이션의 극장가 점령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래도록 지속된 한국 영화의 매너리즘, 명절을 겨냥한 저질 코미디 영화의 반복되는 개봉, 뻔한 소재와 뻔한 결말, 글로벌 팬덤의 형성과 로컬리즘의 몰락. 극장에서 이미 눈을 돌린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봉준호와 비견되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같은 것은 알 바가 아니다.


아이브의 장원영은 최애의 아이 챌린지에 참여하고, 바밍타이거는 새로운 학교의 리더즈(ATARASHII GAKKO!)와 협업하여 음원을 낸다. 새소년은 KIRINJI와 협업해 음원을 내고, ITZY의 류진은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체인소맨의 레제 댄스를 보여준다. 한국 대중 문화를 최전선에서 견인하는 아티스트들조차 레거시와 마이너를 가리지 않고 일본 아티스트 및 재패니메이션에 대해 친밀한 태도를 갖추고 있다. 한·일의 젊은이들이 나누는 문화적 유대는 이미 작품 밖으로 튀어나온 지 오래라는 것이다. 하물며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를 제치는 재패니메이션이 떠오르는 것은 필경 오래전부터 꾸준히 쌓아 올려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재패니메이션의 흥행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그 흥행 물결의 중심에 주술회전이 서있다. 상술한 집대성의 특징이 주술회전의 패망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주술회전의 예견된 흥행은 OTT와 시즌제를 전제한 재패니메이션 업계에 확신을 가져다줄 것이다. 업계 내부에서는 어떠한 비화가 있을지 모르나, 애니메이션 팬의 입장에서 지금의 업계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그저 원작이 훼손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원작을 보완해주기까지 하는 애니메이션들을 기다리며 즐겁게 작품을 즐기고, 이국의 저들과 즐겁게 문화를 나누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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